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모내기 날
46화. 모내기 날
《마루 끝에서 본 세상》 1부
모내기 날이면
아침부터 마을이 분주해졌다.
우리 집 논과 형진이네 논은 항상 같은 날 모내기를 했다.
논이 인접해 있으니 그렇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나는 그날만큼은 조금 불편해졌다.
형진이는 나랑 같은 반 친구였다.
학교에선 짝꿍처럼 지내지만,
모내기 날에는 서로 아는 체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평소엔 개구쟁이 같고,
논 옆 수렁에 빠졌다가도 웃고 일어서는 아이였지만
그날만큼은 형진이에게 그런 모습을 들키기 싫었다.
괜히 나만 떠드는 아이가 되는 것 같아서
나는 어른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얌전한 척, 심부름도 척척 해내는 아이가 되곤 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 논에 모였다.
아빠는 허리를 굽힌 채 논두렁을 정리하시고
엄마는 논머리에서 인부들 식사 준비를 하셨다.
할머니들은 모판 옆에서 모심을 다듬고 있었고,
아이들은 그 주변에서 놀다가도 어느새 일을 거들었다.
그러다 논가 수렁 쪽으로 몰려갔다.
그곳엔 우렁이들이 빼곡했다.
반짝이는 햇살 아래로 미끌미끌한 껍질들이
진흙 속에 반쯤 묻혀 꿈틀거리고 있었다.
“우렁이다!”
누군가가 외치면
아이들은 맨손으로 우렁을 집어 소쿠리에 담았다.
재미가 붙으면 발도 진흙에 푹 빠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도 두 팔을 걷고 우렁을 한 움큼씩 집었다.
형진이는 그런 우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끝내 다가오지 않았다.
조금만 오면 함께 놀 수 있었을 텐데
형진이는 항상 그 경계선쯤에서 멈춰 있었다.
난 한가득 담긴 소쿠리를 보며
이걸 가져가도 엄마는 안 좋아하실 거라는 걸 알았다.
엄마는 바다에서 나오는 것, 강에서 나오는 것,
민물고기며 조개며 뭐든지 잘 드시지만
유독 우렁만은 "그건 비리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우렁을 줍는 게 좋았다.
작고 반짝이는 껍질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면
뭔가 보물을 찾은 것 같았고,
진흙 속에서 생명을 꺼내는 느낌이 뿌듯했다.
한참을 줍다 보니
소쿠리는 점점 무거워졌고
나는 어느 순간 욕심을 내려놓았다.
형진이를 힐끗 보며,
그래도 오늘 난 좀 괜찮은 아이로 보였으면 했던 마음을
살짝 내려놓고 말이다.
그날도 모내기는 해질 무렵이 되어야 끝이 났다.
논은 어른들의 손에 정갈하게 줄이 맞춰졌고
아이들은 흙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형진이와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 침묵 속에
같은 논, 같은 하늘, 같은 시절을 나누었다는
묵묵한 유대가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모내기날 #시골아이들 #브런치에세이
#마루 끝에서 본 세상 #우렁 잡기 #시골논풍경
#어린 시절기억 #1970년대 시골생활 #추억에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