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간의 일본 여행

by 미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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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역시나 그 향기가 났다.

습한, 더운, 하지만 기분 좋은 그 향기의 달.

6월.

매 해 6월만 되면 28살이던 그 때가 떠오른다.

이제 기억도 안날 정도로 희미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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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우여곡절 끝에 떠난 한 달 간의 여행.

1년 전부터 계획했고, 6개월 전에 비행기 티켓을 끊고, 1개월 전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

가장 큰 난관은 엄마.

회사를 관둔다는 것.

큰돈을 여행에 쓴다는 것.

하필 그 여행지가 일본이라는 것.

그 모든 것이 엄마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퇴직금의 반 정도를 엄마에게 드렸고 남은 돈을 여행경비로 썼다.

그럼에도 한동안 엄마는 나와 말을 하지 않았고

내가 현관을 나서는 순간에도 전혀 내다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잠시나마 답답했지만

공항을 향해 몇 발자국 내딛자마자 행복해졌다.

그렇게 나는 하늘을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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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치의 기차표를 도착 첫날 전부 예약했다.

물론 일정 변경으로 취소 및 변경도 꽤 했다.

서랍정리 하면서 다 버려버린게 이제와서 아깝다.

계획이란 지키려하기보다는 틀어질 때를 대비하는 안전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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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걸어본 투명유리바닥.

겁이 나서 혼자 엉금엉금.

나 빼곤 전부 가족, 혹은 연인.

쟤 왜 저러지? 하는 시선이 느껴지는 듯 하여 용기 내어 성큼.

나도 다음엔 누군가와 같이 와야지!

수년 후 누군가와 함께 오려다가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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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달아요?

달아요 달아.

거짓이었다.

조금의 단맛도 없이 셨다.

도저히 먹을 수 없어서

여행 내내 숙소의 공용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아무나 먹고 싶으면 먹어라.

아무도 먹지 않았다.

결국 여행 말미에 쓰레기통으로.

내가 먹기 싫은 건 남에게도 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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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 온 이유.

소설 속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아니.

애니메이션 속 배경지를 가보기 위해?

아니.

그럼?

1인 로프웨이 타려고.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유명한 곳.

애니메이션 센과치히로의행방불명 배경지 도고온천으로 유명한 곳.

마츠야마.

일본의 성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지만 오로지 이 1인 로프웨이를 타기 위해 마츠야마성에 왔다.

고소공포증보다 하고 싶은걸 못하는 게 더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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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파 아무데나 들어간 식당이 성공적이었다.

과일을 예쁘게 진열하여 팔고 있었고

그 과일을 이용해 맛있는 런치를 팔고 있었다.

음식의 맛에 친절함이 버무려져 훨씬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언젠가 이런 가게를 차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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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짓밟아 놓고 평화를 외치는 이상한 곳.

본인들의 땅에 이런 비극이 왜 일어난 건지 정말 모르는 걸까?

전범국이 전쟁을 반대하며 평화를 부르짖는 히로시마 평화공원.

이날따라 날씨가 너무 좋아서 정말 평화로울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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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의 스텝과 짧은 대화를 나누다가 나의 생일인 것을 말하게 되었다.

한참 뒤 나에게 이런 선물을 주었다.

급하게 편의점에서 사온 것들로 만들어준 소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케이크.

여기까지는 참 감동적이고 고마웠다.

나를 갑자기 각국의 여행객들이 몰려있던 거실로 데려가더니

나의 생일을 알리고 축하를 해준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나는 그저 ‘땡큐’만 남발하다가 얼른 방으로 도망쳐왔다.

그 방에는 놀랍게도 나와 비슷한 일본인이 있었다.

영어를 할 줄 몰라 무서워서 방에만 있다던 그녀.

서로를 공감하며 메일주소를 주고받았지만 적어둔 쪽지를 잃어버렸다.

지금 만났더라면 SNS로 바로 친구가 되었을 텐데.

이 날을 계기로 영어를 배워야겠다 마음 먹은 지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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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당시 아빠는 일본 치바현에 거주 중이었다.

