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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Joy Mar 10. 2024

절대적 위로가 필요한 밤

세탁기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밤은 있다. 

주저앉아 울게 되는 밤. 울 수밖에 없는 밤. 

누군가는 지나갈 감정에 대한 글이 식상하다 했던가, 무의미하다 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내가 하려 했던 모든 것을 할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내 마음대로 하는 시간이 너무 절실하다. 

지난해는 결실의 해였다. 다시 시작한 독일어 과정을 완료했고, 시험에 통과했다. 동시에 십여 년이 넘었던 경단년 생활을 접고 취업을 했다. 그러기 위해 인스타와 페북을 끊었고, 많은 이들과의 연락이 자연스레 끊겼다. 자주 만나던 친구들과의 만남도 줄었다. 독일어 시험은 정말 떨어지기 싫었다. 한국인 중에는 드물게 B1 시험에서 미끄러졌고, 웃으며 이야기하고 다녔어도 그게 꽤나 자존심이 상했었다. 아이들과 복닥거리면서도 꽤나 공을 들여 시험 준비를 했다. 그 와중에 정말 기적 같은 기회가 덜컥 찾아왔고, 훅 날아온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손아귀에 힘을 줬고, 또 펑크 난 재정을 메우기 위한 알바도 하나 했다. 아이들 키울 때와는 다른 의미로 바빴고, 다른 형태의 성과들을 쥐어 본 한 해였다. 그 덕에 일 년의 마지막 날 가족들에게 칭찬 세례를 받았다. 인생은 득이 있으면 실이 있기 마련이다. 그 명제를 벗어난 인생을 본 적이 없다. 이것도 저것도 다 쥔 것 같아 보이지만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잃고 있기 마련이다. 


오전 내내 내 취향의 드라마를 봤고, 외출을 하고 돌아와선 그림을 하나 그렸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타자를 두드리고 있다. 내내 쓰고 싶다 생각했는데, 시간을 통으로 내는 게 쉽지가 않았다. 아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늘 바빴고, 그래서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동동거리며 살았다. 나의 실(失)은 그런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들을 늘 한편에 나중에, 나중에 라며 미루며 살아가는 것. 그렇다고 해서 엄청나게 불행하거나 뻥 뚫린 상실감 같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누수 같은 것이었다. 바로 눈치챌 수 없지만 결국엔 표시가 나게 되어있는 것.

미루고 미룬 시간들이 나의 어딘 가에 구멍을 냈고, 가끔 그곳에서 새는 소리가 나고 물이 샌 흔적을 찾았지만, 다 괜찮다며 또 미루고 넘어갔다. 구멍은 결국 터져버렸다. 작은 구멍을 내버려 두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 똑똑 떨어지던 물방울은 졸졸 새더니 결국엔 댐문이 열리 듯 콸콸 흘러 났다. 마음의 댐이 무너져 내리자 마침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일이 터졌고, 그것들을 나는 감당할 힘이 없었다.


막내아들과 마트 계산대에 줄을 서자마자 중국말 흉내 내는 소리가 들렸다. 한 무리의 소년들 중 한 녀석이었다. 처음엔 잘못 들었겠거니 했다. 잘못 들은 거였으면 싶었다. 그런데 비슷한 소리가 또 들려왔다. 정말 오랜만에 당해보는 인종차별이었다. 웃으며 뻑큐나 날려줘도 될 일이었고, 그 애들 인성이 그 모양인 것에 내가 상처받을 필요는 없었다. 겨우, “너 뭐 하는 거니? 그거 인종차별이야!”라고 말하고 쏘아봤다. 그랬더니 무슨 소리냐면서, 자기도 외국인이라며 실실 웃어댔다. “너 방금 중국어 흉내 냈잖아! 난 중국에서 오지도 않았고, 중국인도 그런 말은 쓰지 않아. 네 부모한테 그렇게 배웠니?”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그 줄에 서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이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던 것도 서러웠다. 중국말 흉내는 긴 줄에서 계산을 마칠 때까지 멈춰지지 않았고, 그놈의 멱살을 잡고 경찰서로 갔어야 했다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참으며, 끝까지 눈에 힘을 주고 그 애들 노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정도가 내가 낼 수 있는 악다구니의 최선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의 장난에 이렇게 까지 무너져 내리는 건, 이미 매일을 살아가는데 써야 할 힘을 다 써버려서.. 그대로 채워지지가 않아서였다고.. 


직장 상사의 생일 파티에 가고 있는 길이었다. 잠시 그곳에 있다가 곧 인사를 하고 빠져나왔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그 어색함을 견디며 있고 싶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서 가짜 웃음을 지어 보일 힘이 없었다. 막내와 함께 맛있는 식당에 갔다. 내친김에 눈여겨봐 뒀던 카페에 가서 케이크도 시켰다. 그리고 미루고 미뤘던 그림과 글을 각각 하나씩 완성한다.  

그렇게 터지고 물이 흘러넘치고 나서야 보수 공사를 했다. 

딱 1년 전 이맘때, 작년 3월. 독일어 B2 과정을 시작하기 직전에 혼자 온통 꽃 천지인 전시회에 다녀오고선 천생인 놈팡이라며 글을 썼던 나는 1년간 적성에 맞지 않는 열심을 내며 살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열심을 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두려워서. 기댈 곳 없는 가난함이 나는 두렵다. 


누군가의 절대적인 위로가 필요한 밤이지만, 그런 날은 지독히도 혼자다. 그런 날일 수록 이상하게 주변에 아무도 없다. 인생은 결국 스스로 일으켜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외로운 것이다.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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