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대문 앞에서

4화. 걸으며 가까워지는 사이

4화. 걸으며 가까워지는 사이

감나무 아래에서 마을을 한참 바라본 뒤, 우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이모가 하는 식당은 골목을 몇 번 꺾고 내려가야 나오는 작은 밥집이었다.


오빠와 나는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나는 별 말이 없었고, 오빠는 하나둘 동네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여기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빨래터 있거든.

옛날엔 거기서 애들 목욕도 시키고 그랬대.

지금은 쓰레기 좀 쌓여서 그렇지, 여름엔 풀냄새 진짜 좋아.”


오빠는 걸으면서 지나가는 골목마다 추억을 짚듯이 설명했다.

나는 고개만 끄덕이며 그 이야기를 들었다.

이상하게도 낯선 풍경이 덜 낯설게 느껴졌다.


“사촌이란 게 이렇게 빨리 친해지는 거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름만 알고 얼굴조차 희미하던 오빠가

지금은 친구처럼, 조금 더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졌다.


오빠는 걸음을 늦추며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다 말해. 진짜.

학교에서 누가 괴롭힌다든가, 길 찾기 힘들다든가 그런 거. 다.”


나는 말없이 웃었다.

이상하게 그 말이 든든했다.

평소라면 “괜찮아요” 하고 넘겼을 텐데, 이 말은 다르게 들렸다.


“나는 동생이 셋이야. 남동생 둘, 여동생 하나.”

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와, 많다. 시끄럽겠다.” 오빠가 웃었다.


“근데 오빠는 이모랑 둘이잖아.”


“응. 그래서 더 조용해. 가끔 심심할 때도 있는데…

이제 너 왔으니까, 좀 낫겠다.”


그 말이 어쩐지 고마웠다.

말로는 표현 못 하지만,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이제 혼자는 아니라는 마음.

비록 이모네 집은 새롭고 조심스러웠지만, 오빠의 옆모습은 익숙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식당 간판이 보였다.

하얀 플라스틱 간판에 붉은 글씨로 ‘정자분식’이라고 쓰여 있었다.

불고기 냄새가 골목을 타고 흘러왔다.

서울 겨울의 저녁 공기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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