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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aka 도깽이 엄마 Jun 25. 2021

공동육아 @ 시랜드

천국의 시랜드 vs.  그렇지 않은 친정월드

남편과 나는 맞벌이 부부였다. 남편도 나도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남편은 서울 근교에 위치한 회사를 다녔고 나는 초등학교 영어강사를 하며 세컨드 잡으로 과외 선생을 하고 있었다. 나는 투잡임에도 불구하고 벌이는 남편이 당연히 나 보다 좋았다. 11년 유학생활에서 얻은 건 부모님이 희망하셨던 화려한 박사의 교수가 아닌 영어 하나였다. 그래도 고교 유학생활에서 경험했던 다양한 교내 활동들이 기반이 되어 다른 강사들과의 경쟁력에서 뒤지지 않는 유니크한 영어 강사로 먹고 살수 있게 되었다. 초등학교 영어강사라는 직종은 1년에 한번씩 재계약을 하는 비정규직 자리다. 사립학교들은 별탈이 없으면 1년에 한번씩 재계약을 무난하게 하고 공립학교들은 그때 그때의 교육부 방침에 따라 자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대다수의 공립학교에는 이미 내 자리가 없어 진지 오래었고 강남의 과밀 학급인 학교들만 강남교육청을 통해 지원받는 상태였는데 그 마저도 내가 근무하던 해가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학교들에 이력서를 한창 쓰던 2020년 2월초의 어느 날, 난 병원 신세를 몇일 지게 되었다. 출근길 강변북로, 한남대교로 빠지는 길목에서 당한 후미 추돌 사고…

찰나의 졸음운전을 한 대리기사의 불찰이었다. 때문에 면접을 오라는 학교는 패스해야 했다. 

내 차가 엄청 탄탄 하다 보니 다행이 많이 다치지는 않았었다. 




퇴원 후 새직장을 구하느냐 마느냐 기로에 서있던 바로 그때 도깽이의 임신소식을 알게 되었다. 나랑 남편은 두 번도 생각 안하고 재 취업을 위한 이력서는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다. 그냥 프리랜서 과외 선생님을 하는 걸로 합의를 봤었다. 강사 생활 10년, 매순간 최선을 다했던 나는 커리어 적으로 아쉬움이 하나도 없었다. 


출산을 하면 당연히 산후 조리원을 미니멈 2주 맥시멈 3주까지 있을 예정이었다. 첫 2~3주는 대략 그렇게 흘러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천국이라고 믿었던 그 산후 조리원을 퇴소 후가 문제였다. 우리 집에 산후 도우미를 들일 것인가? 그리고 이제 애기가 태어나니 거실에 있는 긴 식탁을 치우고 소파를 들여야 할까? 그럼 우리 식탁은 어디로 가지? 붙박이 장들도 다 때고 빌트인 침대 프레임도 다 때 버리는 대형 공사를 해야 하나? 이런 사소한 고민은 둘째 치고 나 혼자 독박육아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갑자기 숨이 막히고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사시는 친정 엄마아빠는 워낙 나이도 많으신 데다 나랑 궁합이 좋지 않기에 늘 그들과 떨어져서 멀리 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가깝게 사신다고 무단 침입을 하시거나 시도때로 없이 부르시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안 친하고 안 좋아하다 보니 가까이 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6.25 세대를 사셨던 분들이라 꼰대 마인드에 잔소리가 나랑은 정말 맞지 않는 분들이셨다. 그래도 그분들 덕에 당장의 주거는 해결된 상태였다. 


그러던 찰나에 남편이 물었다. 

“엄빠랑 합칠까?”

도깽이의 임신소식이 전해지던 그때 어머님 아버님은 막 이사를 마치신 상태였다.

당연히 기대하시던 2세와 또 결혼할 도련님을 생각해서 정든 집을 떠나 좀 넓은 대단지 아파트로 이사를 마치신 상태였다. 내가 신나서 어머님 집 인테리어 총괄 책임자 일 때만 해도 임신 사실을 나조차 몰랐었다. 그저 너 하고 싶은 데로 예쁘게 집을 꾸며 보란 말씀에 신나게 내 취향 것 집을 꾸몄던 것뿐이었다. 설령 2세가 생겨도 같이 살 생각은 당시만 해도 전혀 없었다.




그런데 남편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 50평 가까이 되는 큰 집에서 적적하신 시부모님 그리고 무엇보다 애기를 엄청 좋아하시는 시부모님 이시라면 같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더구나 친정 부모님 보다 궁합이 잘 맞아서 밥 먹듯이 시댁에 와서 뒹굴고 밥 먹고 놀다 가는 우리이기에 어머님 아버님만 허락하시면 너무나도 기쁠 것 같았다. 더욱이나 혼자서 애와 독박육아 그리고 손자가 태어나면 자주 들락날락 하실5분거리의 친정 부모님을 생각하니 북적이고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생각 만으로도 산후 우울증이 올 거 같았다. 


그래서 바로 시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 애기 태어나면 같이 사는 거 어떠세요?" 남편이 물었다

같이? 우리야 좋지… 근데 너희는 괜찮겠어?

어머니 저희는 좋아요!” 다급한 마음에 스피커폰에 크게 외쳤다.

그래 그럼” 이라는 어머님의 짧고 굵은 답변과 함께 우리는 공동육아를 위해 합가 하기로 결정했다.


남들은 시금치의 “시”자도 싫은 “시월드” 라지만 난 “시”의 시옷만 들어도 웃음이 지어지는 시댁을 만났기에 암묵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시월드” 대신 “시랜드”라고 쓰기로 했다. 


어릴 적 ㅇㅇ 랜드에 가면 좋은 기억으로만 가득 찼던 그래서 아이들에게 천국 같은 이미지를 주던 그 ㅇㅇ 시랜드에 나는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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