여행 하루하루가 나에게 너무 간절했기에 아빠를 만나는 건 귀국 전 잠깐으로 계획했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나의 여행을 반대하던 엄마가 그랬다.

일본 가면 아빠네 집에만 있어라. 돌아다니며 돈쓰지 말고.

그런 말도 안되는 엄마의 억지를 듣고 싶지 않았지만

여행 도중 이틀 정도 아빠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나의 여행 일정이 줄어드는 기분이 들어서 너무 싫었지만 나름 색다른 경험도 해보았다.

대중교통만 이용하다가 자가용도 타보고 고속도로 휴게소도 가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맛있는 아빠표 한식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일정이 꼬여 가지 못한 곳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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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전용 도미토리에 안내 받고 방으로 들어왔더니 다른 여행객이 아무도 없다.

혹시나 싶어 스텝에게 물었다.

이 방에 나 말고 아무도 없니?

응. 아무도 없어.

너무 무서웠다. 나 혼자 이 음침한 곳에서 잘 자신이 없었다.

다른 방은 없니?

있긴 한데 남녀 믹스룸이야. 그래도 괜찮겠니?

응.

새로 안내받은 믹스룸에 여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지금이라면 좀 망설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혼숙보다 텅 빈 도미토리에 나 혼자 있는게 더 싫었다.

그 믹스룸에서 같이 묵었던 여행객 중 반갑게 인사해주던 미국인이 있었다.

다음 날 기차역에서 그를 또 만났는데 영어로 자꾸 말을 걸었다.

기차시간을 핑계로 서둘러 기차에 탔는데 내가 탄 기차에 그가 또 타는 게 아닌가.

이 날을 계기로 영어를 배워야겠다 마음 먹은 지 10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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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나는 봉골레파스타에 꽂혀있었다.

어린 시절 입문했던 토마토소스. 고등학생 시절 처음 맛본 크림소스를 거쳐 20대가 되어서 오일파스타의 맛을 알게 되었다.

일본 특유의 단초의 맛, 달고 짠 맛이 좀 물리기 시작했다.

나고야 사카에역 주변을 돌아다니며 이태리음식점을 찾았다.

진짜 이태리에서의 봉골레파스타는 어떤 맛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봉골레파스타의 맛은 비슷했고 똑같이 맛있었다.

내일은 오랜만에 파스타 면 좀 삶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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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반숙 오므라이스.

이 반숙 오므라이스를 먹기 위해 미안하게도 한국에 있는 친구를 너무나도 괴롭혔던 기억이 난다.

충전식 국제전화카드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음식점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친구가 알려준 대로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며 더듬더듬 찾아가보니 드디어 타이메이켄이라는 식당이 나타났다.

솔직히 맛보다도 반을 갈랐을 때 촤르르 퍼지는 반숙의 비주얼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친구에 대한 고마움을 오므라이스와 함께 한 스푼 크게 떠서 앙.

파스타 말고 오므라이스를 해먹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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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늑해 보이는 공간은 야간열차에서 내가 예약했던 자리이다.

1층은 사람들이 일렬도 늘어져 자야하지만 계단 3~4개만 올라오면 이렇게 아늑한 공간이 있다.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대략 보름 전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예약을 해두었다.

야간열차는 유럽여행 때 처음 타보았는데 몸이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재밌었다. 매력 있었다.

그 기억에 일본 여행에서도 일부러 야간열차를 두 번 예약했다. 역시나 불편하고 피곤했지만 역시나 재밌었고 매력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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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북단 도시인 왓카나이에 왔다.

그저 와보고 싶어서 왔는데 준비 없이 온 자에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대중교통이 편리한곳이 아니었기에 지역을 여행하기에 매우 불편했다.

또한 번화한 도시가 아니라서 숙소가 여유 있겠지 싶었는데

번화한 도시가 아니라서 숙소가 별로 없었다.

미리 알아봐둔 호스텔에 가보았지만 만실.

역에 있는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도움을 청했다.

역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저렴한 숙소 있을까요?

그렇게 구한 민숙에서 짐을 풀고 버스 시간을 보며 골머리를 앓던 도중 한국인 남성이 접근해왔다.

