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감나무 아래에서
3화. 감나무 아래에서
오빠는 해가 지기 직전, 저녁 어스름에야 집에 들어왔다.
교복 윗단추를 잠그지도 못한 채, 방문을 밀고 들어온 그 모습은 낯설고 어른 같았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사촌오빠.
저번 시험 보러 서울에 올라왔을 때 한 번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땐 인사만 나눴을 뿐이었다.
이렇게 가까이 마주한 건 처음이라 나는 괜히 어색해졌다.
“오셨어요?”
오빠가 짧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교복도 벗지 않은 채 슬쩍 손짓하며 말했다.
“동네 한 바퀴 구경시켜 줄까?”
뜻밖이었다.
나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고, 오빠는 나직이 웃으며 먼저 문 밖으로 나섰다.
고마웠다.
사실, 방에만 있기엔 마음이 조금 복잡했다.
그래서 나는 말없이 뒤따랐다.
“버스에서 올라올 때 봤지? 골목길?”
“네.” 얼결에 대답이 나왔다.
“많이 걸었을 텐데. 힘들었니?”
“조금요…”
말은 짧았지만, 오빠는 그 정도면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 작고 어두운 구멍가게를 지나쳤다.
“여기가 젤 가까운 가게야. 주인 할머니가 순해. 뭘 사도 꼭 사탕 하나 덤으로 줘.”
오빠는 동네를 익숙한 걸음으로 안내했다.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계단이 이어지는 길이 많았다.
나는 혹시나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따라 걸었다.
그때였다. 계단 꼭대기쯤에서, 오빠가 걸음을 멈췄다.
“봐봐. 여기.”
계단 옆에는 오래된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잎은 거의 떨어졌고, 가지 끝에 까치가 쪼아 먹다 남긴 감 몇 개만 달려 있었다.
그 뒤로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오빠는 뒤를 돌아 내가 걸어온 길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보이지? 마을 큰길, 그리고 옆으로 뜨문뜨문 보이는 건물들.”
나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회색빛 건물들 사이로 겨울 노을이 퍼지고 있었다.
붉고 노랗고 주황빛이 엉킨 하늘.
건물들은 키도 다르고 색도 달랐고, 그 사이로 복잡한 길들이 엉켜 있었다.
“오빠… 여기도, 노을이 참 예쁘네요.”
나는 무심결에 말했다.
진심이었다.
“그렇지?” 오빠가 말했다.
“힘들 때, 여기 와서 저 길들을 바라봐. 마음이 커져.
멀어지잖아, 골목도, 집도, 걱정도.”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서울이 처음으로 조금 덜 낯설게 느껴졌다.
노을빛 속에서 오빠는 그대로 감나무 아래 서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