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에서 본세상

49화. 모내기. 끝난 날

49화. 모내기 끝난 날


하루 종일 논에서 허리를 굽혀

모를 심고 나면 누구라도 녹초가 되었다.

하지만 아빠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셨다.

모판을 정리하고, 남은 자루를 걷고,

경운기를 끌고 뒷정리를 마무리하는 일은

항상 아빠 몫이었다.


그 사이 논두렁에 남아 계시던 동네 어른들은

막걸리 잔을 서로 주고받으며

고단한 하루를 달래고 계셨다.

웃음 섞인 농담도 오가고,

모 한 줄 삐뚤게 심었다며 핀잔도 주고받았지만

그 모든 말엔 정이 있었다.

풀냄새와 흙냄새, 땀냄새와 막걸리 냄새가

논머리 저녁바람에 뒤섞여 흘렀다.


그즈음이면 아이들은 어른들의 곁을 떠나

논길로, 둑방으로, 마을 입구까지 뛰어나갔다.


“술래 잡기 할 사람~ 모여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린 금세 놀이판을 벌였다.

모내기가 끝났다는 건,

어른들의 수고가 끝났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겐 논두렁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하루짜리 축제였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앞을 보며 돌아서는 그 순간

누군가는 이미 앞으로 훅 다가와 있고,

누군가는 웃음을 못 참고 몸이 들썩이고,

그러면 "아웃!" 하는 소리에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어른들은 그런 우리를

막걸리 잔 너머로 바라보며 웃으셨다.

“요것들, 좋을 때다.”

그 말도 들은 듯 만 듯

우린 한바탕 뛰고,

어디선가 망개떡 하나씩 꺼내 먹고,

논가 바람에 옷이 젖은 줄도 모르고 놀았다.


해는 저만치 기울어

논물 위에 붉은빛을 드리우고 있었고

벼 끝엔 아직 이슬이 맺혀 반짝였다.


놀다 지쳐 논두렁에 벌러덩 누우면

귓가엔 아직 어른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막걸리 한 사발과 된장 고추 찍어 드시며

올해 농사는 잘 될 거라던 아빠의 목소리,

아이들이 뛰는 발소리,

저녁종소리도 아닌데 마을이 잔잔해지던 그 느낌.


그 시절의 논에는

씨앗보다 더 깊이 뿌리내린

우리 가족의 기억이 있었다.



---


#마루 끝에서 본 세상 #모내기추억 #시골놀이

#논두렁풍경 #어린 시절기억 #브런치에세이

#아빠의논 #시골아침저녁 #1970년대 시골

매거진의 이전글마루 끝에서 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