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대문 앞 수다
2화. 대문 앞의 수다
문이 열리자, 이모가 고무장갑 낀 손을 흔들며 뛰어나왔다.
“언니!”
신발은 제대로 신지도 못한 채였다.
뒤축이 꺾인 고무신이 덜그럭 소리를 내며 대문 앞까지 따라왔다.
“보고 싶었어. 선영이 많이 컸네, 응?”
이모는 내 얼굴을 한 번 쓰다듬더니, 보따리를 받으며 연신 말을 쏟아냈다.
“어머님은 잘 계시고? 아버지는? 아휴, 서울 오면 힘들 텐데 어디로 집은 잡았어?”
엄마는 허리춤을 매만지며 답했다.
“정자 네가 알아봐 준 집으로 했지.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었어.
그래도 서울로 올라와야지, 언제까지 읍내에만 살 순 없잖아.”
“잘했어, 언니. 잘했어.”
이모는 짐을 양손에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엔 어쩐지 든든함 같은 게 있었다.
엄마보다 작고 여린 체구인데, 골목 끝 작은 식당을 혼자 꾸려가는 힘이 그 어깨에 가득했다.
나는 대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그 둘의 대화를 바라만 봤다.
“시험 보러 왔을 땐 그렇게 작고 어벙했는데, 이젠 아가씨가 다 됐네.
선영아, 이제 여기서 중학교 다니는 거야. 서울 애들은 조금 새침하니까 처음엔 힘들지도 몰라.
그래도 금세 친해져. 너처럼 말 잘 듣고 싹싹한 애가 어디 있어.”
엄마는 웃었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내가 아는 동네가 아닌, 내가 알지 못하는 말씨와 얼굴들 속에
나를 먼저 놓고 간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우리가 늦가을쯤 이사 오면 옆집 살 거야.
정자 네가 발품 팔아준 집이잖아. 지붕은 좀 낮아도 햇살은 잘 든다며.”
“햇살 잘 들고, 시장도 가깝고.
내 식당 옆이라서 얼마나 좋은데. 언니 오면 나도 덜 외롭고 말이야.”
두 사람은 대문 앞에서 수다를 이어갔다.
마치 몇 년 만에 만난 사람처럼, 혹은 방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사람처럼.
서로의 얼굴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또 말을 얹었다.
“아홉 낳아서 겨우 막내아들 본 엄마 말 안 듣고는 못 살지.
셋째 넷째가 제일 말 안 들었다니까, 진짜.”
이모는 그렇게 웃으며 짐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제야 대문을 넘어섰다.
한 발자국, 그리고 또 한 발자국.
고무장판 냄새가 섞인 마룻바닥이 낯설게 느껴졌다.
방 안에는 고요한 온기가 있었다.
엄마가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아직 괜찮았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다를 거란 걸 어렴풋이 알았다.
이모는 앞치마를 두른 채 부엌 쪽으로 가며 말했다.
“선영아, 네 방은 저기 작은방이야. 오빠랑은 다르게 쓸 수 있게 해 놨어.
이따가 우리 식당 가서 저녁 먹자. 오늘은 불고기 해놨어.”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작은방 문 앞에 서서 그들을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대문 앞에서 나눈 그 웃음들이 멀게만 느껴졌다.
문득, 이불속으로 들어가 숨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말을 걸면 울어버릴까 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