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3]
법무법인Q에 다녀온 지 하루가 지나고 문자메시지가 왔다. 내용 중에는 이혼진술서 작성을 위한 링크가 첨부돼있었다.
『예시를 참고하여, 시간 순서대로 육하원칙에 따라 작성해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진술서는 담당변호사가 사실관계를 검토하여 의뢰인께 최선의 결과를 드리고자 사건을 진행하기 위한 자료입니다. 』
마치 귀찮은 설문조사처럼, 생각보다 많은 문항들에 창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며 며칠 동안은 섣불리 달려들지 못했다. 그리고 추석연휴가 다가왔다. 시골집에 다녀온 후 남은 기간 중 하루는 A시의 구도심으로 차를 몰고 가서 외관이 적당해 보이는 PC방에서 들어가 작업하기로 했다. 연휴의 PC방 풍경이란 성탄절 명동성당 일대의 모습과 다름없었다. 많은 인파와 젊은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 다만 PC방은 그 젊은이들이 모두 남성이었다는 점과 장소가 실내라는 점, 기쁨의 욕설과 담배 연기가 한데 뒤섞여 있었다는 게 차이점이었다. 사촌동생뻘 되는 그들 틈에 끼어서 이혼진술서를 작성하는 것은 일종의 특훈처럼 느껴졌다.
(법원에서 가사조사 시 확인하는 당사자 인적사항)
▲ 의뢰인
- 성 명 : 윤재희
- 생년월일 : 1990년 X월 X일
- 직 업 : 공무원
- 최종학력 : 대학교 졸업
- 혼인관계 : 초혼
- 현재거주지 : 충남 A시 00구 00아파트 107동 1008호
▲ 상대방
- 성 명 : 조서아
- 생년월일 : 1992년 X월 X일
- 직 업 : 회사원
- 최종학력 : 대학원 졸
- 혼인관계 : 초혼
- 현재거주지 : 의뢰인과 동일 (각방 생활 중)
▲ 상세 인적사항
- 결혼 경위 : 연애
- 동거기간 : 10개월
- 결혼식 일자 : 2023. 8월 XX일
- 혼인신고 일자 : 2023. 11월 XX일
- 별거기간 : 없음
- 자녀: 없음
- 상대방의 이혼의사 : 있음
< 어떻게 만나서, 어떠한 계기로 결혼 및 동거에 이르게 되었는지, 결혼 준비과정은 어떠했는지 적어주시고, 아울러 배우자의 성격이나 배우자 가족들에 대해 특별히 알려주시고 싶으신 부분이 있다면 기술해주세요.>
▲ 처음 만난 계기
처음 만나게 된 것은 2022년 3월경 한 소개팅 앱을 통해서였습니다. 당시 저는 직장을 B시에서 J시로 옮긴 지 6개월이 지났고 아는 지인이 없어 심심해하던 차에 여러 소개팅 앱 중 하나에 가입했었고, 어느 날 우리가 서로의 프로필을 열람했다는 기록을 알게 되자 제가 먼저 연락하면서 만남은 시작됐습니다. 얼마 지나 A시의 한 공원에서 처음 만나 간단히 대화를 나눴고, 그 다음 만남은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면서, 그 이후부터는 데이트도 활발히 하면서 진도는 점점 나아갔습니다. 생각보다 활발한 성격이었고, 웃음이 많고 농담도 잘 했던 그녀는 제가 그동안 만나봤던 이성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이었죠.
▲ 결혼 전 동거
만나고 6개월이 지나 그녀의 자취방에 동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 살고 있었던 제 자취방 건물에 문제도 있었고, 그 당시 서로의 자취방에 번갈아 놀러가기도 한 사이였고, 또 그녀도 상당히 개방적이었기에 또 나중에 결혼할지는 몰라도 미리 동거 생활을 하면서 서로 알아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2022년 10월경 A시 XX동의 다세대주택을 계약한 후 그녀와 저는 각각 살고 있던 자취방을 정리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고,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약 10개월동안 동거생활을 이어갔습니다.
