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날, 거인의 도시 달비크(Dalvik)

꽃보다 청춘보다 아이슬란드 #27

by Mihyang Eun

북극해 돌고래 투어(Arctic Whale Watching)를 마치고 달빅 시내로 갔다가, 반가운 카페를 발견했다. 마을의 한중간에 있었고, 열려 있었고, 와이파이가 되는 곳.


GisLi Eirikur Helgi라는 이름의 카페로, 'Helgi'는 '주말'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하고,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북극해의 찬바람을 실컷 맞고 돌아온 우리로서는 그곳이야말로 주말 같은 장소였던 건 분명하다.

gisli eirikur helgi, dalvik, iceland, 201309


따뜻한 카페 안에서 몸을 녹이고, 오래간만에 인터넷도 하고, 마을 사람들이 자전거 타는 것도 보고,

gisli eirikur helgi, dalvik, iceland, 201309


아주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gisli eirikur helgi, dalvik, iceland, 201309
gisli eirikur helgi, dalvik, iceland, 201309

이런 시간을 좋아한다. 앞으로 가야 할 곳도 생각하지 않고, 무얼 해야 할 지도 생각하지 않고, 이것저것 걱정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낯선 장소에서 보내는 시간. 여행 내내 서로 떨어져 있을 틈 없이 붙어 지낸 우리 네 사람이 각자 카페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스마트폰도 보고, 자기만의 딴생각에 푹 잠기는 시간.


이곳은 그러기에 굉장히 좋은 곳이었다.

gisli eirikur helgi, dalvik, iceland, 201309


이 카페는 직접 만든 케이크나 빵 같은 것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마실 커피와 함께 먹을 군것질거리를 주문했는데,

gisli eirikur helgi, dalvik, iceland, 201309

아래쪽에 보이는 빵의 이름은 '아쉬타르풍구르(Astarpungur)'라고 카페 주인 비아르니(Bjarni)가 친절히 일러줬다. 아쉬타르풍구르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잠시 설명하기를 주저하더니, 그것은 거시기, 그러니까 거시기라고 했다. 생긴 모양을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겠지만 빵에 음낭이라는 이름(별명)을 붙이는 아이슬란드인들의 작명 감각이랄까, 유며 감각이 감동적이었다.


비아르니는 더불어, 아이슬란드 남자를 만난다면 반드시 "넌 아쉬타르풍구르 같아."라는 말을 해보라고, 반응이 아주 재미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런 말을 할 만큼 친한 아이슬란드 남자 사람 친구를 만들지 못한 관계로 저 말은 아직 배워두기만 했을 뿐 써먹어보지 못했다.


gisli eirikur helgi, dalvik, iceland, 201309
gisli eirikur helgi, dalvik, iceland, 201309
gisli eirikur helgi, dalvik, iceland, 201309 by river


카페 주인인 비아르니는 카페뿐만 아니라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고 있었다. 다음에 아이슬란드 여행을 가게 되면, 달빅에서도 하루 묵어보고 싶고, 그렇게 된다면 꼭 비아르니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겠다고 약속했다.

gisli eirikur helgi, dalvik, iceland, 201309
gisli eirikur helgi, dalvik, iceland, 201309


우리는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으므로, 아마 꼭 그 약속을 지키게 될 것 같다.

gisli eirikur helgi, dalvik, iceland, 201309 by elanor


카페에서 꽤 빈둥대다가, 동네 구경에 나섰다.

dalvik, iceland, 201309


마을 한가운데 저 조그만 물웅덩이(혹은 연못?)에 비친 풍경이 정말 사랑스럽기 짝이 없다.

dalvik, iceland, 201309


아이슬란드 도시들 중에는 레이캬비크, 비크, 달비크, 후사비크처럼 'Vik'가 들어가는 지명이 많은데, Vik는 항구라는 뜻이라고 한다.


항구가 있는 달빅은 북극해 돌고래 투어 말고도 유명한 게 하나 있는데, 바로 '거인 바이킹(The Viking Giant)'다.

Jóhann Kristinn Pétursson, also known as The Viking Giant, Johann the Giant (Jóhann Risi) and Jóhann Svarfdælingur (February 9, 1913 – November 26, 1984) was an Icelandic giant from Dalvík, Iceland. At peak, he measured 2.34 m (7 ft 8 in) and weighed 359.35 lb (163.00 kg). (출처 : 위키백과)

요한 크리스틴 페투르손(Jóhann Kristinn Pétursson)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거인은 가장 컸을 때의 키가 무려 2미터 34센티미터, 몸무게는 163킬로그램이었다고 한다.


요한에게 거인 바이킹이라는 별명이 붙은 건, 세계 2차 대전 때 덴마크 해군에서 그를 징용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는 열일곱 살 때 엄청난 무게를 들어 올릴 만큼 힘이 가장 세졌는데 그 때문에 바이킹들이 그를 탐냈을 거다. 하지만 그는 지나치게 큰 키 때문에 스무 살 때부터는 걷기도 힘들었고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달빅은 아이슬란드 최장신을 기록하고 있는 요한의 흔적을 간직하고 곳곳에 관광요소들로 만들어뒀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요한의 키에 맞춘 벤치가 있는데, 보통 사람들이 앉으면 다리가 땅에 닿지 않는 높이다.

dalvik, iceland, 201309 by anne


덴마크로 징병되어 1950년대에 플로리다에서 은퇴한 요한은 고향인 달빅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에는 그가 살던 집을 보존해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dalvik, iceland, 201309

아이슬란드에서 신용카드를 쓸 수 없는 곳은 거의 없었는데, 이 박물관은 현금만 받고 있었다. 현금이 전혀 없었던 우리가 아쉽지만 발길을 돌리려고 했더니, 박물관 관리인이 그냥 구경하고 가라고 친절을 베풀어줬다.


박물관 안은 거인 바이킹이라는 별명답게 그의 집에는 '바다'와 관련된 흔적이 가득했다.

dalvik, iceland, 201309


그가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를 몸소 확인해볼 수 있는, 그가 살아생전 썼던 물건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거인의 존재를 못 믿을 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실제 사진을 보면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입을 만들 재단사가 사다리에 올라가 요한의 팔 길이를 쟀던 모양인데, 요한의 팔 길이가 재단사의 상체보다 더 길다. 그를 위해 특수 제작된 특대 사이즈 아코디언도 볼 수 있다.


여럿이서 꼭 붙어 다니며 여행을 하다 보니, 우리의 정(?)은 더욱 깊어졌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는 못했다. 그런데 페이스북으로 그 카페의 비아르니와 친구를 맺고 그곳의 소식과 그의 일상을 종종 보다 보니, 그래서인지 비아르니를 만난 달빅이라는 도시가 지금도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우리 넷 중 나만 못 지킨) 다시 달빅에 가겠다는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곱째날, 달빅(Dalvik) 북극해의 고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