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날, 유빙호수 요쿨살론(Jökulsárlón)

꽃보다 청춘보다 아이슬란드 #15

by Mihyang Eun

스카프타펠 국립공원에서 빙하 트레킹이 끝나고 요쿨살론(Jökulsárlón)으로 갔다.


어쩔 수 없이 자꾸 언급하게 되는 창수의 아이슬란드 여행 사진 중에서 내가 가장 충격을 주었던 것이 바로 이 요쿨살론에서 찍은 빙하 사진이었다.


평소 여행 다큐멘터리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다. 내가 직접 가보지 못할 거면 남의 여행 이야기 보는 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기도 하고, 막상 그걸 보면 너무 가고 싶을 것 같기도 해서다. 담배가 궁금하지만 시작하지 않은 이유와도 비슷하다.


그런데도 아이슬란드의 저 쪽빛 빙하는 이런저런 데서 보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남의 사진이나 나와 관계없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저런 걸 내 눈으로 볼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거기 담겨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내 친구가 직접 가서 보고 직접 찍은 사진 속에 있던 그 쪽빛 빙하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세상에 저런 색깔을 가진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있으며 그걸 코 앞에서 보고 직접 사진을 찍은 것이 다름 아닌 내 친구라는 사실이. 그러면서 비로소 그것이 초현실의 영역에 있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욕망이 실체를 갖게 된 거였다.


창수가 "200만 원이면 아이슬란드 여행에 충분해."하고 우리를 꾀었을 때, 그 유혹에 넘어가게 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창수가 요쿨살론에서 찍은 빙하 사진을 본 것'이었다.


요쿨살론으로 향해 가는 차 안에서 내 마음이 어땠을지는, 이미 과거의 일이 됐기 때문에 비록 '내 마음'이라고 해도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데, 그 마음이 어땠을지는, 말 그대로 상상 그 이상이었다.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아직 요쿨살론이 보이기 전에 가슴이 쿵쾅거리는 정도였다면,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요쿨살론 입구에 당도했을 때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손에 쥐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요쿨살론 입구에만 가도, 이런 놀라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수억 년 전 만들어졌을 저 얼음덩어리들이 이제 녹고 녹아 사람들의 손과 눈이 닿을 거리까지 와 있다는 게,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일이지 않나.


그건 마치, 몇 광년 전의 별빛이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과도 비슷한 신비다.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언제 어디서 얼음이 되어 도대체 얼마의 시간을 보내고 어디서부터 여기까지 온 건지, 추측도 하고 계산도 해볼 수 있겠지만 사람으로선 누구도 정확히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저 빙하의 조각, 조각들을 다 눈으로 훑고 싶었다. 저 빙하들은 그때도 녹고 있었고 아마 지금도 녹고 있을 것이다.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빙하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구석구석 보고 싶다면, 요쿨살론에서 보트 투어를 하면 된다.


그냥 발음해보는 것만으로도 이국적이어서 낭만적인 '쇄빙선'을 타 볼 수 있다.


당시 가이드가 어떤 속도로 빙하들이 녹고 있어서 최근 얼마 동안 수면이 얼마나 높아졌고, 저 물의 반경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설명해줬는데, 2년이나 지난 지금은 전혀 생각은 나지 않지만, 분명한 건 빙하들이 엄청난 속도로 녹고 있다는 것이다.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수면 위로 보이는 건 크지 않지만 저 물아래로 얼마나 더 큰 몸집을 숨기고 있는지는 육안으로 볼 수 없다. 그래서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는 거겠지, 그러니, 눈에 보이는 건 정말 아주 일부에 불과하겠지, 그저 짐작할 뿐이다.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이젠 속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녹아버린 빙하의 조각들.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투어 가이드가 투어 중에 물에 떠 있던 작은 빙하 조각을 집어 올려 급속도로 녹고 있는 빙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설명이 끝나면, 저 빙하 조각을 깨서 사람들이 맛보게 해준다.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사실 볼 수 있는 맛이란 건 따로 없지만, 이건 오늘 아침에 냉동실에 넣어 얼렸다가 오늘 저녁에 먹는 얼음과는 다른 거니까. 수억 년의 세월을 입 안에 넣고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거니까.


생각해보니, 이제 겨우 삼십 대인 내가 몇 년 전부터 내 나이대에 맞지 않는 위치, 그러니까 헤어라인 쪽에 새치가 나기 시작했는데, 이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수억 년의 세월을 삼킨 대가로 사람을 급격히 나이 들어 보이게 하는 새치를 얻게 된 거다.


최근엔 6주 정도 여행을 가면서 염색약을 챙겨갈 정도인데, 이 당시엔 열흘 여행 가면서 새치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걸 보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다. 정말 이때부터다.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예전에 일본에서 쇄빙선을 타고 빙하 사이를 누벼본 적이 있었던 엘은 우리 셋이 투어를 하는 동안 해변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세가 '생각하는 사람'과 똑같다.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쇄빙선을 타고 실컷 보고 왔는데도 또 보고 싶은 유빙들.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저 뒤쪽으로 보이는 빙하들도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녹아 이쪽으로 흘러올 거다.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조금씩 해가 지고 있다.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여기서부터는 엘이 우리를 기다리며 찍은 사진들이다.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by elanor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by elanor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by elanor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by elanor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by elanor
jökulsárlón, iceland, 201309 by elanor


투어가 끝나고 우린 코코아를 두 잔 사서 넷이서 나눠 마셨다.


늙은 빙하들 사이에서 쨍한 기운을 잔뜩 받고 와서인지, 평소 좋아하지 않는 달콤한 코코아맛이 더 달고 맛있었다. 수억 년 된 빙하로 입 속을 씻었으니, 마치 태어나 처음으로 단맛을 본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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