▲ 배우자의 성격
울산 토박이었던 배우자의 성격은 꽤나 활발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아니면 아니다'라고 단박에 얘기할 정도로 솔직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솔직함이 너무 강한 나머지 그녀의 직장에서 직원들과 다툼이 있을 때 상대가 처참히 무너질 때가지 마음에 상처받을 수 있는 말들을 했다는 것을 종종 그녀를 통해 듣고는 했습니다. 다른 팀 직원과의 사이가 점점 악화되어 회사는 그녀에게 별도의 사무실을 마련해줄 정도였습니다.(업무능력은 탁월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그녀를 계속 두고 싶어했습니다.)
그렇게 활발한 성격의 그녀지만 그녀와 동거에 이은 결혼생활을 하면서 의외라고 느꼈던 것은, 저와의 갈등 상황 때마다 말을 하지 않는 습성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찰이 생기면 생길수록 서로 말을 하지 않는 기간은 처음엔 하루, 이틀에서 나중엔 일주일로, 그 다음엔 3주, 한달로 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연애 초반엔 제가 먼저 다가가 무슨 서운한 것이 있는지 알아보려 하였으나, 그녀는 저와 비슷하게, 그날 서운한 것이 있으면 그날 풀려고 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잘못으로 제가 기분이 안 좋을 때에도, 제가 시무룩하다는 이유로 자신 또한 얘기를 먼저 안 하는 모습에서 부부생활의 미래는 암울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식으로 앞으로 수십년을 배우자와 함께 하기에는 제가 받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극심할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가. 재판상 이혼사유
(1) 상대방의 부정행위
(제3자와의 교제, 성관계, 동거 등 외도)
(2) 상대방의 유기 행위
(장기간 별거 및 부양 안 함, 지속적인 외박 및 가출)
(3) 상대방 및 상대방 부모님이 나에게 했던 부당대우
(폭언, 폭행, 학대, 무시, 모욕, 상대방 부모님의 괴롭힘 및 갈등)
(4) 상대방이 나의 부모님에게 행한 부당 대우
(폭언, 폭행, 무시, 모욕, 괴롭힘 및 갈등)
(5)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
[중독(음주, 마약, 도박, 게임), 극복할 수 없는 성격차이, 의처증 및 의부증, 경제적 무책임 등]
▲ 전무한 부부관계
결혼하기 전에 A시에서 동거를 시작했던 때부터 결혼 후 현재까지 부부관계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신혼여행에서도 없었지요. 그 이유는 우선 그녀는 연애할 때부터 스킨십이나 성관계에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배우자를 만나기 전 과거의 다른 이성들과 연애할 때의 경우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녀는 그런 것을 즐기는 것 같지도 않아 혼자만 애쓰는 제 모습이 씁쓸하기까지 느껴졌습니다.
둘째로, 그녀와 자취방 동거에 이은 결혼생활을 하면서 그녀의 거리낌 없는 표현방식은 부부관계의 무드를 깨뜨리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부부관계는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아닌, 서로에 대한 어느 정도의 성적 매력이 있어야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평소 그녀에게 서로에 대한 신비주의는 (비록 몇년 뒤엔 없어질지라도) 어느 정도 지켜주자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고집이 센 성격 때문인지 저의 호소 아닌 호소를 진지하게 듣지 않고, 집안에서 생활할 때 "방구 나와!", "생리 터졌어!"라고 말하는 등 노골적인 표현들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집안에서 또는 이따금 공공장소에서도, 그녀의 앞에 제가 서있을 때 제 엉덩이쪽을 자신의 손가락을 이용해 밑에서 위로 스치듯 친다던지, 남자의 성기를 습관적으로 희화화하는 표현을 쓰는 등 서로간에 얼마 남아있지도 않은 성적 긴장감을 모두 증발시켜버렸습니다.
