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에서 본 세상

47화 어이 허 어허

47화. 어이 허 어허, 들판의 리듬

《마루 끝에서 본 세상》 1부


모내기 날, 들판은 일찍부터 분주했다.

긴 모판이 펼쳐진 논에는

어른들이 허리를 굽힌 채 줄줄이 서 있었고,

두 사람이 잡고 있던 긴 줄이

마치 음악의 박자처럼 움직였다.


“어이 허— 어허—”

구령 소리가 울리면

논의 양끝에 서 있던 사람이

끈을 발 한 뼘만큼 안쪽으로 당긴다.

그러면 다시 “어이 허— 어허—”

그 소리에 맞춰

모판을 짚던 손들이 일제히

한 줄 아래로 내려간다.


손과 발이 동시에 움직이는 그 리듬.

어느 누구 하나 어긋나지 않도록

호흡을 맞춘 그 장면은

마치 들판 위의 춤처럼 보였다.

몸은 힘들어도 입가엔 웃음이 있었고,

어깨 너머 이웃과 나누는 짧은 농담 속엔

고단함을 달래는 정이 묻어났다.


내가 서 있던 논둑에서 내려다보면

갓 심어진 어린 모들이

그 줄을 따라 줄지어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말 그대로 쫙쫙 맞춘 모 줄들.


어떻게 저렇게 맞을까?

어른들의 구령 하나에

이리도 정교하게

논 전체가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이

어린 나에겐 마법처럼 보였다.


어릴 땐 그저 모내기란

어른들이 허리 굽혀 일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반복되는 동작,

호흡처럼 이어지는 구령 소리,

정확하게 맞물리는 손끝과 발끝을 보며

나는 자연과 사람 사이에도

이토록 질서 있고

아름다운 리듬이 있다는 것을

조용히 배웠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들녘 어디서든 어린 모들이

고개를 들고 서 있는 풍경을 보면

그 조화로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끝에서

태어난 것인지 알게 된다.


논을 떠난 어른들은

그날의 구령도,

손에 들렸던 모 한 단의 감촉도

잊었을지 모르지만

그날 땅에 내려앉은 질서와 조화는

지금도 내 기억에

초록빛 줄무늬로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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