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경주 - 첫 번째 서브3

by 정선후 린스아저씨

가을이었다.

그리고 경주였다.


금요일 밤, 일을 마치고 경주로 내려갔다.

서울에서 경주까지는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멀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숙소에 짐을 풀고 경주 교동의 작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마라톤 전날의 저녁은 늘 조용하다.

괜히 말을 아끼게 되고 괜히 몸을 더 살피게 된다.

숙소로 돌아와 내일 입을 유니폼과 신발을 정리했다.


대회 준비라는 것은 늘 비슷하다.

장비를 챙기고 몸을 풀고 컨디션을 확인한다.

몸은 가벼웠다.

훈련도 충분히 했다.

“오늘은 되는 날일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몸을 씻고 럼블롤러로 다리를 풀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3시.

잠을 깊이 자지는 못했다.

하지만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내 마라톤 아침 루틴은 늘 같다.

오예스 두 개 카누 커피 두 잔

그리고 화장실을 몇 번이고 들락날락한다.


마라톤에서는 속이 편한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대회장에 도착했을 때 경주시민운동장은 이미 들썩이고 있었다.


수많은 러너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

마라톤 사회의 아이콘 배동성.

그의 목소리가 대회장의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워밍업을 하면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오늘 일 낼 것 같은데.”

그런 느낌이었다.


출발 직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가민 시계가 멈춰버렸다.

버튼이 눌리지 않았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시간은 7시 59분.

잠깐 머릿속이 멍해졌다.

하지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파이브!

포!

쓰리!

투!

원!

출발!”


배동성의 카운트다운이 들렸고 나는 그대로 달려 나갔다.

시계 없이 42.195km.

조금 당황했지만 나는 나를 믿기로 했다.


초반 5km.

서브3 풍선을 찾았다.

그 그룹에 붙었다.

1km마다 누군가 페이스를 외쳤다.

“4분 13!”

좋았다.

그 페이스면 오늘 충분히 가능했다.

시계가 없어도 몸은 속도를 알고 있었다.


10km.

몸이 완전히 풀렸다.

호흡도 편했고 다리도 가벼웠다.

여름 내내 했던 훈련이 헛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달리면서 입가에 웃음이 났다.


20km.

서브3 그룹은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욕심이 올라왔다.

“치고 나갈까.”

하지만 참았다.

마라톤은 참는 스포츠다.

지금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30km.

함께 달리던 그룹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몸이 말했다.

“지금 페이스 아니다.”

나는 결정을 했다.

독주.

훈련에서 몸에 익힌 그 속도 그대로 달렸다.

지금 생각해도 좋은 판단이었다.


35km.

이제부터는 마라톤의 진짜 구간이다.

햄스트링, 종아리, 허리 하나씩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이제 힘들다.”

하지만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케이던스를 짧게 가져가고 근육에 무리가 가지 않게 조심해서 달렸다.

경련만 오지 않으면 끝까지 갈 수 있었다.


마지막 2km.

이제 다 왔는데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끝이 보일 듯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계속 달렸다.

그리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2시간 59분 02초.

서브3.


나는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가을 마라톤 시즌의 첫 번째 단추가 끼워졌다.

경주, 좋은 시작이었다.


하지만 기쁨보다 먼저 이 질문이 떠올랐다.

“이게 우연일까.”

나는 아직 확신하지 못했다.


그리고 곧 알게 된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춘천에서......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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