부부관계를 살려보려는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녀의 소극적인 자세와 노골적인 저급 표현은 연애할 때부터 있었습니다. 불씨가 꺼져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시내에 있는 성인용품점에 같이 들어가 제품을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후에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우리의 성생활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있었습니다.
▲ 경제적 무책임
결혼 이후 그녀는 갑자기 생활비를 40만원으로 깎아달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동안 매달 제가 내는 80만원의 절반 수준입니다. 별다른 설명 없이 애원하는 그녀의 말을 안 들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결혼하면서 생활비 관리며, 아파트 관리비며 가스비, 심지어 마트에서 장 보는 것까지 제가 도맡아 했습니다. 집에서 요리하는 비중 또한 제가 많았습니다. 그녀가 40만원으로 줄여 내겠다고 했을 때에도 달갑지 않았지만 저는 인내하고 가계를 관리했습니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인데, 그녀는 예전에 교제했던 한 남자에게 돈을 빌려주기 위해 저축은행 대출을 받았었고, 현재에도 상환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래의 '과도한 이성관계'와도 관련됩니다. 그녀는 이러한 사실조차 저에게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이혼 얘기를 꺼낸 7월, 그녀는 거실에 걸려있는 결혼사진들을 바닥에 팽개치고 그나마 매달 내던 생활비조차 내지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녀가 내던 40만원은 생활비로, 제가 내는 80만원은 제 주택담보 대출 상환이며 각종 공과금 납부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생활비도 납부하지 않고, 당초 자신도 이혼 생각이 있다고 하면서도 아무런 대책없이 계속 집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유를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경제적인 무책임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사건은 올해 초 새 자동차를 구입할 때였습니다. 제가 끌고 다니던 승용차가 고장나 새 차를 사야 할 상황이 생겼습니다. 5,000만원 이상을 들여 전기차(미니쿠퍼 일렉트릭)를 구입했습니다. 제가 원해서 산 차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배우자가 차가 예쁘다고 고집했던 차종이었고, 저는 제가 가지고 있던 예금과 주식을 팔아 모은 돈으로 차를 구입하기까지에 이르렀습니다. 배우자가 부담한 돈은 없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좀 더 저렴한 차를 사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왜냐하면 미니쿠퍼 전기차를 구입할 자금의 절반만 아낀다면 현재 대출 상환 중인 2개 중 1개를 전부 중도상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배우자는 '무슨 소리냐'며 단박에 거절하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때에도 저는 참았습니다. 그동안 중고차만 타봤던 그녀에게 새차 한번 태워주게 하겠다고 자위하고 그 차를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새차를 사준 보람이 느꼈던 때는 사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차량은 출고했던 1월부터 이혼 얘기가 나온 7월까지 거의 그녀가 사용하게 해줬는데도, 그녀는 그런 배려나 양보가 마치 당연하다는 듯 행동해왔습니다. 5천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차를 사용하게 했을 땐, 적어도 몇개월 동안은 호의적인 부부로서의 생활을 기대했지만 부질없었습니다.
▲ 과도한 이성관계
그녀는 저와 만나기 전부터 소위 '친한 동생'이라는, 그녀가 '돌쇠'라고 별명을 붙인 남자와 연락해오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노예처럼 부리는 남자라고 해서 '돌쇠'라는 별명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연애 초기 그녀가 스스로 밝혔듯, 그녀에게는 이성 친구('남사친')가 많았습니다. 대형마트에 갈 때 짐꾼으로 쓰는 이성친구에, 자신의 자동차를 점검해주고 가끔 자신의 자취방에 먹을 걸 사오라고 부리는 이 '돌쇠'라는 별명의 이성친구 등 그 숫자는 꽤 많은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이 '돌쇠'와 성관계도 했었습니다. 물론 저와 정식으로 교제하기 몇달 전이었고 결혼하기도 훨씬 전이었지만 그 충격은 한동안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동거하던 때 그녀가 말실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를 만나기 전 그녀는 혼자 자취하면서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강아지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며 앞집에서 컴플레인을 제기해 어쩔 수 없이 울산 본가에 강아지들을 1년 넘게 맡겨야 했던 상황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녀와 사귈 때부터 그 강아지들을 만난 적도 없었는데, 나중에 그녀와 동거하며 대화하던 중 그녀가 아무 생각없이 제게 말했습니다.
