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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경 Sep 22. 2021

루이 비통 트렁크와 여행의 역사

여행에서 출발한 럭셔리 브랜드

10대 시절 루이 비통Louis Vuitton은 정든 고향과 가족의 품을 떠나 큰 꿈을 안고 1837년 파리에 입성했다. 프랑스 동부 쥐라산맥 아래 평화로운 전원 마을 앙셰Anchay 출신인 그는 목공 작업에 익숙했다. 덕분에 파리에서 실력 있는 상자 제조 전문가 로맹 마레샬Romain Maréchal의 견습생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상자 제작과 포장 기술을 익힌 루이 비통은 곧 귀족들 사이에서 짐을 잘 싸는 전문가, 패커packer로 인기를 얻었다. 당시는 국민투표로 당선된 프랑스 최초의 대통령이자 마지막 황제였던 나폴레옹 3세가 통치하던 시기로 귀족들 사이에서는 화려한 크리놀린crinoline스타일의 복식이 유행했다. 루이 비통은 어마한 분량의 천이 들어간 드레스를 포장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에 금세 당시 패션을 선도하던 외제니Eugénie 황후의 전담 패커가 됐다. 황후의 후원으로 그는 17년 만에 독립해서 1854년 파리 뇌브데카퓌신Neuve-des-Capucines 거리에 자신의 매장을 열게 된다. 16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럭셔리 브랜드 루이 비통의 시작이었다. 당시 루이 비통 포스터에는 “부서지기 쉬운 물건을 안전하게 포장해드립니다. 의류를 포장하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1 독일 화가 프란츠 빈터할터의 〈시녀들에게 둘러싸인 외제니 황후〉(1855). 당시 화려했던 크리놀린 스타일의 드레스가 눈에 띈다.


1825년 영국에서 최초의 여객 철도용 증기기관차가 발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에도 철도가 깔렸다. 루이 비통은 기차 여행이 일상화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하면 여행에 최적화된 트렁크를 만들 수 있을지 고심했다. 당시는 빗물이 고이지 않도록 뚜껑이 돔 형태로 된 가죽 트렁크가 일반적이었다. 1858년 그는 캔버스 천에 풀을 먹여 방수 처리를 하고 기차 내 적재가 쉽도록 뚜껑을 평평하게 만든 트리아농 그레이 트렁크Trianon Gray Trunk를 개발했다. ‘트리아농’은 외제니 황후가 즐겨 찾던 베르사유 궁전의 별궁 이름에서 따왔다. 풀먹인 캔버스 천은 가죽보다 무게도 가볍고 방수에 효과적이었으며, 모서리 부분은 금속으로 마감해 훨씬 견고했다. 캔버스 천을 고정하기 위해 금방 녹슬고 트렁크의 나무를 갈라지게 하는 못 대신 리벳과 아교를 사용했다. 게다가 트렁크 내부는 칸으로 구획하고 서랍을 달아서 장신구를 별도로 보관하기 용이하게 했다. 이 모든 아이디어는 혁신적이었고 트리아농 트렁크는 매장에 깔리기가 무섭게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Louis Vuitton Malletier 

적재가 쉽도록 윗면을 평평하게 디자인해 혁신적인 모델로 평가받는 트리아농 그레이 트렁크(1879). 

외제니 황후가 사용한 루이 비통 라운드 트렁크 (1865). 트리아농 트렁크와 유사하지만 윗면이 둥글게 제작된 당시의 일반적인 트렁크 형태이다. 

1872년에 개발한 레드 스트라이프 캔버스를 적용한 트렁크. 이 트렁크는 술탄 압둘 하미드 2세를 위해 제작한 모델이다. 

1888년부터 생산한 다미에 패턴을 적용한 트렁크. 