여행하기에 교통이 불편해서 렌트를 하려고 하는데 괜찮으시다면 같이 하실래요?

여행지에서는 기분이 들떠서인지 낯선 남자와의 렌터카여행 제안에 겁은커녕 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운전과 주유비등은 그가 더 내고 나는 렌트비만 절반 부담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정말 다행히도 그분은 매우 담백했고 신사적이었다. 나보다 살짝 연배가 있으신 분이라 그런지 약간 든든한 기분마저 들었다.

렌터카로 달리는 왓카나이의 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한쪽은 바다. 한쪽은 초원.

우리나라의 강원도 대관령 쪽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훨씬 더 광활했다.

사슴과 소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들의 세상에 인간인 내가 함부로 끼어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끔 자연의 웅장함에 울컥 하며 겁이 나곤 한다.

이름도 얼굴도 완벽하게 내 기억에서 지워진 그 남성분께 이제와서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 날을 계기로 운전을 해야겠다 마음 먹은 지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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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을 가벼운 산보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상태로 가게 된 레분섬.

아무생각없이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야생화로 유명하고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가 장관인 곳인데 내가 간 날은 매우 흐렸다. 매우.

푸른 바다와 복숭아모양의 바위가 보여야 하는 이 곳에서 나는 안개 구경만 했다.

안개가 정말 심각해서 불과 몇 발자국 앞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말 태어나서 최고의 공포를 이 때 느꼈던 것 같다.

날씨가 궂어도 다른 여행객들이 많으면 괜찮았을 텐데 처음 들어보는 동물소리 말고는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겨우겨우 트레킹 코스를 빠져나와 마을로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버스정류장이 보이길래 선착장으로 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했다.

이런.

무려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때마침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여기서 배 타는 곳 까지 걸어갈 수 있나요?

아니. 멀어서 안 돼~

이러고서는 홀연히 사라지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으로 오더니 운전자가 말을 건다.

한국 여행객 때와는 달리 약간의 경계심을 가지려는 찰나 뒷좌석에 여학생이 앉아있는 걸 보았다.

정말 감사하게도 아까 마주친 할머니가 지나가는 이 분에게 나를 도와주라고 한 것이다.

차에 얻어 타고 선착장까지 가는 동안 여학생과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몇 마디 얘기를 나누었다.

한국에서 왔나요?

응. 한국 아이돌 아는 사람 있니?

비꾸방구!

응?

비꾸방구!

응?

비!꾸!방!구!

아~ 빅뱅!

친절한 할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귀여운 그의 딸 덕분에 무사히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를 타고 섬을 빠져나오니 거짓말처럼 날씨가 화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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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다테는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아침시장과 야경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하치만자카라는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풍광도 참 예쁘다.

하코다테에서의 첫날은 날씨가 약간은 어중간했다.

흐리다고 하기엔 맑고, 맑다고 하기엔 흐린.

결국 이 언덕에서 만족할만한 사진은 건지지 못하고 다음날을 맞이했다.

밖으로 나가보니 뜨거울 정도로 해가 쏟아졌다. 어디를 봐도 파란 하늘이 머리 위로 펼쳐져 있었다.

이대로 떠나버리기엔 너무나 안타까워 추가적으로 차비를 들여 굳이 하치만자카에 또 찾아갔다.

언덕을 오르며 덥고 힘들었지만 쨍하게 찍히는 사진은 그 노고를 다 잊게 해주었다.

여행을 다니면 날씨에 의연해져야하는데 아직도 그게 잘 안 된다.

흐린 오늘. 그래서 몸도 마음도 흐린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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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고 생각했던 한 달이 너무나 빠르게 느껴졌다.

단 하루도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행이 너무 평탄했던 걸까?

틀어지는 일정은 많았지만 사건 사고랄 게 없었다.

그저 소소하고 기분 좋은 에피소드들 뿐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한 번 도 안할 정도로 이 여행은 행복 그 자체였다.

여행 전은 엄마의 반대로 힘들었고, 여행 후는 막막한 현실 앞에 가로막혀 힘들었지만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 도시 도쿄에서 지는 해를 붙잡고 싶었다.

집에 와서 선물꾸러미를 펼치니 엄마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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