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날, 크라플라 비티(Viti) 분화구

꽃보다 청춘보다 아이슬란드 #19

by Mihyang Eun

데티포스 입구에서 차를 가득 채운 먹을거리들로 즉석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은 다음, 화산지대인 크라플라(Krafla) 지역으로 이동했다.


혹시라도 꽃보다 청춘보다 아이슬란드 포스팅을 모두 본 사람이 있다면, 이제 이런 문장은 지긋지긋하겠지만, 데티포스에서 크라플라 지대로 가는 길 또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화산과 설산과 빙산과 구름이 한데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은 봐도 봐도 지루하지 않았고, 봐도 봐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차멀미를 종종 하는 편인데, 차멀미의 대표적인 증상이 하품과 졸음이다. 그런데 여행 내내 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마지막 하루 이틀 정도를 제외하고는 차에서 거의 자지 않았다. 밖이 이런데,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었겠냔 말이다.

on the road, iceland, 201309


소설가 김연수의 작품 중에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라는 중단편 소설이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것은 히말라야지만, 눈 덮인 산, 빙하가 아직 녹지 않은 산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그 소설이 떠올랐다. 소설 속 주인공의 연인은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로 가서 죽음을 맞이한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면서, 만약 내가 죽을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건 저 멀리 눈부시게 빛나는 설산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on the road, iceland, 201309


더운 나라에서보다는 추운 나라에서, 뜨거운 공기보다는 차가운 공기로 죽은 몸을 썩히는 편이 훨씬 깔끔하고 단정할 것 같았다. 완전히 사라지기까진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아 아무도 볼 수 없을 것이다.

on the road, iceland, 201309


렌즈를 가까이 당겨 사진을 찍어보니 눈이 소금 같이, 쌀알 같이 손에 잡힐 것 같다.

on the road, iceland, 201309


차를 타고 달리다 발견한 폭포, 코르셋 같다. 바짝 당겨 조인 끈들 사이의 등줄기, 같다.

on the road, iceland, 201309
on the road, iceland, 201309
on the road, iceland, 201309
on the road, iceland, 201309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저 단단함이 만져지고, 저렇게 단단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지 알 것 같다.

on the road, iceland, 201309
on the road, iceland, 201309
on the road, iceland, 201309


벌써 해가 지려나 싶다가도,

on the road, iceland, 201309
on the road, iceland, 201309


다시 이렇게 맑고 파란 하늘이 나타나고, 강렬한 빛줄기가 가뜩이나 하얀 눈을 더 하얗게 반짝이게 만든다.

on the road, iceland, 201309


이렇게 눈밭을 달려 도착한 곳은 크라플라 화산지대에 있는 여러 볼거리 중 하나인 비티(Viti) 호수.


세계지리 공부 열심히 한 친구들은 아이슬란드 여행 가면 더 많은 게 보일 지도 모르겠다. 비티 분화구는 칼데라 호수다. 사전을 찾아봤다.

viti, iceland, 201309

칼데라 호수 : 지식백과

커다란 솥이란 뜻. 화산체의 중심부에 생긴 분화구보다 훨씬 큰 움푹 펜 지형. 폭발, 함몰, 침식 등으로 생김. 일본 아소산의 것은 동서 18Km, 남북 24Km로 세계 최대.

[네이버 지식백과] 칼데라 호수 [caldera lake, カルデラこすい, カルデラみずうみ] (농업용어사전: 농촌진흥청, 농촌진흥청)

viti, iceland, 201309


다른 사람의 사진이나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의 사진을 보면 분화구의 모습이나 색깔도 계절마다, 날씨마다 달라지는 것 같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계절을 최소한 한 번씩은 같이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슬란드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알려면 다시 가야 하고, 계절마다 가야 하고, 달마다 가야 하고, 아마 매일매일, 오전, 오후로 나눠서 가야 할 지도 모르겠다.

viti, iceland, 201309
viti, iceland, 201309


흰 눈을 뚫고 나온 생명체들.

viti, iceland, 201309


흰 눈 위를 걷고 있는 생명체들.

viti, iceland, 201309


그리고 우리는 살아 남아 추후 이 크라플라 화산지대의 모습을 딴 '크라플라' 피자를 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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