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새참을 나르던 날
48화. 새참을 나르던 날
《마루 끝에서 본 세상》 1부
모내기 전날부터
엄마는 하루 종일 부엌에 계셨다.
마을 사람들끼리 품앗이를 하며 서로의 논일을 도왔기 때문에
논마다 새참은 그 집에서 준비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는 그런 날이면 유독 더 부지런해지셨다.
새참이라 해도 몇 사람 먹을 양이 아니었다.
두부 부치고, 묵 무치고, 김치 볶고, 계란찜까지.
기름 냄새가 부엌 가득 퍼지면
나는 저절로 부엌과 마당을 오가며 심부름을 했다.
엄마는 반찬을 담을 양푼을 꺼내고
밥과 국, 반찬을 나눠 담았다.
큰 보자기와 바구니, 양은 도시락, 그리고 스텐컵까지
새참 꾸러미는 금세 커다란 짐이 되었다.
“미숙아, 구멍가게 가서 막걸리랑 소금 좀 사 오너라.”
엄마의 심부름은 정겨웠지만
시골길을 오르내리는 건 그리 만만치 않았다.
막걸리 병은 묵직했고,
두부나 묵은 손에 들면 쉽게 으스러질까
가슴에 꼭 안고 뛰듯이 다녔다.
논이 멀 때는 아빠가 경운기를 몰고 와
새참 꾸러미를 실어갔다.
하지만 집 앞 논일 때는 얘기가 달랐다.
엄마와 나는 몇 번이고
집과 논 사이를 오가며 음식을 날라야 했다.
한 손엔 밥바구니, 한 손엔 국통.
입엔 물수건을 물고,
머릿속으론 어떤 음식을 빠뜨리지 않았나 확인하며
나는 어린 마음에도 무언가를 책임지는 느낌이 들었다.
논에서는 벌써 어른들이 모판을 옮기고
물 찬 논에 허리를 굽히고 모를 심고 계셨다.
논머리의 둔덕에 돗자리를 깔고
엄마는 새참을 하나하나 정갈하게 펼쳐냈다.
햇살에 반짝이는 수저들,
하얀 밥 위에 살포시 얹힌 김치,
쪼르륵 놓인 오이지와 삶은 계란,
그리고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
어른들은 그제야 허리를 쭉 펴고
“아이고, 살겠다.” 하며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하셨다.
나는 그 틈에서 어른들 밥그릇을 챙기기도 하고,
막걸리 잔을 조심스럽게 건네기도 했다.
그때 나는 참 부지런한 아이였다.
힘들다는 생각보다,
엄마가 잘했다 칭찬해 주는 말 한마디에
기운이 펄펄 나는 그런 아이.
논이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멀면 먼 대로
일이 많고 손이 바빴던 모내기철.
그 시절, 엄마와 함께 새참을 나르던 그날들.
지금도 머릿속엔
들바람 스치는 논둑과
반찬 하나하나에 담긴 엄마의 정성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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