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내 마음 갈피를 못 잡는

[D+56]

by mijo

주말 동안 여기저기를 많이 돌아다녔다. 해는 어느덧 하지(夏至)를 지나 초복(初伏)을 향하고 있었다. 약 두달 전 그녀에게 이혼 얘기를 꺼냈고 그 이후로 각방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총 여덟 번의 주말이 있었다. 포천 국립수목원, 광명동굴, 대천해수욕장, 대형쇼핑몰 등 몇년 만에 홀로, 그야말로 홀가분하게 돌아다녔다. 덕분에 평소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세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 조막만 한 아이의 손을 잡거나 유모차를 끌고 가는 가족들, 두 손에 풀을 바른 것처럼 딱 붙인 채로 걷는 연인들, 바지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걷는 중년 남편과 그 옆으로 누군가와 큰 소리로 통화하며 따라가는 아내의 모습 등 내 앞에 걸어가는 다양한 뒷모습들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전환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애들을 몰고 다니는 부모를 보며, ‘아이고, 고생이 많으시네’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또 그런 모습에 마음 한편에 부러움이 솟아나기도 했다. 화장도, 입은 옷도 아직은 일체감이 없는 20대 초반 커플의 모습을 보며 ‘으이구, 좋을 때다’ 하는 진부한 관용적 표현이 머릿속을 스쳐가기도 했다.


토요일 저녁, 홀로 여행을 마치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돌아와 난 그동안 내 결혼생활에 대해 하고 싶었던 말들을 스마트폰 메모장에 1시간 가까이 써내려갔다. 우리의 결혼생활에 대한 생각과 이제는 서로의 행복을 위해 헤어져야 한다는 내 결심과 그 이유들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 내용을 그녀에게 보냈다. 약 1,000자 분량의 편지였다. 그녀와 연애하면서부터 느꼈던 내 생각들과, 결혼하고 나서도 고쳐지지 않았던 그녀의 고집과 잘못된 생각들……. 마치 뒤끝 오지게 넋두리하는 별종 인간처럼 한꺼번에 토해 내는 듯한 모양새였지만, 더 이상 남은 미련―이 결혼, 그리고 그녀에 대한―이 없었기 때문에 ‘이걸 받아들이는 것은 이제 너의 몫이다’라는 생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이 장문의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갑자기 쓰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그저께 목요일 밤, 그녀의 직장 상사가 한밤중에 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밤 10시에 사무실에서 잔업을 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모르는 핸드폰 번호가 뜨며 전화기가 진동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홍유라예요.”


서아가 유일하게 꼬리를 내리는 홍유라 부장의 목소리였다. 취했는지 목소리를 차분하게 하려는 듯 중간중간 침을 삼키는 것처럼 말이 끊겼다.


“서아하고, 아직, 화해 안 했어요?”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나는 약간 당황했다.


“음, 네.”


“화해 안 할 거예요? 아니,”


그리고는 통화가 끊어졌다. 한 10분 동안은 아무 일도 하지 못 하고 사무실 벽에 걸린 시계를 멍하니 바라만봤다. 밤 11시가 다 돼서 온 전화라……. 그리고 11시 30분경 내가 집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고, 어둠 속을 뚫고 그녀의 반려견 두마리가 나를 반길 뿐이었다. 나는 추론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집에 없고, 근처 아파트에 사는 그녀의 상사가 갑자기 내게 전화를 하다 끊는다? 그리고 그 둘은 그렇게 그 상사의 집에서 술을 마시며 논 적이 몇 번 있기 때문에 지금 서아는 홍유라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확실하다. 확신이 서자 그들이 나눴을 대화가 머릿속에 이미 그려지기 시작했다.


“야! 너네 아직도 화해 안 했어?”


“아직이요.”


“아 정말.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오래 끄네. 이혼 얘기가 그렇게 쉽게 나오냐! 니 남편 번호가 나한테 있던가……. (몇분 후) 여보세요. 홍유라예요. 서아하고, 아직, 화해 안 했어요? 화해 안 할 거예요? 아니,”


그녀가 얼른 상사에게 달려가 전화기를 뺏어 끊었을 것이다. 아니면 주변의 만류로 자진해서 끊었을지도……. 아무튼 위와 같은 추측과 생각들이 가지에 가지를 치면서 심란해지기 시작했고, 그녀가 과연 그녀의 지인들에게 나를 어떻게 표현할지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가 무슨 일이 있으면 아무 말도 안한다는 식으로 표현했을 거라고 본다. 그래서 내가 이혼 얘기를 꺼내고 거의 두 달이 다 되어서 다시 한번 내 입장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된 정보 그만 퍼뜨리라고.




