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엄마 손을 놓던 날 >
1화. 엄마 손을 놓던 날
> 겨울이었다.
나는 엄마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날, 엄마는 나를 내려놓고, 돌아서야 했다.
나는 처음으로 혼자가 되었다.
1987년 겨울.
내 손은 엄마 손보다 작고 차가웠다.
서울 미아삼거리, 비탈진 골목을 올라가는 내내 나는 엄마 손을 놓지 않기 위해 애썼다.
발밑은 미끄러웠고, 하얀 얼음 위엔 까맣고 거친 연탄재가 흩뿌려져 있었다.
누군가가 미끄러지지 말라고 정성스레 뿌려놓은 흔적이었다.
연탄재는 꼭 누가 다녀간 길 같았다.
낮게 깔린 하늘과 회색 담벼락, 조용한 골목은 낯설고 깊었다.
나는 발을 조심조심 옮기며 엄마를 따라 걸었다.
엄마는 말없이 앞서 걸었고, 나는 숨이 차서 몇 번이나 뒤처졌다.
엄마 손은 따뜻했지만, 단단했다.
마치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데려다 놓으려는 손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자 괜히 울컥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좁은 골목 끝, 철로 된 대문 앞에서 엄마가 걸음을 멈췄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대문을 향해 크게 외쳤다.
“정자야! 전자야아!!”
그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컸고, 떨렸다.
정자야—
이모의 이름이지만, 그 순간엔 엄마가 딸로 돌아간 것 같았다.
엄마도 누군가를 애타게 부를 줄 아는 사람이란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철대문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바스락, 발소리가 나더니 곧 삐걱—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언니!”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앞치마를 두른 이모가 달려 나왔다.
덜 신은 고무신이 철문턱에 걸려 끌리듯 쿵, 소리를 냈다.
“보고 싶었어. 선영이 많이 컸네, 아이고.”
이모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무장갑이 조금 젖어 있었지만, 그 손길은 다정했다.
엄마는 짐 보따리를 내려놓으며 작게 웃었다.
“애가 이제 중학교 올라가야지. 그래서 보내는 거야.
네가 옆집 알아봐 줘서, 우리도 늦가을엔 올라올 거야.”
“잘했어, 언니.
내 옆집이 최고지. 햇살 잘 들고 시장도 가깝고.
내 식당 바로 옆이잖아, 얼마나 좋아.
애들 학교도 가깝고.”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살며시 놓았다.
나는 그 순간이 정말 싫었다.
손끝이 차가워졌고, 속이 허전해졌다.
이모는 보따리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고, 엄마는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나는 문 앞에 혼자 남아 있었다.
‘지금 들어가면, 나는 이 집의 식구가 되는 거구나.’
나는 철문턱에 서서 멍하니 서 있었다.
엄마가 먼저 들어가고, 나는 나중에 따라 들어갔다.
마루 냄새가 났다.
고무장판 위엔 낡은 방석이 놓여 있었고, 구석엔 사촌오빠의 교복이 걸려 있었다.
작은방엔 보일러가 아직 덜 들어왔는지, 공기가 서늘했다.
엄마는 말없이 이불을 폈다.
나는 그 옆에 가만히 앉았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지내, 선영아.
1년만 잘 버티면, 우리 다시 같이 살 수 있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목구멍이 아렸다.
입을 열면 울 것 같아 입술만 꾹 다물었다.
밤이 오고 있었다.
나는 이불을 당겨 무릎 위에 올렸다.
이제, 나는 엄마 손을 놓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혼자가 되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