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청춘보다 아이슬란드 #19
데티포스 입구에서 차를 가득 채운 먹을거리들로 즉석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은 다음, 화산지대인 크라플라(Krafla) 지역으로 이동했다.
혹시라도 꽃보다 청춘보다 아이슬란드 포스팅을 모두 본 사람이 있다면, 이제 이런 문장은 지긋지긋하겠지만, 데티포스에서 크라플라 지대로 가는 길 또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화산과 설산과 빙산과 구름이 한데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은 봐도 봐도 지루하지 않았고, 봐도 봐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차멀미를 종종 하는 편인데, 차멀미의 대표적인 증상이 하품과 졸음이다. 그런데 여행 내내 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마지막 하루 이틀 정도를 제외하고는 차에서 거의 자지 않았다. 밖이 이런데,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었겠냔 말이다.
소설가 김연수의 작품 중에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라는 중단편 소설이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것은 히말라야지만, 눈 덮인 산, 빙하가 아직 녹지 않은 산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그 소설이 떠올랐다. 소설 속 주인공의 연인은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로 가서 죽음을 맞이한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면서, 만약 내가 죽을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건 저 멀리 눈부시게 빛나는 설산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더운 나라에서보다는 추운 나라에서, 뜨거운 공기보다는 차가운 공기로 죽은 몸을 썩히는 편이 훨씬 깔끔하고 단정할 것 같았다. 완전히 사라지기까진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아 아무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렌즈를 가까이 당겨 사진을 찍어보니 눈이 소금 같이, 쌀알 같이 손에 잡힐 것 같다.
차를 타고 달리다 발견한 폭포, 코르셋 같다. 바짝 당겨 조인 끈들 사이의 등줄기, 같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저 단단함이 만져지고, 저렇게 단단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지 알 것 같다.
벌써 해가 지려나 싶다가도,
다시 이렇게 맑고 파란 하늘이 나타나고, 강렬한 빛줄기가 가뜩이나 하얀 눈을 더 하얗게 반짝이게 만든다.
이렇게 눈밭을 달려 도착한 곳은 크라플라 화산지대에 있는 여러 볼거리 중 하나인 비티(Viti) 호수.
세계지리 공부 열심히 한 친구들은 아이슬란드 여행 가면 더 많은 게 보일 지도 모르겠다. 비티 분화구는 칼데라 호수다. 사전을 찾아봤다.
칼데라 호수 : 지식백과
커다란 솥이란 뜻. 화산체의 중심부에 생긴 분화구보다 훨씬 큰 움푹 펜 지형. 폭발, 함몰, 침식 등으로 생김. 일본 아소산의 것은 동서 18Km, 남북 24Km로 세계 최대.
[네이버 지식백과] 칼데라 호수 [caldera lake, カルデラこすい, カルデラみずうみ] (농업용어사전: 농촌진흥청, 농촌진흥청)
다른 사람의 사진이나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의 사진을 보면 분화구의 모습이나 색깔도 계절마다, 날씨마다 달라지는 것 같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계절을 최소한 한 번씩은 같이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슬란드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알려면 다시 가야 하고, 계절마다 가야 하고, 달마다 가야 하고, 아마 매일매일, 오전, 오후로 나눠서 가야 할 지도 모르겠다.
흰 눈을 뚫고 나온 생명체들.
흰 눈 위를 걷고 있는 생명체들.
그리고 우리는 살아 남아 추후 이 크라플라 화산지대의 모습을 딴 '크라플라' 피자를 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