"오빠 예전에 내 자취방에서 코코, 보리(강아지 두 마리 이름)랑 좁은 침대에서 잘 잤잖아?"
저는 그녀가 그 "돌쇠"라고 불렀던 동생과의 관계가 단순한 친구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당시에 답장으로 해명하기를,
『진짜 걔랑 사귄 적은 없었는데 나 혼자 자취할 때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오고가며 도와준건 맞아. 근데 걔가 내 자취방에서 자고 간 적이 없었는 데 무슨 소리야? 잘 생각해보고 행동해.』
라고 말했고, 제가 예전에 확인했던 그녀와 그 남자의 대화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도 그녀는 계속 부인했습니다. 결국 그녀가 그 '돌쇠'에게 임신테스트기를 언급했던 그때의 카톡 대화를 특정하자 그녀는 지난 카톡 대화를 검색해 보고 나서야 사실임을 인정하며 사과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그녀는 자신의 자동차 엔진오일 교환이나 자잘한 건으로 그와 연락을 지속했습니다. 남자와의 관계를 하는 것에 무던한 것인지, 아니면 '모르쇠'로 부정하는 것에 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에 대한 신뢰가 추락했던 것은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있던 때는 이미 양가 부모님께 결혼 계획을 말씀드렸던 터라 모든 걸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고, 어쩔 수 없이 그녀를 포용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 현재 혼인관계 상태
(1) 별거 중인지 동거 중인지
현재도 동거 중이나, 제가 이혼 얘기를 꺼낸 2024.7월부터 현재까지 각방을 쓰고 있습니다. 각자 방에 딸린 욕실을 쓰기에 동선은 겹치지 않아 서로 말을 섞은 적은 지금까지 없습니다.
(2) 현재 상태에 대한 진술 및 이혼의 계기가 된 결정적인 사건
▲ 현재 상황에 대한 진술
제가 그녀에게 이혼 얘기를 꺼낸 이후부터 그녀는 화를 참을 수 없었는지 거실에 걸려있는 결혼식 액자들을 내려 현관 구석에 버려놓고 그나마 매달 내던 생활비 40만원도 내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아파트를 점거하고 시위를 하는 사람의 모습처럼 그녀는 경제적인 책임은 내팽겨치고 또한, 현재 각방을 쓰며 제가 손을 뗀 집안일을 형편없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제가 집에서 나오는 일반쓰레기와 재활용품을 버려왔고 또 대부분의 요리와 설거지도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혼 얘기 이후부터 집안에서 생활하는 것과 먹는 것, 쓰레기 버리는 것은 제가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만든 쓰레기는 집안에 있는 분리수거함이나 쓰레기통을 쓰지 않고 제 방에 있는 쓰레기통을 이용해 그때그때 배출해왔습니다. 자연스럽게 각자가 발생한 쓰레기나 먹고 난 그릇은 각자가 치우는 것으로 굳어졌고 저는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일이 많은 만큼 주방에 갈 일은 거의 없게 된 셈입니다.
생활비를 부담하지 않으면서도 저보다 집안에서 많은 영역을, 그리고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관리되고 있는 집 구석 구석의 모습은 경악스러울 정도입니다. 쓰레기통은 넘쳐나 냄새나고 플라스틱, 비닐 등 분리수거함 또한 수시로 넘쳐나기도 했으며 자신이 요리해먹고 남은 음식쓰레기를 싱크대에 며칠 이상 방치하기 일쑤였습니다. 자신이 사용한 텀블러와 식기는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각방을 쓰기 전부터 그녀가 대부분 사용했던 안방 욕실 또한 세면대와 변기의 때가 수북하고, 자신의 머리카락 뭉치 또한 치우지 않아 샤워부스 바닥 모어리에 시커멓게 늘어져 있습니다.
