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청춘보다 아이슬란드 #5
레이캬비크에서 싱벨리어 국립공원으로, 싱벨리어 국립공원에서 게이시르(Geysir)로 가는 길,
아이슬란드 여행을 잊지 못하게 하는 건 바로 이 길들이다.
버스로도 아이슬란드 여행은 할 수 있지만, 대개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는 버스를 타게 되면 정해진 곳에 내려 정해진 시간 동안만 그곳에 머무를 수 있다. 그런데 렌트를 하면 어디든 멈출 수 있고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다. 물론, 가보고 싶은 데도 많고 숙소도 예약이 되어 있고 결국은 정해진 시간 안에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레이캬비크로 가야 했지만 둘째 날은 사실상 여행의 첫날이나 마찬가지였다.
여행의 첫날은 모든 감각과 세포가 가장 예민하게 열려 있는 날이다. 그랬던 데다 아이슬란드는 특히 전에 어디서도 보지 못한 풍경들로 가득했다. 어딘가에 도착하지 않아도, 이름 있는 관광지가 아니어도, 모든 길이, 눈에 보이는 풍경이, 눈물 나게 벅차고 아름다워서 다음이나 내일을 생각하고 않고 자꾸 멈추게 됐다.
아이슬란드의 길들은 단지 이곳과 저곳을 잇기만 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레이캬비크나 아쿠레이리 같은 도시를 제외하면 '이곳'이나 '저곳'이라고 할 만한 지형지물이 많지 않고, 그러므로 당연히 길을 지나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 경우도 별로 없다. 집이 두 채 이상 가까이 모여 있으면 그곳을 '마을'이라고 부른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사람의 흔적이 적다. 그래서 그 길들 위에 있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우주 어딘가에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이 있다면
이곳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싱벨리어 국립공원에서 게이시르까지는 차로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이곳엔 당연히 교통체증도 없기 때문에 아마 지금 구글맵이 알려준 대로 멈추지 않고 달린다면 43분 정도 걸릴 거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아이슬란드의 날씨는 이렇게 변화무쌍했다.
그리고 아까 본 무지개는 이 길 위에도 또 있었다.
게이시르는 '간헐천'을 뜻하는 아이슬란드어다. 모든 외국어가 그렇지만 아이슬란드어가 주는 낯선 이국의 느낌 때문인지, 그 이름이 그대로 이곳 관광지의 이름이 되었다. 무슨무슨 게이시르가 아니라 그냥 게이시르다. 오는 길엔 비와 무지개를 만났는데 이곳은 또 이렇게 날이 개어있다.
크고 작은 게이시르들이 모여 있는 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다큐멘터리에서나 봤던 커다란 게이시르를 만날 수 있는데,
온천이라고 해서 쉽사리 물에 손을 담가서는 안 된다. 온도가 무려 100도에 이른다.
끓는 물이 오르락내리락 드나드는 땅들은 이렇게 생겼다.
이곳이 주로 아이슬란드 기행 다큐멘터리에서 물이 용솟음치는 장면을 보여주는 그 게이시르다. 보통 15분에 한 번 정도 물이 끓어 올라 굉장히 높은 물기둥을 만든다.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도.
한 번 물이 솟구치고 나면, 어마한 수증기와 함께 솟구쳤던 뜨거운 물이 순식간에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금세 다시 차오르긴 하는데 금세 다시 솟구쳐 오르지는 않는다. 15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게이시르 입구에는, 여행 내내 볼 때마다 탐을 냈던 노르딕 니트와 겨울 용품, 그리고 먹을거리를 파는 기념품 가게가 있다. 엄청난 바람을 견뎌내며 100도짜리 뜨거운 게이시르를 영접한 후 이곳에서 사 마셨던 커피의 못지않은 뜨거움을 기억한다.
그렇게 추웠는데도 아이슬란드만 생각하면 내 마음은 언제나 게이시르처럼 펄펄 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