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날, 스카프타펠(Skaftafell) 빙하트레킹

꽃보다 청춘보다 아이슬란드 #14

by Mihyang Eun

여행 네 번째 날이 밝았다.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나는 고통을 즐기는 사람이므로 미치도록 다시 가고 싶은 이 여행을 오랫동안 복기하는 일은 괴로운 동시에 즐겁기도 하다.


가르다콧은 조식이 제공된다. 아침을 먹으려고 1층에 내려갔더니, 요렇게 귀여운 아기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잉그리드. 잉그리드 버그만 할 때 그 잉그리드.


아이슬란드로 여행 온 스웨덴 부부의 아이였는데, 부부가 잉그리드 버그만의 이름을 따서 '잉그리드'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요즘 세대들은 잘 쓰지 않는 오래된 이름이지만 그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예쁘다. 잉그리드도, 잉그리드라는 이름도.


그리고 에바네 가르다콧의 조식! 두둥.

gardakot, vik, iceland, 201309


직접 만든 잼과 남편이 잡아온 물고기도 아침에 맛볼 수 있었다. 무슨 물고기였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첫날 레이캬비크 센터호텔 씽홀트에서 먹었던 조식 이래로 가장 화려한 아침이었던 만큼 맛있게 먹고 또다시 길을 나서려는데 티나가,

gardakot, vik, iceland, 201309


이렇게 벌러덩 드러누워서는 가지 말라고.. (ㅠ_ㅠ)


그렇게 눈물의 이별을 하고 스카프타펠 국립공원(Skaftafell National Park)에 빙하 트래킹을 하러 갔다. 원래 전날 하려고 했는데 비크에서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늦어서 못 갔던 걸로 기억한다. 이 날도 원래는 예약을 했어야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운을 믿어보기로 하고 일단 출발했다.


화산이 싸놓은 똥 같은 땅들을 지나고,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봐도 봐도 지루하지 않은 길들을 달리다,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아무리 갈 길이 바쁘다지만 그냥은 지나칠 수 없는 곳이 나타나기에,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차를 세우고,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길바닥에서 좀 놀았다.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아이 씐나.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가 들리면 침을 흘리는 것처럼, 나는 물소리가 들리면 어쩔 수 없이 마음에서 침이 질질.. 그래서 물가로 갔다.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가까이,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더 가까이,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이 날은 여행 중에 가장 날씨가 따뜻해서 저 시원한 물줄기를 더 시원하게 느낄 수 있었다.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그냥 곁에만 있어도 좋은 것.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아, 그래, 우린 빙하 트래킹을 하러 가는 길이었지?

어제 하려다가 늦어서 못했지?

심지어 오늘은 예약도 안 했지?


깨닫고 다시 출발했다.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뭐, 이런 풍경은 흔하디 흔하니까 가끔은 그냥 지나쳐주자.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지나쳐.. 보자.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그랬더니, 저 멀리서 조금씩 빙하가 보이기 시작했다.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은 많이 써보고 들어봤지만, 정말로 그 '빙산'을 보니까 우리는 정말 빙산의 일각조차 아니구나 싶은 깨달음이 절로 오더라.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on the road to skaftafell, iceland, 201309


드디어 빙하 트래킹을 할 수 있는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운이 좋게도, 우린 막 출발하려는 트래킹 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트래킹이 가능한 지점까지는 이렇게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버스에서 내리자, 오늘의 가이드가 자신을 소개하고 오늘의 투어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소개했다.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버스에서 내리면 다시 조금 더 걷는다.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빙하가 점점 눈 앞에 다가올수록 어찌나 긴장되고 떨리던지!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워낙 춥고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하니까 나는 바람막이를 두꺼운 것 하나, 얇은 것 하나, 두 개를 챙겨 가서 모두 껴입었는데, 날씨가 비교적 따뜻해 속에 입은 바람막이가 정체를 드러냈다. STAFF..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영화제 할 때 내가 협찬을 따와 모든 스태프와 자원활동가들의 사랑을 받고, 심지어는 스태프들이 다른 영화제 일하러 가서도 입었다는 (아는 사람만 아는) 전설의 바람막이지만, 사진으로 보니까 조금 부끄럽다.


트래킹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나를 가이드 스태프인 줄 알고 의지할까 봐 긴장됐다.


어떤 투어 차량(아마도 반나절 정도 걸리는, 더 먼 곳까지 가는 긴 코스)은 우리보다 조금 더 빙하 가까이까지 들어갔지만, 걸어서 들어가는 저 길도 참 좋았다.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어느 정도 걸어들어가면, 가이드가(이름이 생각난 것 같다! 에리카! (맞나?;)) 다시 한 번 멈추고 본격적인 트래킹에 앞서 이것저것 안내할 점과 주의할 점을 이야기해주고,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빙하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아이젠을 신는데, 아이젠 정말 기가 막히다. 전혀 미끄럽지가 않았다.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언니가 너무 멋있어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저 위쪽까지 올라가는 코스도 있긴 하지만, 우리는 짧은 투어에 참여했다. 이동 시간까지 합해서 90분 정도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희미하다.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어느 정도까지 올라가면 빙하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내려가 볼 수 있게 해주는데, 미끄러질 것 같으면 잡으라고 자신의 팔을 내어준 가이드. 멋있다.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에리카는 이후에도 몇 번이고 다시 올라가 사람들이 내려오는 걸 도와줬다. 뭐, 그게 자기의 할 일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멋있었다. 하하하.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미끄러워 보이는 곳이 있으면 이렇게 얼음을 지치기도 하고,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사실 빙하는, 처음 창수의 사진에서 보고 머리에 정을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던 것만큼 쨍한 하늘색은 아니었다. 에리카가 설명하기를, 기온이 좀 낮고 햇빛을 많이 받을수록 하늘색이 점점 더 선명해진다고 했다. 추울수록 더 쨍한 하늘색을 뽐낸다니, 그날 따뜻하다고 좋아할 게 아니었던 거다.


아마 한겨울에 가면 더 쨍한 하늘색 빙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엄홍길 씨 다큐멘터리에 나와도 손색 없을 앵과 엘의 뒷모습.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 아래까지가 전부 빙하였다고 했다. 지금만큼 많이 버스를 타고 들어오지 않아도, 지금만큼 많이 걸어 들어오지 않아도, 빙하가 있었다고. 그런데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빙하들이 꽤 빠른 속도로 녹고 있어서 아마 10년 정도 후면 우리가 밟았던 빙하도 모두 녹아 물이 되고, 새로운 관광 아이템이 필요한 아이슬란드는 녹아버린 빙하에 배를 띄워 또 다른 관광객들을 끌어모으지 않겠냐고, 에리카가 말했다.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트래킹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에리카가 아무래도 아이슬란드 사람 같지 않아 물어봤더니 미국에서 왔다고 했다.


여름이면 아이슬란드로 와서 여행을 하다가 아이슬란드인과 사랑에 빠졌고 그들은 현재 미국에서 같이 살면서 여름마다 두어 달씩 아이슬란드에 와서 이렇게 가이드를 하며 지낸다고 한다. 세상에.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skaftafell national park, iceland, 201309


내가 빙하 위를 걷다니, 내가 빙하 위를 걷다니!


트래킹이 끝나고도 그렇게, 한동안 흥분은 가실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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