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 춘천 – 두번째 서브3

by 정선후 린스아저씨

2023년 10월 29일, 일요일.
가을이 깊어지는 날, 나는 다시 출발선에 섰다.

경주에서 한 번 증명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더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졌다.

한 번 해낸 사람은,
다시 해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달리게 된다.

- 함께 출발하지만, 결국은 혼자

새벽,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같이 달리는 사람들,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얼굴들.

우리는 늘 그렇듯 함께 출발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마라톤은 결국 각자의 레이스라는 것을.

누군가와 나란히 달릴 수는 있어도 대신 달려줄 수는 없다.

- 춘천이라는 변수

춘천은 정직한 코스가 아니다.

업힐이 반복되고,
리듬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중요한 건 페이스가 아니라 판단이었다.

“올라갈 때는 버티고,
내려갈 때는 밀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결정한다.”

그날의 전략은 단순했다.

하지만 단순함을 끝까지 지키는 일은 늘 어렵다.

- 확신 없는 레이스

초반은 차분하게 흘렀다.
속도를 억누르고, 리듬을 만들고, 몸을 관찰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경주 때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 된다’는 느낌.

그런데 춘천에서는 끝까지 그 감각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확신이 없으면, 무리하지 않는다.”

- 25km, 레이스의 온도가 바뀌다

함께 달리던 흐름이 깨졌다.

옆에 있던 사람이 멈추고,
나는 계속 가야 했다.

그 순간부터 레이스의 온도가 달라진다.

응원도, 풍경도, 소리도 사라지고 오직 호흡과 발소리만 남는다.

마라톤은 이 지점에서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 29km, 미루는 선택

원래는 이 지점에서 승부를 보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밀지 않았다.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룹 속에 남았다.
조금은 느리더라도, 조금은 안전하게.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그때는 알 수 없었다.

- 36km, 결국 나가는 순간

계속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나갈 것인가.

몸은 무겁고,
마음은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끝내면, 오늘을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나갔다.

빠르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

- 무너지지 않는 기술

이미 몸은 한계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속도를 올리는 대신 무너지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보폭을 줄이고,
리듬을 지키고,
자세를 놓지 않는다.

마라톤 후반은 속도의 싸움이 아니라
붕괴를 늦추는 싸움이다.

- 골인, 그리고 사람

2시간 58분.

기록보다 먼저 떠오른 건
사람들이었다.

기다리는 사람들,
함께 달린 사람들,
그리고 나를 믿어준 사람들.

내가 기뻤던 이유는 기록이 아니라
그들과 이 순간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었다.

- 내가 달리는 이유

나는 기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운동은 나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저 반복되는 일상이다.

밥을 먹듯,
일을 하듯,
나는 움직인다.

대회는 그 일상을 조금 더 즐겁게 만들어주는 자리다.

가족과 외식을 하듯,
동료들과 웃으며 보내는 시간처럼.

그래서 나는 믿는다.

끝까지 달린 사람은 모두 챔피언이다.

경주에 이어, 춘천까지.

나는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잘 달려서가 아니라,
끝까지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안다.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가을의 전설은,
계속된다.

월, 목 연재
이전 12화에피소드 1 경주 - 첫 번째 서브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