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zarirang Jan 06. 2020

콩 150g의 행복 - 순두부찌개 만들기

소소한 행복

널뛰기를 좋아하는 올해 이곳의 날씨는 한여름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을스럽다.

오늘도 햇살은 따가운데도 서늘한 바람 탓에 20도도 못 찍고 있으니...

주말이면 모두 한자리에 앉아 점심이든 저녁이든 먹을 기회가 많기 때문에 나는 늘 주말의 밥상이 신경이 쓰인다.

일기예보까지 등장하고...

저녁에 일기예보까지 봤다.

더우면 시원한 메밀국수를... 선선하면 얼큰한 순두부찌개로 밥상을 차릴 요량으로...

기온이 18도라고 해서...

순두부찌개로 낙찰을 보고... 서둘러 노란 콩 150그램을 꺼내고 빡빡 씻어서 물에 담갔다.


대용량 브랜더도 샀으니...

그동안은 두부를 만들어도 도토리를 갈아 묵을 쑤을 때도...

900w에 500ml짜리 작은 브랜더로 조금씩 나누어서 가느라고...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친한 벗이 "언니는 하는 거에 비해 도구가 너무 한 거 아냐?"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두부나 묵을 쑤며 살기 전에 딸들이 아침으로 스무디를 해서 먹을 요량으로 산 것이었는데...

어찌나 모터가 좋은지... 생전 고장도 나지 않으니 새로 큰 것을 사기가 좀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 두 딸들이 보너스를 받으면서 대용량 브랜더를 사 가지고 왔다.

"오메~~ 좋은 거... 이제 두부도 묵도 마음껏 만들 수 있겠구나~~~"

하며 좋아라 했는데...

아직 가을이 아니니 도토리가 없어 묵은 만들 수가 없고... 무늬만 이지만 그래도 여름이라 두부나 순두부도 만들 맛이 나지 않아서 손을 놓고 있던 차였다.

콩을 물에 불리면서 신이 났다~


순두부를 만들어 볼까나~

콩을 불리고... 브랜더에 갈고 콩물을 짜고... 또 갈고 짜고... 3번을 반복한다.

첨에는 한두 번 짜고 아직 고소한 콩물을 머금은 비지로 비지찌개도 만들고 동그랑땡도 만두도 만들었었는데...

요즘은 다~~ 귀챦아서... 그냥 짜고 또 짠 후에 비지는 텃밭 거름통으로 보내버린다.

요렇게 콩물을 모으고... 콩물이 끓으면... 현미 3배 식초를 이용해서 간수 대용을 만든 후에... 끓는 콩물에 골고루 부어주고 한번 더 끓여주고 불을 끄고 기다리면... 몽글몽글 콩물들이 뭉치며 순두부가 만들어진다.

참 간단하다...

 https://blog.naver.com/nzarirang/221181360106 (두부 만들기 자세한 레시피입니다.)

백종원이 큰일을 하다!!

순두부 양념은 백 선생 표 순두부 양념으로 미리 만든 후에  2cm x 2cm로 얼린 후에 조각을 내서 냉동고에 넣어 두었다. 만들 때 아주 많이 만들어 두면~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얼큰한 국물이 필요할 때마다 한두 개씩 꺼내서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하면 다용도로 쓰임이 아주 좋다.

https://blog.naver.com/nzarirang/221243966938 (자세한 레시피는 블로그를 봐주세요..)


아날로그라도 괜찮아!!

한국에 살 때는 내가 이렇게 순두부까지 만들어 먹으며 살지는 몰랐다.

문을 열고 집 앞 마트만 가도 순두부를 한 봉지씩 팔고 있고, 거기다가 맛있는 순두부 양념까지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아니 이것도 너무 아날로그 사고일까?

인친님들을 보면... 모두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서 문 앞에서 받아 끊이기만 하기도 하던데...


사실 울 큰딸도 이곳에 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완제품부터 반제품까지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집 앞까지 배달해 주는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곤 한다.

내가 집을 잠시 비우고 딸들끼리 저녁이라도 먹어야 할 일이 생기면, 나는 뭘 해 놓고 나가야 하지? 하는 고민을 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딸들은 손사래를 친다.

걱정 말고 그냥 가시라고 하면서...

이곳에서도 아주 간단히 모발 폰 앱을 이용해서 각 나라별 음식을 마음껏 골라 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나는 배달비 몇 불이 아까워서 발발 떨지만, 딸들은 그런 푼돈? 은 아랑곳하지 않고 척척 주문해서 먹는다.

격세지감이다.

평생을 알뜰한 것이 미덕이라고 믿고 살아온 내가 수용하기는 너무 간격이 크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대세라면 할 수 없는 노릇인 것을...

그래도 나는 아날로그가 좋다.


콩 150그램의 행복!!!

텃밭에 나가 파를 자르고 호박을 따왔다.

냉동실에 얼려 논 육수와 순두부 양념도 꺼내오고...

콩을 요란스럽게 갈고... 손에 있는 힘을 다 주며 콩물을 짜고 또 짠 후에...

순두부를 만들었다.

오늘은 3인분이면 되니까...

냄비에 3인분 육수를 넣고 순두부 양념으로 간을 하고... 텃밭에서 따온 호박을 송송 썰어 넣고...

그래도 순두부찌개는 뚝배기에 해야 제맛이지 싶어서...

작은 뚝배기에 준비한 국물을 넣고, 순두부 한국자씩 넣고... 계란까지 퐁당~ 그리고 파를 썰어 올렸다.

제대로 된 한 뚝배기가 만들어졌다.

보글보글 끊는 뚝배기를 호호 불어 가면 떠먹는 맛이라니...

태평양까지 건너와서 이렇게 그 옛날 산골 아낙처럼 살 줄은 몰랐다.

그럼에도 이 따끈한 밥상을 빙 둘러앉아 호호거리며 먹는 지금이 행복하다.

콩 150그램이 우리에게 준 선물인 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후딱 만든 돌솥비빔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