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9]
요 며칠 동안 잠이 잘 안 오는 건 9월이 되어서도 끝나지 않는 이 망할 더위, 열대야 때문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서재 바닥에서 30분 이상 뒤척이며, 또 귀에 이어버즈를 억지로 끼워넣고 음악 앱에서 '숙면 음악'이니 '숙면 ASMR'을 검색해서 적당한 음악을 틀어 억지로 잠을 청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건 그놈의 열대야가 아니라 불면증일 수 있다는 것을.
그렇다. 잠이 오지 않는다. 그 이유들을 생각하니 3개월째 각방 생활하며 서아와 이혼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있고(그녀가 어서 응하기만 하면 빨리 끝날텐데), 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그건 바로 책을 쓸 기막힌 소재가 생각났다는 것. 내 이혼에 관해서다.
내가 만약 책을 쓴다면 형태는 허구이되, 진실을 담아야 한다. 영화에서 흔히 쓰는 그런 문구처럼 '실화에 영감을 받았음.'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으나 극중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것은 허구다.', '만약 일치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우연일 뿐이다.' 라고 미리 얘기를 깔고 들어가야겠지. 하지만 우리는 그런 영화의 선언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우리가 바보인가? 하긴, 법적인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그런 표현들이 조금씩 다듬어지면서 나온 거겠지. 법은 참 우습다. 결과적으로 이런 코미디 같은 상황을 만들어내니까.
내가 쓸 책의 도입부는 아주 파격적으로 열 수 있다. 바로 서문을 '이혼진술서'로 여는 것이다. 추석 연휴가 끝나는 3일 뒤까지 완성해서 법무법인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다. 이런 내용을 책의 첫머리에 두고,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독자와 내가 함께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이혼 조정을 신청한 단계도 아니고, 변호사와 함께 신청 서류를 준비하는 단계다. 와이프는 아직 모른다. 내가 변호사랑 상담할 거란 계획만 알지 실제로 내가 행동에 옮겼을지는 모른다는 얘기다. 아무튼 현재 나는 이 책의 에필로그 구상까지 하고 첫장을 어떻게 구성할 지 조금씩 써나가는 단계이기 때문에 이혼이 어떻게든 마무리될 때까지 책의 방향도 그에 맞게 흘러갈 것이다. 책의 결말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난 와이프와 전쟁 할 때 기분은 참 더럽겠지만 한편으로는 이 싸움이, 이 이야기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갈지, 내 문학적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때문에 이런 장면이 나올 수도 있겠다. 나중에 서아가 내 앞에서 소릴 지르며 물건을 때려부수는 상황이 혹시라도 일어날 때, 내 시점에선 그걸 바라보는 동시에 속으로 '책에 이 상황을 어떻게 담을까' 골몰하고 있는 모습. 순간 주변의 소음은 사라지고 모든 장면들이 내 눈앞에서 슬로우모션처럼 흘러간다. 전쟁 속에서 한편으로는 창작에 열중하기도 하는 것이다. 기대된다. 그리고 라꾸라꾸 침대도 하나 사기로 했다. 딱딱한 서재 방바닥에서 더는 못 자겠다.
『이혼진술서』
어제 PC방에서 이혼진술서를 작성했다. 5시간이 걸렸다. PC방에 오랜만에 출입한터라 급히 결제하고 보니 30,000원을 긁었다. 이것도 컴퓨터에 앉아 1시간동안 열심히 타자를 치다가 알았다.
'아, 씨……. 환불해달라고 할까?'
그런데 한번 더 생각해보니, 이 싸움이 끝날 때까지 PC방에 또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만 해도 난 시골에서 추석 제사를 지내고 11시쯤 낮잠을 한숨 자고 일어나 이따가 있을 점심식사 후에 형이며 형수며,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며 다들 떠나기 시작할 때 나도 같이 준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스마트폰 알림이 울렸다. 삼성 ‘Smart Things’앱이었다.
『세탁이 완료되었습니다.』
'아……. 벌써 돌아왔구나.'