▲ 이혼의 계기가 된 결정적인 사건
두 가지의 연속된 사건이 이혼을 결심하게 한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① 이웃과의 관계 등에 대한 그녀의 그릇된 인식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평범한 저녁, 저희 두 명은 저녁밥을 먹고 거실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저는 먼저 일어나 거실 커피테이블에 있는 그릇들을 치우며 주방을 오가던 중, 배우자가 갑자기 제게 “그만 해!”라며 화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화를 낸 그녀는 왜 그러냐는 제 물음에 답하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는 더 얘기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날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며칠 뒤 카카오톡으로 미안하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그녀가 왜 화낸 것인지 알게됐지만 그녀의 평소 생각에 대해 더 의혹만 키우게 됐습니다.
그녀는 제가 그동안 집안에서 걸어다닐 때 쿵쿵 소리를 안 내도록 뒷꿈치 대신 앞꿈치로 걷는 것이 못마땅했다는 것, 제가 지나치게 아랫집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그녀가 화낸 이유였다는데, 그러면서 우리가 아랫집을 배려해주는 만큼 아랫집도 우리를 배려해줘야 한다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층간소음은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아래층이 우리도 배려해야 한다는 그 말을 듣고 저는 뭐라고 그녀를 이해시켜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그녀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제가 발소리를 조심하는 모습때문만이 아니라 지난 2년 간 아랫집에서 우리집 현관에 서너 번 붙인 포스트잇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녀와 처음 다세대 주택에서 살면서 그녀는 울산 처갓집에 있던 강아지 두마리를 데리고 왔습니다. 현재 거주중인 아파트로 이사할 때에도 그 두마리를 데리고 키웠는데, 둘 다 직장인이라 평일 9시부터 18시까지는 집안에서 강아지 두마리만이 남겨져 분리불안 증세로 간헐적으로 울부짖고 있습니다. 아랫집에서는 여러 번 포스트잇을 남기면서, 강아지 울음소리가 심하니 어떻게 조치 좀 해달라는 말을 했었는데, 이웃집에서 이런 반응이 나올 때마다 그녀는 미안함보다는 이웃을 못마땅해 해왔습니다. 그래서 아랫집도 우리를 배려해야 한다는 그녀의 주장은 이러한 이유로 말했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키우는 반려견에 대해 그동안 이렇다할 훈련도 하지 않고, 아랫집에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제가 나서서 강아지들을 교육시키려 했던 노력에 비해서는 일말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 혼자 그녀의 강아지들을 위해 혼자 애쓰고 마음 고생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와 동거를 시작했을 때의 생활 또한, 강아지가 울부짓는 것에 대해 훈련을 통해 교정시킬 생각보다는 그 울부짖음의 파급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판단하려 하지 않고 단순히 이웃들이 민감한 것이라고, 강아지가 우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답답하다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이웃과의 잦은 소통으로 양해를 구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면 모를까, 그러한 행동 없이 자신의 강아지를 무조건적으로 보호하려는 태도에서 그녀의 위험한 인식을 볼 수 있었고, 그것으로 제가 받아야 했던 스트레스는 상당했습니다. 참다못한 제가 TV에 나오는 유명한 훈련사가 운영하는 훈련소에 일일 레슨비 100만원을 결제하며 상담을 받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녀가 강아지를 집에서 조금이라도 더 훈련하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그녀가 강아지 훈련에 소극적인 것이 평일에 회사 출퇴근하느라 피곤하고 체력이 약해서 못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애초에 훈련시킬 생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집안에서 강아지를 훈련시키려고 켄넬에 집어넣으려고 하거나 목줄을 채우려는 것을 ‘애들 불쌍하다’며 말리기만 했습니다.