1859년 급속도로 성장하는 하우스에 걸맞은 새로운 공방을 열 필요성을 느낀 루이 비통의 눈에 파리 북서부 지역 아니에르Asnières가 들어왔다. 센강 변에 위치한 아니에르는 트렁크 제작에 필요한 포플러 나무 원목을 수급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게다가 인근에 위치한 파리 생 라자르 기차역과 연결되어 운반하기도 편했다. 아니에르 공방에서 생산한 루이 비통 트렁크는 곧 전 세계로 수출되었다. 1872년 루이 비통은 브라운 바탕에 레드 컬러 줄무늬 캔버스를 트렁크에 사용했다. 1888년에는 프랑스어로 체크무늬라는 뜻의 ‘다미에’ 패턴을 고안했다. 캔버스에 체크무늬 패턴을 인쇄한 것이지만 시각적으로 직조한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캔버스에 코팅 처리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천에 패턴을 인쇄해도 쉽게 오염되거나 지워지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루이 비통의 다미에를 따라 하는 카피 상품이 쏟아져 나오자 1896년 루이 비통의 아들인 조르주 비통이 모노그램 패턴을 디자인했다. 루이 비통의 알파벳 첫 글자 L과 V의 조합과 함께 꽃, 다이아몬드를 형상화한 모노그램 심벌은 곧 루이 비통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오랫동안 루이 비통을 상징해온 모노그램은 2003년 또다시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바로 당시 아티스틱 디렉터인 마크 제이콥스의 제안에 무라카미 다카시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멀티컬러 모노그램이 탄생한 것이다. 새롭게 선보인 컬러풀한 모노그램 패턴은 루이 비통을 젊고 활기찬 이미지로 탈바꿈시켰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멀티 컬러 모노그램 패턴


루이 비통의 혁신은 세로로 세울 수 있는 트렁크를 고안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바로 옷장이라는 의미를 가진 워드로브 트렁크Wardrobe Trunk다. 1875년 출시한 이 트렁크는 내부에 옷걸이 기능을 갖추어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옷을 다 꺼낼 필요 없이 세우기만 하면 간이식 옷장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때마침 1883년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달리는 오리엔탈 특급열차가 개통되었다. 당시 1등 침대칸은 루이 비통 트렁크에 짐을 실은 탑승객들로 북적였다. 기차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증기선을 타고 여행을 즐기는 이들도 많았다. 제국주의의 영향으로 프랑스 식민지는 아프리카·인도차이나·남태평양까지 확대되었다. 선박 회사들도 프랑스 본국과 식민지를 오가는 증기선을 정기적으로 출항시켰다. 1912년 출항을 시작한 타이타닉호에서도 루이 비통 트렁크는 인기가 높았다. 배 안에서도 지켜야 할 에티켓은 존재했고 각종 사교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귀족층은 챙겨야 할 짐이 일반인보다 몇 배로 많았다. 1885년을 기준으로 선박 1대당 탑승객 수는 평균 1200명이었고, 그중 300명은 1등석 고객이었다. 비행기를 탈 때 수하물을 늘 체크하듯이 당시 배를 타는 승객들의 수하물 크기와 무게 기준이 정해졌는데, 루이 비통은 1등석 승객이 편하게 들고 탑승할 수 있도록 높이가 33cm를 넘지 않는 스티머 트렁크Steamer Trunk를 제작했다. 이 트렁크는 침대 밑에 보관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사막이나 오지를 탐험하는 이들을 위한 트렁크도 있었다. 당시 선박 1등석 고객이나 자동차 소유자는 모두 부유층이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면서 혹시 모를 파손을 방지하기 위해 아연이나 알루미늄, 구리 소재로 만든 트렁크도 맞춤형으로 판매했다. 탐험가 피에르 사보르냥 드 브라자Pierre Savorgnan de Brazza가 사용한 침대 트렁크Bed Trunk는 펼치면 침낭이 설치되는 구조다. 1868년부터 제작된 이 모델은 훗날 루이 비통의 가구 컬렉션 오브제 노매드 ‘어니스트 베드’에서 오마주되었다. 운전자에게 필요한 옷가지와 모자를 운반하는 용도로 만든 원형 트렁크Chauffeur’s Kit는 차량 후방에 단단하게 고정되었는데 스페어 타이어가 달린 듯한 스타일로 한동안 유행했다. 또 식기 세트를 운반할 수 있게 제작한 피크닉 트렁크Picnic Trunk는 여행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충족시켰다. 테니스와 골프는 부유층의 고급 스포츠로 자리 잡았는데, 이들을 위해 테니스채, 골프채 높이에 맞춰 특수 제작한 트렁크Triumph Suitcase(1939)도 루이 비통 광고에서 볼 수 있다. 1930년 이후 비행기 여행이 대중화되면서 루이 비통은 조종사와 탑승객을 위한 에어로 트렁크Aero Trunk도 디자인했다. 

(왼쪽부터) ©Louis Vuitton Malletier 

네 개의 의상 수납장으로 구성된 오토 트렁크를 장착한 롤스로이스(1927). 

탐험가 피에르 사보르냥 드 브라자가 사용한 침대 트렁크(1905). 

1924년 7월호 〈보그〉에 실린 광고. 운동복과 테니스 라켓, 슈즈, 공을 분리해 수납할 수 있는 트렁크를 소개했다. 



