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참을 수 없는 그 한 마디

D-day / 이혼 얘기 꺼낸 날

by mijo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했던 말 중 가장 중요했던 한마디를 뽑는다면? 입안에서 맴도는 그 한마디, 때론 용기가 나지 않아 꿀떡 삼켜버리고 말았던, 그것은 타오르는 불덩이와 같아서 삼키면 내게 해(害)가 되고 뱉어내면……. 뱉어내면 사실 그 결과를 알 수 없어서 두려웠던 그 한마디.


“서아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서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터져버릴 것 같았다. 1초, 2초가 지날수록 가슴 속에 독이 서서히 퍼지는 것처럼 눈앞의 시야는 점점 어두워져 어떻게든 뱉어내야만 했다. 쥐어짜내듯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는 반응하지 않고 정면을 보며 운전만 하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고개를 가까스로 왼쪽으로 돌려 다시 이름을 불렀다.


“서아야.”


반응이 없다. 가슴이 짓눌린듯 저며왔기에 어쨌든 얘기하기로 했다. 얘기해야만 했다.


“행복하니?”


여전히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도,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다. 실은 눈도 꿈쩍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결혼생활 행복해?”


다시 물었다. 1초 정도 말이 없었을까, 시선은 앞으로 고정한 채 서아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살다 보면 싸울 수도 있는 거지…….”


마치 삶에 초연한, 관조적인 듯한 그 대답은 내게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솔직히 위선자의 말처럼 들렸다. 이번이 처음 싸운 것이 아니었기에 그 말은 관용적으로 내뱉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실 그 말에 약오르기도 했다. '한 시간 전만 해도 내게 그런 행동을 해놓고, 이제 와서, 뭐? 그럴 수도 있다고?' 결국 나는 가슴속에서 타고 있던 그 뜨거운 말을 꺼냈다.


“이럴 거면 각자 사는 게 낫지 않겠니.”


흠칫 놀란 듯했지만 평소에도 생각과 반응이 빠른 그녀는 내 말의 의도를 간파하고 되물었다.


“이혼하자는 거야?”


이어서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잘 생각해보고 말해.”


훈계형 말투……. '그래. 너는 항상 그런 식으로 말했지. 내 말을 처음부터 곧이곧대로 듣지 않지. 안 믿지. 그리고 말하지. "잘 생각해보고 행동하라"고.' 그녀의 시그니처 말투에 잠시 움찔했다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잘 생각해보고 말하는 거야.”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육성 대화였다. 이후 각방 생활과 조정기일과 본격적인 소송이 시작되고 나서까지, 문자메시지를 통한 언쟁을 제외하고 약 6개월 간 육성으로 대화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각자의 생활을 이어갔다. 한 지붕 아래에서.


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결심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혼인 서약을 맺었고 1년이 되던 즘에 이혼 얘기를 먼저 꺼냈다. 그동안 머릿속에 있던 온갖 잡생각과 스트레스와 초조함이 ‘이혼’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자 쾌도난마(快刀亂麻)의 이미지처럼 싹둑 잘려나가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던, 그 느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후에 소송과 각종 사건들이 일어나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아직도 그때의 ‘이혼’이라는 방안이 내게 찾아왔을 때의 그 명쾌했던 기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할 때 사람들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까? 그때의 난,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이성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첫인상과 이후에 정식으로 교제하면서 그때그때의 경험이 누적되고 결정적인 순간에 종합적으로 느꼈던, 단 한번의 기분에 따라 판단했던 것 같다. 더 단순화하면 ‘이 사람과 있으면 좋은가?’ 라고 물었을 때, 좋으면 결혼하는 것이고, 싫으면 얼마 가지 않아 헤어지는 결정을 했던 것 같다. 결혼의 결심도 결국은 호불호(好不好)의 이분법적인 감정이 몇 단계 세분화될지언정, 학창시절 코흘리개가 첫사랑에게 고백할 때의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렇다.


감정이라는 것만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없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기 어려운 건 그렇다 치더라도, 내 감정에 대해서 나조차 모르니 더 답답할 일이다. 감정에 ‘휩싸이다’라는 표현처럼, 사랑에 ‘눈이 멀어서’라는 표현처럼 순간의 감정은 나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그리고 그 판단에 대한 대가를 변호사 비용과 1년 이상의 인고의 시간을 통해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시(詩)의 매력을 처음 느꼈던 적이 있다.