그녀가 처갓집에서 돌아와서 세탁기를 돌렸다는 의미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긴, 그녀의 회사가 떡 하니 A시에 있는데 울산에서 안 돌아올 수가 있겠나. 세탁이 완료됐다는 메시지를 본 순간부터 점심식사며 가족과 친지들이 나누는 이야기며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이제 나는 여기서 출발해서 어디로 가야할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영화를 볼까? 최근에 개봉한 <베테랑 II>는 이미 3일 전에 혼자 봤지. 대형 쇼핑몰에 갈까? 스타필드? <베테랑 II> 볼 때 매장을 한 다섯 바퀴를 돈 것 같았다. 결국 PC방을 물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 PC방이란 것이 주로 젊은 학생들이 많이 찾다 보니 주차장은 안중에도 없는 장소가 꽤 많았다. 하긴 나처럼 차 끌고 PC방에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는 걸까? 대학생 때에도 진지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1학년 때 같은 학과 동기이자 연상이었던 누나를 많이 의지하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놨던 때가 있었다. 그 고민들 중 하나가 결혼은 왜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당시 그런 고민을 했던 이유는 생생히 기억난다. 누나를 누군가에게 빼앗기기 싫었기 때문에……. 결혼이란 제도도심리런 심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랑한다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다. 지금 와서 나도 체면을 구기는 모양새지만 요즘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나는 결혼을 왜 했지? 단순화하면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타의였던 부분은 역시 부모님의 뜻이 있었다. 당시 난 서아와 동거를 시작한 지 6개월이 넘었을 때였다. 부모님께 동거 계획을 말씀드렸던 때가 기억난다. '동거'라는 단어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부정적인 뜻이 더 많기 때문에 "저 결혼해요!" 보다는 "저 동거해요!"라고 말할 때 나도 모르게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그래도 부모님과 저녁을 먹으며 괜찮은 여자가 있어 일단 동거 먼저 해보려고 한다고 말씀드렸을 땐 부모님도 반대는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 이후에 부모님 입장도 생각해봐야 했었다. 친지나 이웃들이 당신 아들에 대해 물어보면 "응. 우리 아들 동거해."라고 그 어떤 부모가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을까? 그래서 원래 적어도 1년 정도(최소한 사계절을 같이 지내볼 요량으로)는 동거할 계획이었지만 부모님도 아들이 동거한다는 얘기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는지, 어느날 아버지께서 말씀, 아니 호통하셨다. 그렇게 살 거면 빨리 결혼하라고. 그래서 6개월이 지나고 다음해 초가 되었을때 우리는 상견례를 하게 됐고 그것은 만난 지 거의 1년만이었다.
난 결혼을 구속의 도구로 사용했다. 단 하나의 구속, 즉 다른 남자를 못 만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거꾸로 말하면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구속이기도 할 것이다. 그녀와 연애를 시작하면서도 그녀의 남사친 관계로 꽤 신경이 쓰였고, 결혼을 준비할 때쯤에서야 그런 걱정은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바보처럼, 결혼하면 다 잘 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게 가장 후회되지만.
내가 체득한 사랑이란 감정은 이기적인 것이었다. ‘나의 행복을 위해 옆에 있어달라’, ‘다른 남자 만나지 말고 나만 만나라’. 왜? 네가 다른 남자를 만나면 난 불안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잠을 못 자고, 일도 손에 안 잡힐 테니까. 내가 불행할 테니까. 그러니까 결혼하자.