루이 비통 트렁크는 이동식 도서관이 되기도 했다. 세계 각지를 탐험한 지식인들은 이국적인 동식물, 지질, 기후, 풍토 등을 관찰하고 필요한 샘플을 본국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이들의 

방대한 기록은 백과사전 집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11년 루이 비통이 선보인 라이브러리 트렁크Library Trunk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출판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위한 맞춤형 트렁크다. 총 29권이 들어 있는 이 트렁크는 북미 지역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홍보를 톡톡히 했다. 유명인을 위한 맞춤형 라이브러리 트렁크도 있다.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위해 제작한 라이브러리 트렁크(1923)다. 워드로브 트렁크와 마찬가지로 세로로 세우면 훌륭한 삼단 책장으로 변신하는 이 트렁크는 여행지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는 독서광에게 안성맞춤인 모델이다. 


(왼쪽부터) ©Louis Vuitton Malletier 

피크닉 트렁크(1910). 피크닉이라는 개념은 사실 19세기의 발명품이었다. 마네의 명작 〈풀밭 위의 점심 식사〉(1863)처럼 잘 차려입은 부유층 인사들은 경치 좋은 전원에서 피크닉을 즐겼다. 

29권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들어가는 라이브러리 트렁크(1911). 

헤밍웨이가 사용한 라이브러리 트렁크(1923). 



그 밖에 프랑스 출신 배우이자 가수 릴리 폰스를 위해 제작한, 36켤레의 구두가 들어가는 슈즈 트렁크Shoe Trunk(1925), 디즈니 영화 〈환타지아〉에 그림자로 출현해 미키 마우스와 

악수한 지휘자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를 위해 제작한, 악보·LP판·타자기 보관 공간과 간이형 책상이 숨겨진 데스크 트렁크Desk Trunk(1930), 샤론 스톤이 디자인한 화장품 보관용 트렁크amfAR One Vanity Case(2000), 칼 라거펠트가 특별히 주문한 20개의 아이팟 클래식을 보관할 수 있는 아이팟 케이스 트렁크iPod Case(2005)도 있다. 루이 비통의 끝없는 여행의 종착지는 어디가 될까? 2009년 루이 비통은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화성 트렁크Mars Trunk를 공개했다. 이는 2004년 루이 비통 탄생 150주년을 맞이해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트렁크 디자인 공모전 당선작 중 하나였다. 부활절 달걀과 같은 외형에 내부는 여러 구획의 선반으로 나뉘어 있는데 CD, 그릇과 함께 우주에서 화성을 감상할 수 있는 접이식 라운지 체어도 수납되어 있다. 제임스 본드 스타일의 미니 칵테일 바가 갖춰진 근사한 루이 비통 트렁크를 싣고 화성으로 날아가는 상상에 즐거워진다. 


(왼쪽부터) ©Louis Vuitton Malletier 

배우이자 가수 릴리 폰스가 사용한 36켤레의 구두 수납장이 달린 슈즈 트렁크(1925). 

지휘자 스토코프스키가 사용한 데스크 트렁크(1930). 악상이 떠오를 때마다 오선지의 음표를 그리는 스토코프스키를 위해 여행 중 어디에서나 책상을 펼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칼 라거펠트가 주문한 아이팟 보관용 트렁크 (2005). 

샤론 스톤이 직접 디자인한 화장품 보관에 특화된 트렁크(2000). 루이 비통은 베니스에서 열린 시네마 어게인스트 에이즈 행사를 위해 트렁크 3개를 제작했다. 하나는 샤론 스톤 소유가 되었고, 또 하나는 루이 비통 뮤지엄에 소장됐으며, 나머지 하나는 경매에서 약 1800만 원에 판매되었다. 

루이 비통 150주년 기념 사내 공모전 선정작인 화성 트렁크(2004). ©Louis Vuitton Malletier 



참고 문헌·이미지 출처 

〈루이 비통: 모던 럭셔리의 탄생〉, 폴 제라르 파솔Paul-Gérard Pasols, 2012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루이 비통Louis Vuitton Malletier, 2016

〈루이 비통: 100개의 전설적인 트렁크〉, 피에르 레옹포르테Pierre Léonfort, 에라크 퓌잘레 플라Éric Pujalet-Plaà, 2010 

©Collection Archives Louis Vuitton Image Courtesy of Louis Vuitton Malletier

자료 제공: 루이 비통 코리아


(본 내용은 월간 <디자인> 2020년 10월호 '럭셔리 디자인 유니버스' 특집 기사로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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