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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경 Sep 21. 2022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전시

오바마 선거 포스터로 유명세를 탄 그래픽 아티스트

희망이 없다면 행동해야 할 의미가 없다. 나의 철학에서 행동은 중요한 영역이다.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오바마 선거 포스터의 제목도 다름 아닌 ‘Obama HOPE’다. 셰퍼드 페어리가 2008년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를 위해 디자인해 웹상에서 무료 배포한 이 포스터는 소셜 미디어를 타고 전례 없는 인기를 구가했고 급기야 오바마 선거 캠프가 이를 캠페인 공식 포스터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정작 아티스트 본인은 제작비를 충당하고 남은 포스터와 스티커 판매 수익금을 선거 캠페인에 기부하며 수익보다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데 의미를 뒀지만, 포스터 속 초상의 원본 사진을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이유로 거대 언론사 AP 통신과 저작권 소송에 휘말렸던 일화도 유명하다.

© Courtesy of 롯데뮤지엄

기소 이유는 AP 통신의 사진 기자 매니 가르시아Mannie Garcia가 보도용으로 촬영한 오바마의 사진을 원작자의 허락 없이 포스터 제작에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셰퍼드 페어리 측은 원작을 참고해 새롭게 창조한 그래픽 이미지이므로 문제될 게 없는 ‘공정 사용fair use’라고 반박했지만, 그가 원본을 다른 사진으로 착각한 탓에 이를 번복하는 과정에서 법정에서 거짓 진술을 한 게 되어버려 상황은 불리하게 돌아갔다. 창작자의 2차 가공 가능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판례로 남을 뻔 했던 이 소송전은 결국 합의를 통해 일단락되었다. 


© Courtesy of 롯데뮤지엄


일련의 사건은 다큐멘터리 〈Obey Giant. The Art and Dissent of Shepard Fairey〉로 제작되었는데 이번 전시에서 무려 1시간 32분짜리 풀 버전으로 공개해 눈길을 끈다. 셰퍼드 페어리 덕분에 자신의 사진 또한 유명해져 흐뭇했다고 밝힌 AP 통신 사진기자 매니 가르시아의 입장과 이 소송을 끝까지 이어갔더라면 반드시 이겼을 것이라고 장담한 페어리 측 변호사의 육성을 통해 사건을 보다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비록 300시간의 사회봉사와 160만 달러의 합의금을 AP 통신에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했지만 셰퍼드 페어리의 ‘Obama HOPE’ 포스터는 2008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 커버 아트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런던 디자인 뮤지엄이 시상하는 ‘2009 올해의 디자인’ 위너상을 수상하며 디자인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https://youtu.be/IVvyI7BdYw8

다큐멘터리 <Obey Giant. The Art and Dissent of Shepard Fairey> 예고편



이번 전시에서는 셰퍼드 페어리의 또 다른 대표작 ‘오베이 자이언트’도 만날 수 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던 시절 그는 스케이트보드 가게에서 일하며 펑크록과 힙합 음악에 기반한 비주류 문화에 눈을 떴고 ‘거인 앙드레(Andre The Giant)’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프로 레슬러 앙드레 르네 루시모프의 초상을 가공해 ‘거인 앙드레에게는 그의 패거리가 있다’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 캠페인을 전개해 인기를 모았다. 이후 그는 존 카펜터 감독의 영화 〈화성인 지구 정복〉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슬로건 ‘오베이Obey’에서 영감을 받아 1990년대부터 ‘오베이 자이언트OBEY Giant’ 캠페인을 전개하기 시작했다(2001년 셰퍼드 페어리는 브랜드 ‘오베이’를 론칭하기에 이른다). 


전시장에는 스케이트장의 곡면 경사를 재현한 공간을 조성하고 작가의 작품을 데크에 인쇄한 스케이트보드를 벽면에 설치해 눈길을 끈다. © Courtesy of 롯데뮤지엄


단순한 아이콘의 형태로 바뀐 앙드레의 초상과 ‘복종하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덧입힌 그의 작품은 프로파간다적 색채를 띠고 있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사회적 권력을 비판적 시각으로 받아들일 것을 주문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바버라 크루거의 도발적인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전시는 ‘오베이 자이언트’ 캠페인에 나타난 초기 실험과 함께 평등, 반전, 인권, 환경, 반자본주의 등을 주제로 1997년부터 2017년까지 제작한 포스터를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비둘기, 장미, 연꽃, 지구 등 상징적인 도상 위로 짧고도 강렬한 문구를 새겨 넣은 그의 그래픽에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은 온전히 관람객의 몫이다. 


© Mikayla Seo


한편 전시 기간 동안 셰퍼드 페어리의 작품은 롯데월드타워 1층, 석촌호수와 강남 도산대로 인근, 성수동 피치스 도원 등 뮤지엄 밖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는 공공장소가 대중의 소통과 참여를 유도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공간이라고 믿는 작가의 의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스트리트 아티스트'라기 보다 대중을 끌어당기는 ‘포퓰리스트populist’로 스스로를 정의한다. 첫 번째 개인전 〈Shepard Fariey: Supply & Demand〉를 준비하던 2009년 반달리즘 혐의로 보스턴에서 경찰에 체포되는 등 많은 부침을 겪기도 했다. 이제는 오랜 시간 벽화가 남을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은 건물 외벽에만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여전히 권위와 관습에 저항하는 그는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을 믿는다. 



나는 예술이 내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았기 때문에 예술이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본 원고는 각색, 수정되어 월간 <디자인> 2022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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