문단(文壇)에 오르거나 어디에 입상한 적은 없지만, 시 쓰기에 한창 재미 들였던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시의 필수 요소는 압축과 여운 두 가지. 함축과 여백이라고 불러도 좋다. 이 특징을 살리기 위해 끝없이 조각하는 데에 시의 매력이 있었다. 끌과 망치를 가지고 돌이나 나무를 여기저기 조금씩 깎아내어 사람의 얼굴을 빚어내는 것처럼, 처음엔 막막한 형태의 모양이라도 시간이 지나 이목구비가 조금씩 뚜렷해지고 윤곽이 드러나듯, 시 또한 처음엔 어떤 추상적인, 다듬어지지 않은 하나의 느낌이나 생각으로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시의 문단과 구절 이곳저곳을 조금씩 조금씩, ‘펜’이라는 끌로 다듬는 데에 매력을 느꼈다.


결과가 어떻게 됐든, 아쉬움이 남든, 만족하든, 잡생각 없이 시 한편을 조각하기 위해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내가 쓴 글귀들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고개를 기울여 이렇게도 바라보고 저렇게도 바라보고, 이 단어 대신 저 단어를 바꾸어 넣어보며 하루를 보내는 데에 시의 참 매력이 있다고 느꼈다. 게다가 돌이나 나무 조각 그리고 회화처럼 특정한 공간에서 특정한 도구들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기차 안에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다 머릿속에서, 또는 품 안의 수첩을 꺼내 언제 어디서든지 시를 조각할 수 있다는 건 두 번째 매력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긴 호흡으로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이건 직장에서 업무적으로 쓰는 홍보용 보도자료나 가끔 사내 게시판에 올리는 수필 형태의 글이 아닌, 두꺼운 책 한편 분량의 글을 처음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하긴, 내 결혼 생활과 이혼을 시 한편으로 조각해서 담아낼 수도 없었다. 이젠 내 인생의 몇 년의 기록을, 그리고 이 몇 년의 파란(波瀾)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찾아 젊은 시절, 유년 시절의 몇몇 이벤트들을 담아내기 위한 긴 기록이 필요했다. 한번 초안을 완성하고 나면, 틈틈이 퇴고하는 작업으로 이혼 과정에서 맞닥뜨릴 심란함, 혼란함 속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글은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서나, 권선징악의 교훈서도 되지 못한다. 한 가정의 진흙탕 싸움을 보며 어떤 이에게는 공감과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어떤 가정에는 상대적 우월감 같은 안심을 느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 글은 적잖은 공감을 얻을 것이라 확신했고, 그 공감은 또한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적잖은 이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런 위로받는 모습들을 보며 다시 내가 위로받고 싶다.




「드디어, 이혼…….」의 끝은 어떻게 완성될까? 저자가 결말을 이미 알고 있지 않냐고? 아니다. 이 프롤로그는 말 그대로 도입부다. 대부분 책의 머리말은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망라해서 요약해서 쓴다는 걸 알고 있다. 어떤 책은 머리말만 읽어도 한 권을 읽은 것처럼 핵심적이 내용이 모두 들어있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머리말은, 적어도 이 글의 경우에는 미완성으로 시작하면서 처음의 마음가짐과 생각들을 가감없이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혼이건 아니건 어떤 결론이 있고 난 후 에필로그를 쓸 무렵에는 ‘드디어 이혼했다’가 되던, ‘드디어 이혼을 도전했지만 실패했다’가 되던 그 결과는 열려 있는 상태다.


다시 말하면 이 프롤로그를 작성하는 현재는 모든 사건들이 종료된 시점이 아닌 사건의 한 가운데인 것이다. 처음부터 책을 집필할 생각은 없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사건들을 겪고 난 후에야, 마음을 다잡기 위한 수행도구로서 집필을 떠올린 것이다.


이 사건의 결말은 아직 나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결말로 될 것이라는 추측은 있지만, 나 또한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즉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생각지도 못한 판결이 나올까봐 지금 이 순간도 가슴을 졸이며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시간적인 순서대로 담아서 이 지저분한 여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다. 그래서 이 연재를 다 읽고 난 때쯤에는 어떤 이에게는 ‘드디어 이혼을 결심했다’가 될 것이고, 다른 이에게는 ‘드디어 이혼 생각을 접었다’가 될지도 모른다. 내 경험이 어떤 식으로든 지금도 갈등하고 있을 당신의 결정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