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선생님은 '그냥'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상담이 끝나고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쇼핑몰에 들렀다.
'그냥' 뭐라도 '하기' 위해서였다.
머리핀도 좋고, 옷도 좋고, '뭐라도' 사보려고 했다.
상담소 대기실에 Rainer Maria Rilke의 시집이 놓여 있어서, 잠깐 펼쳐 보았는데, 그래, 이런 시집을 한 권 사서 하루에 하나씩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청바지를 몇 개 골라 입어 보았다.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예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청바지가 또 필요할까, 멤버십 할인을 한다고는 하는데, 지난 세일시즌에 샀으면 훨씬 쌌을 텐데, 이 색깔은 너무 평범하지, 이 건 친한 친구가 자주 입는 거랑 너무 비슷하지, 아무래도 찢어진 청바지는 잘 안 입게 되겠지.
자주 가는 액세서리 가게에서 핀을 골라봤다. 크지 않은 매장을 샅샅이 뒤져가며 적당한 핀을 찾았다. 어떤 건 크기가 작았고, 어떤 건 디자인이 어딘지 모자라 보였고, 그나마 마음에 든 건 너무 비쌌다.
서점 역시 크지는 않았고, 시집 코너가 따로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릴케는 워낙에 릴케인지라 입구 쪽 매대에 그의 시집과 산문집이 몇 권 있었다.
시집을 사려고 한 이유가 명확했기 때문에 시집을 보는데, 시 치고는 꽤나 길고 산문 같아 보이는 첫 장에서 턱 막혔다. 하드 커버인 다른 책은 또 너무 비쌌다. 산문은 애초에 살 생각이 없었다.
결국 무엇도 사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문구와 장난감, 세제와 세면용품, 화장품 등등을 파는 매장에서 얼마 전에 친구가 맛있다고 했던 동결건조캔디를 찾아보았다. 젤리와 사탕, 달달한 간식이 모여있는 코너에서 한참을 살펴도 보이지 않다가 다시 한번 돌아보는데, 엇, 이건가 보다... 먹어보고 괜찮으면 한국 갈 때도 사가야지... 하리보는 맛있지도 않고, 이젠 한국에서도 너무 흔하니까.
그렇게 오늘의 '뭔가'는 사탕 세 봉지로 마무리되었다.
마침 Fasching 방학의 시작이었고, 뭘 해보면 기분이 좋아지겠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이번 겨울에 한 번도 타러 가지 못한 스케이트를 타러 가봐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날짜를 정하는 것부터 턱턱 막혔다. 아이들과 다 함께 할 것인지에 대한 것부터 어느 스케이트장을 가야 할지까지, 하려고 하자 이어지는 질문들에 제대로 된 답을 딱딱 낼 수가 없었다.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수 없이 겹쳐 있는 생각의 허들에 자꾸 걸려 넘어지는 것만 같다. '한다'는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너무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