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에 느닷없이 퇴직 의사를 밝혔다.
Chef(독일에서 상사 또는 보스를 칭하는 흔한 호칭)는 놀라고 당황했지만, 일단은 알았다고 했다. 수요일에 나와 같이 일하는 자신의 Nachfolgerin(후임자)와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Chef는 심리치료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의 '밝은 에너지'가 치료적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했다. 그렇게 독일어를 잘하지 못하는 나를 덜컥 채용해 준 그는 나에게 은인 같은 사람이다. 그가 원하는 대로 7월까지 그룹을 마무리해 주고 떠나지 못하는 게 못내 미안했다.
키가 180cm가 넘고 덩치도 큰 A는 평소에는 좀 무뚝뚝해 보인다.
지난 10월인가, 11월인가부터 수요일 그룹은 그녀와 함께 맡게 되었는데, 오래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막 아동청소년 심리 치료사 자격을 취득한 그녀는 아이들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깊이 있게 다가갈 줄 알았고, 짓궂고 통제가 안 되는 아이들도 잘 다루었다. 그룹 치료 중에 아이들의 이야기와 연결해 감정에 대한 설명도 덧 붙였고, 간혹 독일과 뮌헨의 문화에 대해서도 설명하곤 했는데, 그 모든 것에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수요일 그룹을 시작하기 전, 그녀와 만났다.
그녀는 차분히 내 이야기를 듣더니, 충분히 이해한다며, 네 선택을 존중한다고 했고, 다만 아이들과 치료적 관계를 잘 마무리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나도 그 부분을 생각하기는 했다. 결정이 너무 갑작스러웠으니까. 아이들과 동료들과 좋은 마무리를 할 정도의 기간을 두기로 퇴직 일자를 조정했다.
집에 가기 전, 그녀는 허리를 숙여 나를 안아주며, '너 자신을 돌봐. 그래야 할 때야.'라고 말해주었다.
금요일엔 행정 업무를 보는 G를 만나러 사무실을 찾았다.
이곳에 취직하기 전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은 그녀였다. 나는 아들의 Therapie Praxis(치료소)를 찾고 있었고, 이곳이 그 대안 중 하나였고, 그 일로 그녀와 처음으로 통화하게 되었다.
독일에서 그렇게 친절하고 다정한 전화 통화는 처음이었다. 독일어 잘 못 한다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G는 못 알아들어 계속 물어보는 나를 위해 몇 번이고 기꺼이 친절한 설명을 이어 나갔고, 그것이 아들이 다니게 될 심리 치료소의 첫인상이자, 독일 첫 직장의 첫인상이 되었다.
사무실 문을 열자, 그녀는 퇴직 소식을 들었다며, 어떻게 된 일이냐고,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더니 자발적 퇴사를 할 경우 Arbeitslosengeld(실업수당)를 3개월 간 못 받게 될 것 같다며, Praxis 담당 세무사에게 전화를 하고, 한참을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월요일에 Chef와 A와 함께하는 회의가 있으니 최대한 Arbeitslosengeld를 받는 방향으로 이야기해 보겠다고 했다. A와도 다정한 포옹으로 인사를 나눴다.
Chef는 이제 거이 70이 다 되어간다. 지병도 생겼다. 그래서 그는 근무 시간을 줄여야 했고, 줄이고 싶어 했고, 그래서 그룹의 수를 점점 줄여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1년 전부터 해온 이야기인데, 지난 12월부터 본격적으로 그룹들이 합쳐지고 사라져 갔다. 그룹들이 줄어가자 현실적인 문제들이 왈칵 마음을 덮쳤다. 우울한 마음이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만 바라보게 했다. 얽힌 마음의 한 가닥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함이었다.
퇴직의사를 밝히고 나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너무 싹둑하고 잘라버린 것도 같지만... 이대로 모든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갈 여력이 없었다.
독일에서의 첫 사회생활
10년 간 공백 후 사회 복귀
의미 있는 한 걸음이었고, 한동안 머물렀던 그곳에서 다음 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가 왔다.
그전에 숨 고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