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동안 뉴질랜드에 살면서 나름대로 삶의 노하우가 생긴 것 같다.
맘이 복잡할수록 몸을 바쁘게 움직이면 어느 정도 맘이 가라앉는다는 것도 살면서 터득했다.
그렇게 썩 좋은 방법은 아닐지 몰라도 나에겐 딱 맞는 방법이다.
오늘도 속이 볶이는 일이 생겼다.
물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그냥 속만 복잡할 뿐이다.
맘을 비우는 법? 몸을 쓰면 되지~
남편과 한참 이 문제를 가지고 열변을 토하다가...
"애구 머리 복잡해~ 나 잠깐 나갔다 오겠소~~"하며 정원에 있는 텃밭으로 나갔다.
햇살이 따가워서 아직은 물을 주기에 적당하지 않았지만... 그늘이 진 뒤꼍의 깻잎밭에 물을 주고...
후끈하게 달아오른 작은 비닐 집안에 있는 한국 오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몇 번 잘라먹었는데도 쑥 자라 있는 부추를 잘라서 생각지도 않은 부추김치를 담았다.
저녁은 돌솥비빔밥?
물을 주느라 묻은 물기를 툭툭 털며 들어와 남편에게 때 이른 저녁 타령을 했다.
"저녁은 돌솥?" 뜬금없는 소리에 남편은 "달랑 둘이 먹는 건데.. 아무거나 먹읍시다~"했다.
매일 둘인데... 새삼스럽게...
한국처럼 퇴근하고 회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두 딸들은 매일 늦는다.
대견스러운 딸들은 두세 가지를 한꺼번에 해내고 있고 덕분에 늘 저녁은 우리 둘이 먹곤 한다.
"둘이 먹는다고 대충 먹으면 우리 금방 영양실조 걸려~ 텃밭에 나물이 많으니 돌솥비빔밥?"
"나야 뭐든 좋지~"
남편도 이미 알고 있다.
'우리 마누라... 지금 속이 말이 아니군...'
텃밭으로~
나는 다시 텃밭으로 나갔다.
한국에서 태평양을 건너와서 우리 집 텃밭에 까지 온 한국의 나물들이다.
2인분이니까 조금씩 나물을 뜯고... 주던 물을 마저 주고 들어와서 작은 냄비에 나물을 한 종류씩 삶고, 볶고...
냉동실에 있던 '만능 다짐육'을 꺼내서 볶고...
둘이 먹기를 하는 건 다 했다.
음식이라는 것이 그렇다
음식이라는 것이 만드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
마음이 복잡할 땐 아무리 많은 양념을 해서 만들어도 짜거나 싱겁거나 최악의 경우 써서 못 먹는 경우도 있고, 즐겁게 음식을 만들면 소금 하나만으로도 음식 맛이 제대로 난다.
오늘은 맘이 복잡하니 돌솥비빔밥이 산으로 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참 이상하게도...
텃밭에 나가서 몸을 움직이고 부추김치를 담그고... 나물을 데치고 볶고 하는 동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는 걸 알았다.
세 가지나물을 간장을 기본으로 해서, 한 가지는 참기름으로... 한 가지는 올리브유로... 또한 가지는 꿀을 조금 넣어 볶았다.
그리고 냉동실에 얼려 두었던 밥을 꺼내서 돌솥비빔밥을 만들었다.
삶이 다 그렇듯이~
사는 게 다 비슷한 것 같다.
나의 속은 주로 딸들이 새로운 도전을 할 때 만나는 돌부리들로 인해서 볶인다.
부모로서 그 돌부리들을 치워줄 수도 없고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기에 그냥 속만 볶는다.
그래서 딸들의 무한도전은 나를 흥분시키기도 하고 긴장시키기도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또 하나의 높은 산을 바라보고 있는 둘째에게....
용기를 내서 한 걸음씩 내딛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설령 돌부리를 만나면 어떠리~
둘째야 '돌부리? 그까지 꺼~'하고 쿨하게 넘길 것이고...
엄마야 '텃밭에 물이나 주자~'하면 될 테니까...
또다시 마주할 그날의 나의 저녁 메뉴가 궁금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