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하게 웃고 있는 외할아버지의 사진이 내 어린 시절을 모아둔 사진첩에 있었다. 그 앞에는 겨우 걸음마를 뗀 내가 기저귀를 차 안 그래도 볼록한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아기였던 나도 할아버지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나, 둘 다 행복했던 찰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지도 않지만, 그 속에서 할아버지는 불행해 보였다. 대체로 슬프거나 화가 나 있었고, 자주 취해 있었다.
그는 형님의 죽음 이후 원치 않았던 장남의 삶을 떠맡았고, 고향에 남아 부모를 모셔야 했다. 그것은 그의 이상과는 너무 동떨어진 모양새였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아빠를 앉혀 놓고, "김서방, 자네는 모를세."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의 삶과 무게, 그가 품고 살았을 슬픔과 분노에 대해 내가 무엇을 알겠는가. 그저 단편적인 기억과 전해 들은 몇 가지 이야기뿐이다.
엄마는 자신의 괴로움에 갇혀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살려고 발버둥 쳤다. 강한 책임감과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는 철저함으로, 엄마의 방식으로 가족을 지켜냈다. 나는 타고난 기질이 엄마와 다르다고 믿었지만, 결국 엄마의 삶의 습관을 답습했고,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하게 살아왔다. 세대를 거듭하며 윗세대와는 다르게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우리는 결국 우울의 형질을 벗어나지 못했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장 봐온 짐을 받으러 나온 큰 녀석들이 두 손을 들고 반갑게 흔든다. 날은 흐리고 우중충한데,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해사하게 밝다.
잠깐, 그 밝음에 물들어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러모아 보면 행복한 순간들이 꽤 많다. 그럼에도 그 순간들로 삶 전체를 지탱하기엔 버거운 요즘이다.
자주 사라짐에 대해 상상해 본다. 상상을 구체화할수록 너무 많은 것이 남는다. 슥슥 문질러 자국도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질 수 있다면... 나의 무표정과 무기력과 울음이 누구에게도 끼쳐지지 않기를... 이 우울이 아이들에게는 옮아가지 않기를...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새 나가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방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