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2]
변호사를 찾아가야 했다. 금요일 오후, 회사에 반차를 냈다. 급히 생각해 낸 건 아니고, 이혼 얘기를 꺼냈을 때부터 여러 시나리오 중의 하나로 스치듯 생각은 했었지만 이젠 정말 변호사가 꼭 필요해졌다. 즉, 협의이혼은 물 건너간 것이다.
며칠 전 그녀와 나눈 문자 대화가 결정적이었다. 내 입장을 들은 그녀가 자신의 입장도 알려주겠다고 해놓고 차일피일 미뤘다. 내가 한번 더 얘기를 꺼내자 이번엔 만나서 자기에게 사과 먼저 하지 않으면 협의 이혼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자메시지로 말싸움이 시작되며 소리없는 총성이 오갔다.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는 내 결정에 불을 댕겼다.
『니가 지금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거야. 너 때문에.』
『행동하기 전에 잘 생각했어야지. 니가 나한테 지금 이래라저래라 할 입장은 아니잖아?』
‘또 훈계형 말투…….’
두 번째 메시지를 보고 든 생각이었다. '행동하기 전에 잘 생각하라'……. 아무런 영양가 없는 문장, 당사자간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도 못하는 저 문장에 속이 뒤집어졌다. 대체 왜 저런 표현을 쓰는 거지? 저게 대화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냥 화자의 화풀이 중 하나로, 상대를 제압하는 표현 중의 하나일 뿐이다.
원만하게 헤어지고 싶다고 얘기했지만 대화가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했었다. 나도 매끄러운 대화의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그녀는 언쟁에 관해서는 반응속도도 빨랐고, 상대의 말꼬리를 놓치지 않고 바로 반격하는 카운터공격에도 능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논리적으로도 말싸움을 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치 뭔가 확성기로 크게 떠들어 제압하는 듯하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상대를 이해시키거나 설득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요점이 없는, 요란한 빈 수레처럼.)
네이버 지도 앱을 켜고 가까운 변호사사무실, 법무법인을 찾기 시작했다.'이혼전문' 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곳이 꽤 많았다. 이혼 관련 사건만 처리해서 '전문'이라는 건지, 다 잘 하는데 이혼 분야는 특히나 잘 한다는 건지 까지는 자세히 조사할 여유도 없었다. 리뷰는 어떤지, 홍보 내용은 뭔지까지만이 내가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한계였다. 그중 법무법인Q가 눈에 들어왔다. 큰 조직일수록 왠지 체계적으로 운영될 것 같았기 때문이라는 생각 그것 하나뿐이었다. 전화를 걸어 접수하는 여직원과 상담 일정을 잡았고, 약속한 시간인 금요일 오후 4시에 맞춰 9층 사무실에 들어갔다.
로비에 있는 소파에서 잠깐 기다리는 동안 리셉션에 있는 두 명의 여직원 중 한 명이 내 옆에 앉아 간단한 질문 몇 가지를 했다. 내 직업이 무엇이며, 자기들의 회사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리뷰가 참 많더라고요?”
내 답변에 여직원은 따로 반응하지 않고 뭔가를 계속 적으며 다음 질문을 했다. 리뷰 많은 것만 보고 골랐다고 자백했으니 바보 같은 대답이었다. 5분 뒤 그녀는 나를 한쪽에 있는 회의실로 안내했다. 투명 유리로 덮인 긴 테이블과 의자가 양쪽에 4개씩 총 8개가 있었다.
‘아, <이상한변호사 우영우>에 나왔던 회의실…….’
또는 지난 몇 개월 각방 생활하며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미국 드라마 <베터 콜 사울(Better Call Saul)>에 나왔던 로펌 회의실이 생각났다. 우영우보다는 킴 웩슬러(Kim Wexler)가 갑자기 그리워졌다. 사고뭉치 남자주인공을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비운의 여자 주인공. 굵은 그녀의 목소리가 참 섹시했다. 서글퍼졌다. 그런 생각에 잠기면서 의자에 앉아 맞은편을 바라봤다.
'씨이…….'
욕이 나올 정도로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가을 날씨였다. 왜 아름다운 풍경은 항상 이런 상황에서만 눈에 들어오는 걸까. 순간 내 시점은 내 몸을 떨어져 나와 입구 쪽 천장 구석에서 나를 다시 바라봤다. 말끔하고 화려한 사무실의 인테리어와 조화되지 않게 구부정하게 앉아있는 서른네 살의 샌님 같은 남성. 그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맞은편의 창문을 통해 푸른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뿔테 안경을 추어올린다.
한 5분 정도 지나자 한 남성이 문을 열고 자신을 사무장이라고 소개하며 명함을 건네 주고 자리에 앉았다. 6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코에 뾰루지가 났는지 빨간 점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왜 이혼하고 싶은지 내게 바로 물어봤다. 지금 되돌아보니 이혼 사유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되돌아보니, 나는 협의이혼을 하고 싶지 않아 남은 선택지로 소송을 생각한 것이었다. 사무장은 「민법」 제840조를 줄줄 외기 시작했다. 마치 본인이 의도하지도 않게 수많은 상담을 통해 억지로 외워서 피곤하다는 눈빛과 함께.
“이혼 소송 사유는 민법에 딱 6가지로 정해져있어요. 배우자가 부정행위를 했다던지, 이게 대표적이고요. 그 다음에 배우자가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거나, 아니면 배우자나 처갓댁에서 의뢰인을 부당하게 대한다거나, 아니면 배우자가 시댁에 와서 막 대한다던지, 행방불명이던지 아니면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는데...”
