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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Aug 18. 2020

이민 후 행복의 기준이란 뭘까?

한 몬트리올 이민자의 독백

이민 후 행복하세요?

라는 질문을 참 자주 받는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대답하기가 망설여진다. 특히 질문한 이가 몬트리올로 이민을 계획 중인 경우라면 더더욱 조심스럽다. 질문하는 이의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궁금하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서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1.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 2. 복된 좋은 운수


나는 이민 후 만족스럽지만 '기뻐서' 이기보단 '아파서' 만족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쉽게 말하면 '하하호호' 웃는 기쁨에서의 만족감이 아니었다. 마치 '세상에 공짜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이제 갓 삼 년을 넘긴 아직도 풋내기 이민자이지만 내가 지금까지 만나 본 한국인 이민자들 또는 타국 이민자들은 모두 다 한 가지씩 고국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이유가 있지 않았나 한다. 물론 도망쳤다고 말하기보다 추구하는 목표나 이상이라고 명명하는 경우가 더 많겠지만 말이다. 한국인 이민자들의 경우는 경제적인 이유, 자녀 교육, 자아실현, 일과 휴식의 균형 잡힌 삶 혹은 가족 중심의 삶(요즘 흔히들 말하는 '저녁이 있는 삶') 등이 주요하고 간혹은 가정사 등도 있는 듯하다. 한국이 아닌 타국 이민자들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지만 전쟁으로부터의 안전, 종교적인 이유 등등을 추가로 들 수 있겠다.


나는 이민 오기 전 한국에서도 '행복'에 대해 갈구했다. 즉 행복하지 않았었다.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는 '행복'의 기준을 '기쁨'을 느껴 즐거운 상태만으로 여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삶의 의미와 행복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한 때 수녀가 되기를 꿈꾸었다. 20대 후반 나의 시선에 들어온 수녀님들의 해맑은 웃음이 그 즐거운 상태를 보여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호사로 직장 생활을 해가며 한 가지 깨달았다. 나에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어 일은 잘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내 안에 가공할 만한 '화'가 있다는 것을... 


그 '화'가 아주 간혹이지만 폭발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화를 폭발시키는 원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그때 수녀원에 갔다면 나의 그 콤플렉스 때문에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수녀님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수녀일 수 있지' 하는 엄청난 비판과 함께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 마저 죄책감을 품고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했을 것 같다.


다행히 어려서부터 어떠한 비판도 없이 나의 그 마음속 '화'를 들어주던 친구들, 가족, 한 수녀님이 계셨다. 웬일인지 나의 어떠한 결정도 늘 응원해주던 그들이 나의 수녀원행은 반기지 않았다. 그들의 주변엔 늘 좋은 사람들이 많고, 자신의 의견을 기분 상하지 않게 잘 표현하며, 직업을 바꾸어도, 어디에 살아도 나름 만족스럽다 했다. '왜 내 주변에만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걸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기쁘지가 않을 걸까?' 나는 늘 궁금했다. 그렇게 도를 닦는 마음으로 나를 알아가고자 이민의 길에 올랐다.


현실적인 나는 이민에 대한 환상은 없었고 지금도 없다. 특히 몬트리올의 경우 영어뿐만 아니라 불어까지 해야 하는 곳이므로 그 생활이 얼마나 좋아봐야 좋을까. 아무리 이민자라 해도 차별 아닌 차별도 겪는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기다려야 하는 느린 행정절차에는 영원히 적응이 안 될 것만 같다. 하지만 그 불편하고 부당한 상황 속에 기꺼이 나를 던져 봄으로써 내가 어떤 사람인지, 왜 그런 마음이 생기게 되었는지 발견해 가곤 한다. 이런 '아픔'을 통해 나를 알아 가는 것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나만의 사전 속 '행복'의 기준은 엄청 즐거운 상태가 아니라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깨달아서 마음이 편안한 상태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몬트리올 이민 길에 오른 날 오빠는 가볍게 이런 말을 해 주었었다. "언제든지 한국에 다시 오고 싶으면 돌아와도 아무렇지도 않다. 알겠지?" 그 당시 나는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은 '실패'로 여겨졌다. 내 마음을 오빠는 읽었던 듯하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은 한국에 다시 돌아가서 살아도 무난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어디에 사느냐는 더 이상 행복을 결정짓는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몬트리올에 사는 것도 이전보다 훨씬 마음이 가볍다.


"이민 와서 뭐가 좋으세요?"라고 묻는다면 


"이민은 아프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 좋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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