② 처갓집에서 그녀가 보여주었던 무례함
2024. 7월은 울산 근처 도시의 유명한 축제에 간다며 저를 억지로 동행하게 한 날이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7시, 저는 그녀와 그녀의 지인들을 태우고 충남 A시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녀의 지인 3명과 함께 가는 자리라 저에게는 당연히 편한 자리는 아니였습니다. 약간의 의무감으로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그날 저녁 축제장에서 술 한잔씩 하며 재미있게 즐기고 지인들은 근처 호텔에서 묵고, 저와 배우자 또한 따로 방을 잡았습니다. 다음날 둘 다 잠에서 깨어 서로 잘 잤는지 안부를 묻고 우리는 울산 처갓집으로 향했습니다.
운전하는 내내 그녀는 어제 저녁과는 다르게 표정이 굳어 있었습니다. 연애할 때에도 종종 이유 없이 기분이 다운되는 모습을 보였을 때 왜 기분이 안 좋냐고 제가 물으면 오히려 그만 물어보라고 짜증을 내던 그녀였기에 저는 눈치를 보며 처갓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점심 때가 돼서 처갓집에 들어가자 장인어른은 우리보고 점심을 먹고 가라고 했기에, 저는 그녀와 지인들의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몰라 그녀에게 물어봤습니다. 거실에 말없이 앉아 스마트폰만 보던 그녀는 눈동자만 제쪽으로 흘기며, "점심은 우리 집에서 먹을 건데 왜 딴소리 하는 거야 지금?“ 이라고 말하며 다시 스마트폰에 집중했습니다. 그 말투는 신경질적이고, 그런 질문을 한 제가 한심하다는 말투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며 마지막 남은 힘을 내어 물어봤습니다.
“서아야. 기분 안 좋아?”
그녀는 또 눈동자만 제쪽으로 굴리며 대답했습니다.
"아니. 괜찮은데? 오빠가 기분 안 좋은 거 아니야?"
저는 할 말을 잃을 뻔하면서도 제 감정을 얘기하기로 했습니다.
"너네 일정을 내가 몰랐을 수도 있잖아. 그런데 그런식으로 얘기를 하면……."
저에게 대하던 그녀의 눈빛과 태도는 길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길을 물어볼 때 대하는 것보다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쩌다가 장인어른과 그 가족들 앞에서 이런 식으로 대우를 받게 됐는지, 왜 이렇게 됐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결혼 후 10kg이 빠졌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이나 지인들은 하나같이 제게 괜찮냐고, 어디 아픈 게 아니냐고 묻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결혼 초기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성장통이라고 말할 지 모릅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면서요. 하지만 다툴 때마다 제가 감당해야 했던 스트레스의 양은 무시 못하는지 저는 점점 말라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성할 항목도 많았지만 '이왕이면 자세히 써서 나쁠 것 없다'라는 내 성격과도 맞물려서 저녁 6시부터 작성하기 시작한 이혼진술서는 밤 11시가 될 때쯤에서야 완성됐다. 링크로 연결된 법무법인의 이혼진술서 작성 페이지는 글자수 제한이 없었지만 내가 이렇게 많이 쓰는 게 정상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변호사들이 이 자료를 받아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정보가 많을수록 그들이 나를 좀 더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불필요하게 중복된 단어는 없었나?'
'주술관계나 호응이 어긋난 부분은?'
돌아가는 차 안에서, 희한하게도 내 머릿속은 온통 진술서에 적었던 수많은 문장들과 표현들, 단어들로 가득했고 글에서 느꼈던 내 호흡을 다시 떠올리며 멍한 눈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치 각방 생활이며 이혼이며, 지금 내가 처한 총체적인 참담함은 뒷전인 것처럼…….
(브런치에 연재 중인 이 글은 허구이며, 실존 인물이나 사건과 일치하는 부분은 우연일 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