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몸보다 느린 마음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40화. 몸보다 느린 마음

그와 함께 걷기만 해도
미화의 몸은
이미 먼저 달아올랐다.

손이 닿지 않아도,
숨결이 섞이지 않아도
몸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보다 더 오래된 감각처럼.


---

“오늘… 같이 있자.”

그가
낮게 말했다.
부탁도, 명령도 아닌
익숙한 제안.

그 말 한마디에
미화의 몸은
자동으로 반응했다.
심장이 빨라지고,
혈관을 타고
열이 번졌다.

하지만
미화는
걸음을 멈췄다.


---

“안 돼.”

그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왜?”
그가 물었다.


---

미화는
대답하지 않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

왜냐고 묻기엔
이유가 너무 많았다.

며칠간의
그의 부재.
하루 종일
받지 않던 전화.
설명 없이 비워둔 시간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혼자 견뎌야 했던
자신의 마음.


---

“난 괜찮지 않았어.”
미화가
조용히 말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너 없는 며칠 동안
나는
너를 더 좋아하게 됐고,
그게
너무 싫었어.”

그의 얼굴에
미세한 당황이 스쳤다.


---

“몸이 먼저 끌리는 사랑,
나 이제
그만하고 싶어.”

말은
차분했지만
미화의 손은
꽉 쥐어져 있었다.


---

그는
한 걸음 다가왔다.

“미화야…”

그 이름을
부를 때의 목소리는
늘 미화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이번엔
미화가
한 걸음 물러섰다.


---

“나도 알아.”
미화가 말했다.
“지금 너랑 같이 있으면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다 괜찮아질 거라는 거.”

그는
말없이
미화를 바라봤다.


---

“근데
그건
사랑이 아니라
도피야.”

그 말이
공기 속에
무겁게 떨어졌다.


---

미화는
자신도 놀랄 만큼
단단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나,
너를 너무 좋아해서
나 자신을 잃고 있어.
이제는
그걸 멈춰야겠어.”


---

그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미화는
그 침묵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그에게서
주도권을
되찾고 있다는 걸
느꼈다.


---

“오늘은
각자 집에 가.”
미화가 말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

그렇게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미화의 가슴은
아팠다.


---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는 순간,
미화는
벽에 기대
잠시 눈을 감았다.

몸은
아직도
그를 원했고,
마음은
이미
상처를 기억하고 있었다.


---

미화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번엔
몸이 아니라
나를 선택하자.

그 선택이
사랑을 지키는 길인지,
사랑을 끝내는 길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기억을 뀌메는 사람···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17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0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0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매거진의 이전글3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