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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n 19. 2022

오늘 밤은 굶고 잘 수 있을까

아침마다 굳은 결심은 한다. 오늘 밤은 허기만 채우자. 크나큰 결심은 점심밥 한 술부터 거품처럼 사라져간다. 입맛이 돌면서 머릿속엔 온통 먹을 것이 둥둥 떠다닌다. 밥을 먹고 있으면서 먹는 것을 생각하니 나도 환장할 노릇이다. 가장 크고 가볍게 두둥실 떠다니는 것이 보통 나의 저녁이 된다.     

 

오늘 두둥실 메뉴는 떡볶이다. 지하철역 주변에 있는 분식집으로 떡볶이, 튀김, 순대, 김밥, 라면부터 볶음밥, 덮밥까지 하나하나 모두 다 아는 그 맛이다. 슬픈 점 한 가지는 이 집 라면은 맛이 없다. 라면이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메뉴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밍밍하니, 맛이 없다. 물 조절이 원인인 듯하다. 아무튼 모든 메뉴를 먹어보진 않았지만 기본 분식류를 섭렵한 결과 이 분식집의 베스트는 ‘범벅이’다.


범벅이는 말 그대로 떡볶이와 튀김을 버무려서 준다. 튀김에 맛 그대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비추지만, 나처럼 떡볶이인 척 양념 옷을 곱게 차려입은 튀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강추하고 싶다.  

    

하얀 접시 위에 빨간 맛이 담겨 나에게 전달되었다. 퇴근을 기다리게 만든 소중한 맛이다. 먹기 전 어묵 국물로 잠시 속을 달랜다.  

         

‘자자!!! 너희가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빨간맛이 들어가니 힘차게 움직일 준비를 하거라!

먹방 가속도의 법칙에 따라 얼마나 빠르게 들어갈지 모르니 정신들 차리시고 레뒤고!!’    

      

밀떡을 흡입하듯 입에 쏙 집어넣었다. 살짝 퍼진 떡은 부드럽고 쫀득했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졸여낸 양념이 혀끝에 닿자 묵직하면서 은근한 단맛이 느껴졌다. 걸쭉한 양념에 가려진 튀김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새우, 고구마, 김말이, 만두, 채소, 튀김계의 오 총사다. 이곳은 포장 손님이 더 많다. 떡볶이를 먹고 있는 와중에도 포장 손님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다들 오늘 저녁 메뉴로 분식을 선택했나 보다. 여유롭게 범벅이를 즐기고 나오자 퇴근하는 무리가 보였다. 자연스럽게 그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통통하고 잘 익은 수박 소리가 날 것 같은 배를 데리고 집으로 향한다.   

   

오늘 밤도 잠들기 전 내가 먹은 음식을 떠오르며 후회하겠지. 어르고 달랬다가 화를 내며 이내 독한 말도 퍼부을 것이다. 내일부터는 이러지 말자고 또 한 번의 결심 아닌 결심을 하겠지. 그리고 지쳐서 잠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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