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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어른일기 Jun 20. 2022

커피보단 카페

단순하게 커피만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 공간이 주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

    

적당한 볼륨으로 무심하게 틀어놓은 세련된 플레이리스트. 커다란 창으로 스며드는 햇살. 소품 하나까지 신경을 쓴 인테리어. 곳곳에 있는 콘센트. 커피를 내려주는 바리스타의 분위기. 갓 구운 빵 냄새. 은은하게 풍기는 원두의 향. 커피에 따라서 달라지는 잔. 그리고 주문한 커피를 받으러 갔을 때 잔과 디저트의 플레이팅.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너무 강하지 않은 디퓨저의 향. 세심하게 준비해 놓은 핸드워시와 핸드크림. 티슈를 담은 바구니. 곳곳에 놓아둔 꽃과 작은 화분들. 이 모든 게 조화로울 때 커피를 즐기는 재미가 풍성해진다.


내가 마신 커피 한 잔 값에는 카페의 공간을 즐길 수 있는 금액이 포함되어 있다.     


커피를 사랑해서 카페 투어를 다닌 적이 있었다. 곳곳에 자리 잡은 멋진 카페를 찾아가서 커피 맛도 보고 그곳의 분위기도 즐겼다. 뚜벅이인 나에게 카페를 선정하는 가장 첫 번째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유명한 카페여도 차로만 갈 수 있는 곳은 나에겐 무리다. 두 번째는 커피 맛 세 번째는 공간이 주는 특유의 감성이다. 여행할 때면 어김없이 카페에 들른다. 하루에 많게는 세 군데까지 간 적이 있었다. 커피를 사랑해서 시작된 카페 투어는 커피를 마시는 것에서 나아가 공간을 담는 것에까지 이르렀다. SNS를 하질 않아서 누군가와 공유하진 않는다. 그저 가끔 핸드폰 앨범을 들춰보며 나름의 추억팔이를 하곤 한다.      


내 인생의 첫 커피가 언제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정확한 건 엄마가 마시던 일명 커피믹스 또는 둘둘둘 다방 커피다. 둘 다 달짝지근하지만 대기업의 맛이냐, 대기업의 맛을 나만의 레시피로 탈바꿈하냐의 차이이다. 엄마의 커피 습관 중 하나는 마지막 몇 모금 마시지 않고 남긴다는 거다. 어린아이라서 커피는 안 되라고 말하지만 조르고 졸라 얻어 마시는 몇 모금의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적당히 내려간 온도와 달짝지근하면서 은은하게 퍼지는 향과 입안에 감도는 씁쓸함. 이 순간은 어른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코로나로 카페를 편하게 이용할 수 없게 되자 집에서 직접 내려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 메이커에서 모카포트로 그리고 캡슐커피 머신을 거쳐 마지막엔 핸드드립으로 정착했다. 원두를 골라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갈아준다. 드리퍼에 종이필터를 올려준 뒤 뜨거운 물로 적셔준다. 컵에 담긴 물은 버리고 필터에 원두를 붓는다. 핸드폰 타이머를 맞춘 뒤 뜨거운 물줄기로 그 위에 달팽이를 그려본다. 2분 30초면 나만의 커피가 완성된다. 내가 바리스타고 내 집이 곧 카페가 되는 매직이 펼쳐진다. 곁들어 먹을 간단한 디저트까지 있으면 금상첨화.


오늘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가면서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가격은 1,400원. 커피 한 잔의 가격이 천 원대로 내려간 건 급격히 늘어난 프랜차이즈의 가격 경쟁 덕분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테이크아웃만 하는 커피보다는 카페에 앉아서 그 장소를 온전히 즐기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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