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신마취만 한 선택제왕이여서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첫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무언가 서걱서걱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내 배가 열리고 있구나 싶은 어느 순간 갑자기 차가운 수술실 공기를 쨍하게 가르는 울음소리.
소설 속 의성어 같이 "응애응애~"라고 울 줄 알았는데- 뱃 속에서 편하게 있던 나를 누가 갑자기 꺼냈냐는 마치 약간의 짜증이 묻어나는 것 같은 "애애애앵~" 앙칼진 울음소리가 수술실을 갈랐다.
차가운 공기에 온기가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이를 만나는 순간 눈물이 마구 흘렀다는 출산후기들을 읽었을 때- 과연 나도 그럴까 싶기도 하고 나는 자연분만은 아니니까 (오랜 진통 끝에 아이가 나오는건 아니여서) 왠지 눈물까진 안 날꺼 같아- 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에 순식간에 차올르고 감정이 복받쳐왔다.
세상에 1초 전까지 없었던 존재가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순간.
나 정말 엄마가 된 거구나.
뱃속에서 발을 통통 구르던 아가가, 너구나. 너였구나.
(꺼이꺼이 울 수도 있을 거 같았지만..머리 바로 위에서 마취과 레지던트가 마취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내 얼굴도 보고있어서...왠지 민망하여 복받쳐오는 감정을 꾹 눌러담고 눈물만 또르르 혼자 흘려보았다)
나, 이제 정말 엄마가 된 거구나
엄마가 된 것은 매우 감격스럽고 기뻤고, 임신 기간 내내 행복하고 평안하게 지냈지만,
그와 동시에 나에서 엄마가 되는 과정에, 특히 일을 하고 있었다면 누구나 했을법한 고민을 나 역시도 했다.
이 글은 그 고민의 시작이다.
임신을 하고 나서 이상하게 시험 보는 꿈을 자주 꾸었었다.
임신 4-5개월차였던 것 같다.
임신 기간에는 푹 자야 하는데 시험보는 꿈이라니...
그 자체도 즐겁지 않았지만, 문제는 꿈에서 매번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시험을 봐야하는 것이었다.
대입이나 사법시험 같이 이미 고생해서 다 치른 시험들을, 꿈 속의 나는 과거로 돌아가서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수학과 물리를 풀어야 하거나, 일주일 짜리 사법시험 2차를 치뤄야 하기 전날로 돌아가버리는 것이다(심지어 꿈에서도 엇? 나 이거 예전에 패스한 시험인데?!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이미 고생해서 통과한 시험을 다시 보려고 하니 꿈 속에서도 얼마나 억울하던지...;;)
시험보는 꿈을 꾸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 더 오묘하게 다가오는 것은, 나는 지난 37년동안 살면서 단 한번도 시험보는 꿈을 꾼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 동안의 나는 살아오면서 항상 당당했고 자신감이 넘쳤다. 대입이든사법시험이든취업이든 유학이든 그 어떤 인생 도전 과제 앞에서- 까짓꺼(?)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면 되지, 그리고 난 잘 해낼꺼야"라는 믿음이 항상 있었다. 그 과정에서 불안에 떨거나 시험보는 꿈을 꾼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인생 처음 시험보는 꿈을 꾸기 시작한 날은 심지어 올해 초 파트너로 "승진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그 때의 나는 무엇이 불안해서, 승진한 바로 다음 날부터 어릴 적 꾸지도 않던 꿈들을 꾸기 시작하는 걸까.
사실 나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예비엄마, 경력단절의 두려움
전문직이여도 경력단절의 두려움은 다르지 않다
일응 전문직이라고 하면, 자격증이 있으니 출산/육아를 하고 언제든지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어 경력단절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언제든 내 사무소를 개업해서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장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요즘은 대다수 법조인들도 회사원들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조직에 속한 근로자인 경우가 많아, 전문직이라고 해서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의 리스크는 결코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법조인이라도 어느 직역에속해있느냐에 따라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과 분위기도 다르다.