결혼, 일부일처제라는 제도에 대한 많은 연구와 또 그것을 비판하는 수많은 목소리가 있다는 것쯤은 안다. 나름 일리가 있었고, 나도 사실 일부일처제가 가장 완벽한 제도인지까지는 증명은 못 하겠다. 그마나 우리 사회에서 최악은 아닌 차악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정도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와 50년 60년 이상 산다는 게, 아니 살아야 한다는 게, 이게 정말 이상적인 제도일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추석 전날이었다. 와이프는 이미 3일 전에 처갓집으로 갔다. 주말이 낀 연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 는 당연히 상황을 알고 계시고, 형과 형수는 알까?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는? 어디까지 정보가 퍼졌을까? 사실 많이 알 수록 좋다. 왜냐하면 내가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까. 어색한 상황도 많이 줄어틀테니까. 오늘 저녁이 관건이다. 우리 가족과 친지들에겐 추석 전날 모여 가볍게 술 한잔씩 하고 술에 취해 잠드는 전통(?)이 있다. 오늘 저녁, 다같이 저녁 먹으면서 얘기하긴 그렇고, 술 한잔 하면서 얘기가 나올 것이고, 안 나온다면 내가 얘기를 꺼내는 게 맞겠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알고 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서아와 저는 이혼을 준비중이에요. 각자 방을 쓴지는 3개월째고, 서아도 동의했고, 2년 전에 만나서 크고 작은 다툼이 있었는데, 그런 갈등이 있을 때마다 서로 기싸움 하듯이 아무 말 않고 지내는 기간이 점점 늘어났어요.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더라고요. 피가 말리는 것 같고, 살은 점점 빠지고. 결정적인 때가 울산에 지인들과 근처에서 열리는 축제에 놀러간다고, 저를 억지로 데리고 갔을 때였어요. 제가 많이 관찰해봤는데 걔는 어떤 유형이냐 하면, 자기가 기분이 안 좋을 때 얘기를 안 하는 건, 뭐, 그건 저도 그러니까 그렇다고 치고, 제가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로 자기도 입이 쭉 나와 말을 안 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어요. 그러니까 남이 기분이 안 좋을 때에도 자기 중심적인 거라고 봤어요. 그때 장인어른, 장모님 있을 때 저한테 막 대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제가 새 차를 사고 걔가 운전하게 준 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자기가 운전하고 있는 걸 옆에서 보고 있으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예전에 화해할 때 당연히 서로 다짐들을 했었죠. 서운한 일이 있으면 바로 얘기하기로. 쓸모없는 짓이었어요.
문제는 7월에 제가 이혼하자고 얘기했을 때 서아도 그러자고 해놓고 아무런 대책이 없이 그냥 집에 눌러앉고 있다는 거예요. 생활비도 안 내고, 집안에 있는 결혼사진은 다 치워버리고. 그래서 나중에 제 뜻을 한번 더 얘기했죠, 문자메시지로 장문의 내용을 써서. 그때도 걔는 '알겠다. 내 입장도 정리해서 알려주겠다'고 하더니 얘기가 없었어요. 며칠 뒤엔 호칭도 반말로 하더니, 만나서 자기한테 먼저 사과하고 얘기 나누자고 하길래 싫다고 했죠. 말을 그 따위로 하니 만나고 싶겠습니까? 그리고 거의 한달 반이 지나서도 제가 기다리다 못해 입장을 알려달라고 또 얘기했더니, 이제와서 자기는 만나서 얘기하는 게 우선이라나. 그럼 진작에 얘기하던가.”
물론 가족과 친지들은 내가 저만큼의 독백을 다 마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는 아버지나 다른 어른의 반복된 설교만 듣다 끝나고 만다.
해방. 자유.
그것이 내가 이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였다. 지난 7월. 이 단어들과 더불어 '이혼'이라는 솔루션이 떠오르자 그동안 마음 속에 있던 스트레스며 잡념이 모두 사라지고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
'같이 살지 않으면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우린 다르니 각자의 행복을 위해 살면 된다.'
돌이켜보면 남들처럼 결혼하고, 남들처럼 아이를 낳고 사는 방식에 큰 반감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의무감은 있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결혼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 것 같은 사회 풍조가 아직은 있으니까. 그리고 내 마음의 아주 좁고 좁은 구석에는, 노년에 요양원이나 자택에서 홀로 죽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고독함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이런 면에서 나 또한 어느 정도는 옛날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결국엔' 결혼을 하게 됐다. 물론 그녀에 대한 호감도 있었던 건 맞다. 그리고 또 일부일처제의 제도를 이용한 것도 맞다. 연애할 때 그녀가 좋았을 때, 남사친이 많았던 그녀가 다른 남자와 놀아나지 못하게 결혼이란 제도로 묶어뒀으니까. 누군가를 너무 좋아해서 결혼한다는 말은, 동전의 양면처럼 뒤집어보면, 결혼을 함으로써 그 누군가를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누군가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은 내 감정 중심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의 행복 여부와는 상관없이 오직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뭐, 서로 너무 좋아해서 결혼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그런데 만약 서로 너무 좋아하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면? 아니다.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말자.
어둠 속에서 베개 밑을 더듬어 스마트폰을 찾아 화면을 켰다. 새벽 2시 42분. 집어 넣었다가 잠시 후 다시 전화기찾아 화면을 켰다. 4시 15분…….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나는 잠을 강요하고 또 강요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각, 어느 지방의 한 아파트의 구석진 방 안에서는 소리없는 고문이 자행(自行)되었고 동시에 버티는 몸부림이 반복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