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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l 21. 2021

나는 왜 이 남자를 택했을까? (1)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양가의 아버지들에 대한 생각

홀로 독립한 원룸에서의 첫날을 보내고 있다. 조용한 원룸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늘 정신없는 집에서 탈출했는데,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또 <생각하기>이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남편에 대한 생각은 양가의 아버지들에게 대한 생각으로 번져갔다.



우리 집안 양쪽 두 어르신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 각각 하나씩 있다.

너무 간절한 바람이라 지켜보는 이들마저 애를 쓰고 바라봐야 하는

각각의 사연이 담긴, 삶의 스토리가 고스란히 담긴 소원이다.


남자 1 이야기  

나이 마흔에 느지막이 낳은 외아들. 귀하고 귀한 아들. 없는 살림에 반듯하게 키운 아들.

손바닥만 한 밭 피땀 흘려 일궈낸 귀한 아들. 나의 시아버지 이야기.

남자 1은 성실히, 너무 성실히 살아왔다. 어른을 공경하고, 아들을 낳고 대를 이어 효를 실천하는 것.

아들 손주를 보는 것.

독자이며, 노모가 느지막이 낳은 외아들은 그것이 생중에 가장 애틋하게 원하는  일이다.


남자 2 이야기

6.25  전쟁통 피난길에 태어난 9남매 중 7번째 아들. 똑똑하고 예술적 재능도 많았지만,

국가대표 스키선수 생활을 하는 형의 뒷바라지를 위해 과감히 학교를 그만두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남자.

빈손으로 시작해 성실함으로 부를 축척한 남자. 사람을 잘 믿고, 단순하여 뒤통수도 많이 맞은 남자.

나의 아버지 이야기.

9형제 중 늘 경쟁 속에서 살아야 했고, 성공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공교육을 통해 키워내지 못한 특유의 재능들을 '한방 성공'을 통해 보상받고 싶어 했다.

몇 번의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고도 일흔의 나이에도

남자의 마음과 머릿속 가득히 채워진 생각은 멋지고 풍요롭게 사는 것.

그것이 생중에 가장 원하는 일이다.


어쩜 너무 다른 스토리의 두 아버지 모두 너무나 간절하게 그들만의 단 한 가지 소원을 바라고 있을까.


집착으로  보이기도 하고

삶의 희망으로  보이기도 하고

집념으로  보이기도 하고

 간절히 원하는 소망으로 보이기도 하는,

정말 질기고 질긴 그 소원.

조용한 시간과 공간 가운데, '사람'의 소망에 대해. 또는 조금 엇나가게 표현하면

'욕심'에 대해. 그리고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남자 1의 소원과 남자 2의 소원은 내 삶과  절대 동떨어져 있지 않다.

남자 1의 강력한 소원과 남자 2의 간절한 소원은 오히려 내 삶에 철저히 파고 들어온다.


가족이란 참으로 희한한 공동체이다.

200킬로. 300킬로 떨어져 사는데 소원의 여파는, 고스란히 내 삶에 스며들었다.

수십 년 전의 일인데, 나의 삶과 선택에 많은 파장을 남긴다.


성공에 대한 갈증이 깊었던 남자 2에 대한 파장으로 나는 검소하고 소박한 이 남자를 만났다. 귀가 얇은 남자 2에 대한 파장으로 자기주장이 강하고 단단해 보이는 내 남편을 선택했다.

아들에 대한 갈증이 깊었던 남자 1에 대한 파장은, 예쁜 딸만 네 명을 낳은 나에게 죄책감과 자괴감을 심어주며 자신을 괴롭히게 만들었다.




몇 년 전 시청한 영화 <메멘토>가 생각난다.

기억은 왜곡될 수 있다. (인간의 기억은 선택적이고 자의적이고 이기적이다)

기록도 조작될 수 있다. (선택적 기록이 반드시 기억이나 진실과 일치할 수 없다는 사실)

그래서 내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저편의 기억이나 순간의 감정도

왜곡되고 변형되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뭔가 더 혼란스러운 밤이다.


나의 선택은 남자 2로 인해 시작했을까.

나의 갈등은 남자 1로 인해 시작했을까.


저 기억은 맞는 기억일까. 아닐까. 그저 느낌일까.


아니 남자 1과 남자 2와 상관없이, 그저 '나'라는 멍청한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일까.


또다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함께 오늘 밤도 '남편'에 대한 생각을 내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했다.

여전히 내 뇌를 채우고 있는 '000'이라는 이름.

왜 나는 그 이름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가.

혼자만의 공간에서 '아싸, 신난다!!!'를 외치며 흥에 겨워야 할 독립 첫날,

나는 내 결혼생활의 시작에 의문을 품으며 나의 가족과 나에 대해 또 생각하고 생각해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밤이다.




<자동차와 공룡>

짐을 챙겨 집을 나서는데, 8살 막내가 아끼는 자동차 장난감과,  직접 만든 공룡을 건넵니다.

 '엄마, 엄마만의 시간 잘 보내고 와.'

가슴이 울렁합니다. '그래,00야. 힘든 시간이지만 너희들을 위해서라도 엄마 잘 생각하고 답을 찾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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