자정이 넘어 금요일이 되었고 새벽 1시가 가까워 올 때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김없이 강아지들(코코, 보리)이 중문으로 달려가 앞발로 문을 긁어댔다. 서아는 강아지들에게 친근한 듯한 말투로 뭔가 얘기하는 듯하더니 잠시 후 안방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각방 생활 이후로 그녀는 자신이 머무는 안방 문 닫는 소리로 분노를 표현하고 있었다.


일요일 늦은 오후에 그녀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그래. 니 입장 잘 읽었다. 나도 원래 내 입장 정리해서 다음 주까지 알려주려고 했으니까.. 너도 그렇게 알고 있어.』


평소 내게 ‘오빠’라는 호칭을 붙이던 그녀가 갑자기 '니', '너' 라는 반말 호칭을 썼다. 뭐지? 이제 영원히 남남이라는 건가? 원래 자기도 자신의 입장을 알려주려고 했다는 부분은 신뢰가 가지 않았다. 뭐랄까, 아무 말도 안 하면 체면 구기는 것 같아서 뭐라도 내뱉은 것 같은……. 사실은 내가 이혼 얘기를 먼저 꺼내고 얼마 가지 않아 내 스스로 철회할 때까지 내심 기다렸던 건 아닌지 넘겨짚기도 했다. '지가 그래봤자지.', '저러다 알아서 꼬리 내리겠지.' 하는…….


어쨌든 자기도 입장 정리해서 조만간 메시지를 보낸다고 했으니 그것만 알고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런 반말에 살짝 빈정상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너 왜 갑자기 반말해?”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바로 물어보기엔,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고 더는 말도 섞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에 대한 미련은 이제 없으니까.




월요일인 오늘, 괜히 심란하다. 왜지? 그녀에게 1,000자의 편지를 보내고 나서 마음이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온종일 당황스러웠다. 가까스로 저녁 6시가 되었다. 담배를 한대 피우고 사무실에서 저녁으로 햄버거를 먹고 또 한대 피우고 말았다. 뭐지? 혼자가 될 거라는 생각 때문에 두려운 건가? 아니면 조만간 양가의 부모님들이 성화를 낼 것 같은 모습에 벌써 피로해서 그런가?


그러다 나는 다시 안정을 찾는 시도를 했다. 그것은 지금 결혼생활에서 지옥 같았던 나날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겪었던 일들, 참아야 했던 일들을 하나 둘씩 떠올렸다. 지난 연애와 결혼의 기간으로 약 2년 간은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서로 친구처럼 장난치며 웃던 나날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좋은 순간들을 갉아먹는 마찰이 하나 둘씩 생길 때였다. 매번 같은 종류가 아니었음에도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강도는 더 강해졌고 만성(慢性)이 되어갔다, 마치 바이러스가 내성을 가지듯이.


‘그래. 이렇게 살 순 없어.’


다시 한번 다짐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과연 서아는 어떤 입장을 내놓을까? 아마도 지금 살고 있는 P아파트에 계속 있고 싶어할 것이다. 내가 그녀의 입장이어도 지금까지 생활해온 것이 아까울 것이고, 이사며, 집 구하는 일이며 그 모든 과정이 생각만 해도 피곤할 것이다. 하지만 P아파트에 그녀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재정적으로 도움을 준 것도 아니고 관심과 노력을 나만큼 쏟은 것도 아니었다. 즉 대부분 나 혼자 돈 쓰고 시간 쓰며 꾸려온 아파트에 그녀가 계속 살고 내가 나가기를 바라는 것은 염치가 없는 것이다. 사실 나 또한 이 아파트에 미련이 있다. 내 단독명의인 것은 둘째치고, 그동안 개인적인 지출을 줄여가며 어느 정도 목돈이 생길 때마다 대출금 중도상환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이젠 월 부담이 100만 원 밑으로 떨어졌는데, 그녀가 여기서 혼자 살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과연 그녀의 벌이로 감당할 수 있을까?


『이혼소송에서 전업주부가 노동의 댓가로 받아낸 평균 위자료는?』


생성형 AI 프로그램에 질문을 입력해봤다. 그녀가 아닌 나를 위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난 전업주부는 아니고 회사를 다니며 경제활동을 했으므로 위자료는 많이 못 받겠지. 그래도 나 홀로 가계를 관리하며 공과금 납부며, 장보기며, 요리며, 설거지며, 쓰레기 버리는 일이며 그런 기여는 그녀보다 월등히 많았고, 주변에도 티가 날 정도였으니 주장은 해볼 만하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찬 때문인지 오늘은 하루종일 사무실 일이 영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 일 저 일로 전화벨이 울리고 기계적으로 신속히 받고 응답하고는 있지만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고, 상사가 업무에 대한 어떤 얘기를 하는데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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