법원/검찰/대기업 사내변호사 등으로 근무 중이라면 2~3년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로펌보다는 잘 되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친구들이 육아휴직을 2~3년 동안 마음 편하게 쓰는 경우를 쉽게 보지는 못했다. 대기업 사내변호사로 있다고 하더라도, 회사 분위기도 다르고 일반 직원과 달리 오히려 법무팀은 인력대체가 용이하지 않다.
로펌은 근로자 지위에 있을 경우 보장되는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1년의 법적인 권리가 있지만, 대형로펌에서 출산휴가 3개월 외에 장기 육아휴직을 쓰는 사례를 찾아보기란 매우 드물다. 경쟁이 치열하고, 또 사건의 특성 상 그 사람이 오랫동안 하던 케이스를 넘기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쏘시에이트 변호사들의 경우에는 유학이나 승진 등의 평가가 있어서 육아휴직을 쓰는 것은 유학, 승진에서 사실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수 있어 다들 쉽사리 사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슬프게도, 내가 다니는 펌에서도어쏘 여성변호사가 육아휴직을 사용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
파트너여도육아휴직으로 감수할 위험의 종류가 달라질 뿐, 실질적인 경력단절을 피해갈 수는 없다
로펌에서 10년동안 일하고 파트너 승진도 했으니, 사회 초년생 때에 비하면 직업적인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상황이고어쏘가 아니라 파트너이니 육아휴직 사용에 있어 좀더 자유롭지 않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나도 좀더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커리어를 쌓아가는 측면에서 한 템포 쉬어가야 하고,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의 종류가 달라진 것일 뿐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에서 지위가 어쏘에서 파트너로 바뀌면서, 조직 내에서의 역할이 바뀌는 시기에 출산과 장기 육아휴직을 쓴다는 것은 파트너로 성장할 시기가 늦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어쏘일 때는 고객 관리 부담이 없지만, 파트너일 때는 내가 관리하는 고객들이 있기 때문에 해당 고객관리를 다른 파트너에게 넘기고 가면 다시 돌아왔을 때 그 고객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일만 하면 되었던 어쏘 시절에 비하여, 지속적인 거래선 관리와 사건담당의 흐름을 놓쳐버리면, 다시 회복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일정 부분 실적으로 연동된다는 점에서 파트너는 오히려 실질적인 이유에서 경력단절이 발생한다. (나는 특히 기존 관리 고객들이 있었고, 경력에 비해 수임을 꽤 잘하는 편이여서 고객 관리 측면에서 고민이 많아 되었었다).
singapore
더군다나 우리는 롱디 부부가 아닌가
아이를 어느 나라에서 키울 것인가
여기에 나는 남편과 현재 싱가포르-서울 롱디라는 상황까지 더해져서, 내 미래를 나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해외 롱디를 통해서 각자의 커리어 개발과 결혼생활 모두를 적절하게 밸런싱 할 수 있었지만,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더이상 롱디를 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소한, 아이가 취학시기가 될 때까지는 엄마아빠가 한 집에 살면서 주양육자로서 가정을 꾸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이 우리 부부의 생각.
그렇다면, 아직까지는 서로에게 최선인 상황을 배려하여롱디를 했지만, 이제 우리 부부는 아이를 어느 나라에서 키울지, 누가 주거주지를 옮길 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가지 요소들(각자의 연봉, 직업의 장래성, 어느 나라가 아이 키우기에 더 좋은지 등 교육환경, 주거비 및 생활비 등등) 고려하게 되지만, 각 선택지는 모두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고 결국은 우리 부부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의 문제이다.
Singapore의 콘도미니엄 : 더운 나라인 만큼 수영장은 필수. 한국과 다른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는 장점도 있다.
Singapore : 덥지만 잘 정비된 도시 환경
남편은 싱가포르에서 계속 살면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한다.