설명을 바치고 사무장은 내게 하나하나 물어보기 시작했다. 하나씩 답하다 보니 그런 사유들에 딱 맞게 떨어지는 경우가 없는 것 같았다. 난 평소 그녀의 고집과 독선적인 성격으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역설했다.
“성격차로 이혼 소송해서 이기기는 사실 힘들어요.”
아! 생각보다 힘들다니……. 이건 내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사실 이혼소송에도 딱 정해진 사유가 있다는 건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도 참 바보 같지. 내가 협의이혼을 제대로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그녀의 성격 때문이었다. 그놈의 불 같은 성격…….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아 윤기 나는 회색 빛깔의 양복을 입은 남성이 들어왔다. 사무장은 그를 변호사님이라고 소개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아침에 면도를 했음에도 수염이 빨리 자라는 체형인 듯 코 밑과 턱 부분이 벌써 거무스름하게 티가 나기 시작했다. 사무장은 나와 10분간 상담했던 내용의 요지를 변호사에게 전달했다.
“설명 들으셨겠지만, 이혼소송은 막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도 우리가 승산이 있는지 하나하나씩 여쭤볼게요. 부인이 선생님에게 언어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폭력성을 보였나요?”
“그건 아니었어요. 고집이 좀 강하고, 최근에 저를 무시하는 언행이 좀 있었죠.”
대답하는 내내 빠른 속도로 지난 결혼생활을 면면이 훑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부부관계는 좀 어떠셨어요? 성생활 쪽으로”
“신혼여행 때에도 그런 게 없었으니까…….”
“성생활이 아예 없었다고요?”
변호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소 큰 목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옆에 앉은 사무장도 뭔가를 적던 중 놀랐는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그랬다. 내 결혼생활 특징 중의 하나는 성생활이 없었다. 사실대로 말했다.
“연애 초반엔 그게 좀 있었는데, 뭐랄까, 제가 원하는 만큼 그 여자도 열렬히 원하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저만 표현을 하자니 이기적인 것 같아서 그냥 생각을 접고…….”
한 10여분 간 내 결혼생활의 대략적인 정보를 들은 변호사와 사무장은 각자가 내게 하고 싶은 얘기를 번갈아 했다. 그중 사무장은 유독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힘들다', 즉 승산이 없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다가 1~2분 정도 말이 없던 변호사는 펜을 수첩 위에 내려놓으며 인심 쓰는 듯한 말투로 얘기했다.
“한번 해보시죠! 지금까지 말씀으로는 선생님께서는 성생활에 대한 욕구가 있었지만 상대방이 거부한 거나 마찬가지고, 또 평소에 선생님을 좀,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듯한 행동도 자주 했고, 또,”
나뿐만 아니라 자신도 설득하려는 듯 이런저런 이유를 혼잣말처럼 얘기하던 그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몇분 뒤 결재판 같은 검정색 서류철을 들고 다시 들어왔다. 표지를 열자 계약서로 보이는 서류가 보였다. 변호사가 표시한 곳에 내 인적사항과 서명을 적었다.
회의실을 나오고 나는 리셉션으로 바로 안내됐다. 500만 원을 결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계약서를 리셉션 직원에게 건네며 내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무언가를 여직원에게 중얼거리며 얘기했다. 여직원이 내 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결제 도와드릴게요. 할부로 하실까요?”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상냥한 목소리였다. 상냥했지만 난 굳이 눈을 마주치지 않고 카드를 건네며 대답했다.
“네. 3개월로 해주세요.”
부가세 포함 550만 원. 요즘엔 다들 부가가치세 10% 얘기를 결제하기 직전에 말하는 버릇들이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자신들의 보너스인 양. 삐빅빅빅빅- 삐리릭 하고 카드 결제창에 안내 문구가 뜨고 서명을 하고 나니 영수증이 쥐어졌다. 소송도 다를 게 없었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보다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돌아오는 건 내 손바닥 반만 한 카드결제 영수증 뿐. 변호사는 내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나이가 있는 사무장은 조금 더 자리에 있다가 내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우리 변호사님이 유능하시니까 아-주 잘 도와드릴 거예요.”
형식상 하는 말이었겠지만 단조롭지 않고 정감 있는 말투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나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사무실을 나왔다. 산책하며 머리를 식히려고 근처 수목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햇볕이 뜨거워서 영화관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무장의 답변 중에 일반적인 이혼소송은 아니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영화관으로 가는 길. 머릿속에서는 그야말로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뭐랄까, 잡생각이 평소의 몇배 이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나머지 뇌가 마비된 것 같은 느낌. 나는 다만 안전운전이라는 미션만을 수행하기 위해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핸들을 놓지 않는 로봇처럼 느껴졌다.
법무법인에서는 조만간 내 핸드폰번호로 이혼진술서를 작성할 수 있는 링크를 보내준다고 했다. 그 서류를 작성하고 나면 나중에 법원에도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조만간 그녀도 내가 법원에 낸 서류를 받아보겠지?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내 소장을 받아 든 그녀는 어떻게 반응할까? 화를 낼까? 벌써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미안함보다는 민망함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야. 민망할 것도 없다. 난 이미 내 계획을 그녀에게 얘기했다.
『니가 지금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거야. 너 때문에.』
‘나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며칠 전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게 카톡으로 했던 말들이 다시 떠올랐다.
『니가 지금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거야. 너 때문에.』
'나 때문'이라고……. '나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