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청춘보다 아이슬란드 #16
요쿨살론에서 숙소가 있었던 에이일스타디르(Egilsstadir)까지는 이동해야 할 거리가 좀 있었다.
요쿨살론에서 나올 때 이미 해변에 붉은 기운이 비칠 정도였으니 오후 4시는 확실히 넘은 시간에 출발했던 것 같다.
저편으로 해가 지고 있는 게 보인다.
렌트한 차엔 내비게이션이 없었기 때문에 우린 여행 내내 구글 지도에 의존했다.
레이캬비크나 아쿠레이리 같이 규모가 좀 있는 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찾을 길이랄 것도 없었기 때문에 구글 지도로도 충분했다.
숙소까지는 차로 4시간 가까운 꽤 먼 거리를 가야해서 요쿨살론에서 조금 더 일찍 출발했어야 했지만 여행이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지체했다.
인적 드문 곳에 간간이 집들이 있고 우리 숙소들은 대체로 인적이 드문 곳에 있었으므로 급한 마음에 완만하고 둘러가는 길 대신 험해 보이지만 가까운 길을 선택했는데, 조금 가다 보니 금세 눈 덮인 산이 시작됐다. 그 길에 진입했을 때는 이미 한쪽에서 달이 떠오르고 있을 만큼 꽤 어둑어둑했다. 그나마 추석 연휴를 끼워서 여행을 갔기 때문에 보름달에 가까워지고 있던 달빛과 산을 덮고 있는 눈이 어두운 설산에 빛을 보태고 있었다.
바깥 경치에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차는 계속해서 올라가기만 했다. 높이 올라갈수록 기온은 낮아지고, 바람은 거세지고, 눈이 녹지 않은 길은 미끄러워졌다.
구글 지도는 그 산이 어디에서 끝나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고, 얼마나 더 오르막길인지까지는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바람에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조금 긴장한 채 바라보는 설산과 보름달과 구름은 봐도 봐도 놀랍고 아름다웠다.
운전하기 무섭지 않으냐고 불새에게 물었는데, 그땐 뭐가 무섭냐고 했던 불새가 몇 시간 후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했을 땐 사실 이 위에서 조금 무서웠다고 고백했을 만큼,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한참을 이어졌다.
이때 조금 위안이 됐던 건, 우리 차를 지나쳐 쌩쌩 달리던 현지 차들이었다. 그렇게 쌩쌩 달리는 걸 보니, 이 길이 그렇게 다니지 못할 길도 아니고, 그렇게 위험한 길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렇게 한참을 더 가니 에이일스타디르 시내가 가까워왔음을 알리는 호수가 보였다. 그땐 이미 강물 위로 보름달이 비친 빛이 전부일 만큼 캄캄한 밤이었다.
하지만 안도도 잠시, 우린 길을 잃었다. 아이슬란드의 표지판들은 미리 길을 알려주는 법이 없었고, 그나마 표지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린 오로지 구글 지도에 의지해야 했는데, 지금까지는 틀린 길을 알려준 적 없던 그 지도가 왠지 자꾸 다른 쪽으로 길을 안내해서 결국 갔던 길을 되돌아와야 했다.
그러면서 다들 조금 지쳐갔다. 어서 그만 숙소에 짐을 풀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싶은, 처음으로 이 광활한 아이슬란드 땅이 불친절하게 느껴져 조금 원망스러운, 그런 밤이었다.
그런데, 그런 마음으로, 잘못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데, 내가 밖을 내다봐야 길이 찾아지는 것도 아니지만 길을 찾고 싶은 마음에 밖을 내다봤는데, 보름달이 밝은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언뜻 이상한 초록색 불빛이 희미하게 보이는 게 아닌가.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던 나는 일행들에게도 하늘을 보라고 했다. 초록색 불빛이 보이는 것 같다고,
저거 오로라 아니냐고
내 입에서 나온 단어가 심지어 '오로라'인데도 엘만이 "어, 그런가?" 하고 하늘을 올려다봤을 뿐, 불새와 앵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만큼 많이 피곤하고 지쳐 있었던 거다.
나도 곧, 아닌가 보다 했다. 왜냐면, 그날은 겨우 9월 18일로, 아직은 오로라가 하늘에서 쉽게 관찰되는 시기가 아닐뿐더러, 그날처럼 보름달이 떠서 하늘이 밝은 날에는 오로라를 보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꽃보다 청춘팀이 지금 아이슬란드로 간 것도, 바로 이 오로라 때문이라고 하는데, (제길)
오로라, 북극광, Northern Lights..
어떤 이름을 붙여도 아름답고, 그 어떤 아름다운 이름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그 빛.
내가 본 게 그 빛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건 오로라가 아니었을 거야
하고 쉽게 체념해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올려다봤더니, 하늘엔 여전히 이렇게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고, 그리고,
아까보다 더욱 선명해서 이제 더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오로라가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고 있었다.
보란 듯이 짙어지고 올라가고 퍼져나가는 식으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러고도 우리는 여전히 길을 찾지 못해 더 헤맸는데, 그렇게 조금 더 헤매어 그날 밤의 집을 찾아내기 직전까지도 오로라는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고 나타났다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우리가 숙소에 도착한 건, 12시를 넘겨서였다. 4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7시간이 넘도록 헤맨 거였다.
너무 늦은 시각에 문을 두드리자니 미안한 마음에 숙소 주인에게 거듭 사과를 하고, 그래도 또 자랑하지 않을 수 없어서 오로라를 보았노라고 했는데, 그녀는 지금은 오로라를 보기 어려운 때인데 정말 큰 행운을 누린 거라고 말해줬다. 물론 우리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믿을 수 없이 좋았지만, 현지인의 입을 통해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선명한 행운을 얻은 듯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 행운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린 다들 숙소에 짐만 부려놓고 금세 다시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땐 이미 하늘이 양떼구름으로 가득했다. 아쉬운 마음에 좀 더 하늘을 올려다봤지만 달빛도, 북극광도, 더 이상은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가는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결국은, 다름 아닌 구글 지도가 우리에게 오로라를 몸소 보여주려고 그렇게나 헤매고 또 헤매게 했던 거였다.
실제로 우리는 그 후 6일을 더 아이슬란드에 머물렀지만 북쪽의 그 초록빛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