싱가포르에 살면 교육환경 측면에서 아이가 한국어, 영어는 물론 중국어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고 어릴 적부터 보다 다문화 및 인터내셔널한 환경에서 아이가 자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남편 직장도 워라밸이 확실히 보장되는 곳이어서 아빠가 주양육자로 참여하기 좋다. 반면, 싱가포르는 한국보다 주거비, 생활비가 비싸고 교육비도국제학교를 보낸다고 했을 경우 결코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양가 부모님이나 친척이 없다는 점에서 급할 때 도움을 구할 손길이 없다는 점은 단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싱가포르를 선택할 경우의 현재로서 가장 큰 고민은,
내가 그동안 한국에서 십년 이상 고생하여이루어놓은 커리어를 어떻게 연결 및 유지할 것인지여부이다.
단지 현재 직장을 유지할지 여부를 넘어서, 법대/사법시험/사법연수원과 로펌에서의 10년의 시간. 그 유무형의 노력과 쌓아놓은 유무형의 인적/물적 네트워크까지도 그 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제 10년간의 어쏘 시절을 지나, 파트너로서 독립된 변호사로서 역량을 발휘하기 위한 그 시작에 나는 출산과 육아, 그리고 롱디라는 복합적인 새로운 상황 속에서 여러 도전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나"와 "엄마" 그 사이:
육아휴직을하기로 했다
커리어 측면에서 파트너라는 새로운 역할에 빨리 안착하는 것도중요했지만, 동시에 임신과 출산과 새로운 가족을 꾸리고 맞이하는 시간에도 충실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남편과 결혼 생활의 절반 이상인 4년동안 롱디생활을 했기 때문에 아이를 맞이하고 키우는 과정은 함께하고 싶었기에, 우선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다.
잠시 쉬어가야 해서 얼마간은 불안감과 조바심이 나기도 했지만 우선은 그 선택에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우리 로펌에서 파트너 변호사가 장기(라고 해봤자 출산휴가 포함하여 10개월이지만..) 육아휴직을 쓴 첫번째 사례이다.
내 결정을 많인 선후배, 동료 여성변호사들이 지지해주었고, 앞으로 나 말고도 많은 여변들- 언젠가 남변들도 사정에 따라 육아휴직을 자연스레 사용하는 문화가 로펌에도 자리잡기를 바란다.
순식간에 나는 사라지고, "엄마"만 남아버린 지난 한 달
출산을 하고 난 오후에도 내가 아직 출산을 한지 모르는 고객에게 전화가 와서, 수술 후 누워있으면서 신규 사건을 수임하기도 하고, 병원에서 서류검토를 하기도 했지만-
이제 한달 정도 지난 지금은 변호사였던 나는 기억이 나지 않고, 오로지 태어난지 한달밖에 안 된, 할줄 아는 것은 먹고, 자고, 싸고 우는 것이 전부인 아가의 생체리듬에 맞추어 쪽잠을 자며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생생한 전투육아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이전의 "나"의 정체성과 일상을 회복하겠지만, 벌써 전생같이 느껴지던 이전의 나날들.
육아휴직 기간동안은 싱가포르에서 아이와 함께 살 예정인데, 그 이후의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될지 우리 부부는 다시 롱디가 될지 미래를 아직은 예측할 수도 단정할 수도 없는 상황
아마도 이런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들이 나로 하여금 난생 처음 시험보는 꿈을 꾸게 하였던것 같다.
출산 전에 이런 고민들을 나누었을 때, 나를 아끼는 분이 "보통의 삶을 살려고 하지 말고, 자유롭게 생각해보렴.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서든 잘 할 수 있어. 미리 두려워하지 마. 그리고 내가 살아보니,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더라"
이제 아이와 함께 시작하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서든 우리가 함께 행복할 생각을 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계속 끊임없이 고민도 하고
불안해하기도 하며
어쩌면 또 시험보는 꿈을 꿀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랴.
아가는 내게 왔고,
나는 이렇게 엄마가 되어가는 길에 섰으니..
[P.S]
이 글은 임신 말기에 쓰기 시작해서 조리원에서 조금,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아이가 생후 31일차인 오늘에서야 겨우 마무리했다. 공을 들여서 오래 걸렸다기 보다 출산 이후에는 글 한단락 하나 쓰기에도 너무 힘든 일상들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