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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Jan 05. 2023

서평 쓰기, 10가지 요령

글을 쓴 지 300일

브런치 운영센터에서 다음과 같은 경고처럼 다가오는 알림글을 보내왔다. “작가님의 글을 못 본 지 무려…300일이 지났어요. ㅜㅜ 작가님 글이 그립네요.” 정말 나의 글을 그리워할 사람이 있을까라는 의심에 앞서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린 지 무려 300일이 넘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건 뭐, 절필에 가깝다.


다시 시작하는 건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어렵다. 그래도 몇 년 동안 70편이 넘는 글을 써왔는데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는 자괴감은 사뭇 크다. 남들은 브런치북 대상 수상이니, 은상 수상이니 ‘대단한’ 성과를 이루기도 하고, 구독자 수 증가라는 ‘뿌듯함’을 누리기도 하는데 나는 뭐지? 그나마 계속 쓴다라는 소박한 ‘의의’마저 무너져 버린 상황이니 다시 써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은 사그라들지 않음을 발견한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


그래서, 그래도, 이제서라도 다시, 새로 시작해보려 한다. 무엇을 써봐야 할까,라는 감(feel)마저 무뎌지니 약간의 난감함과 괜한 스트레스가 머릿속을 꾸역꾸역 채워나가려 할 때, 문득 가끔이라도 써왔던 서평(book review)이라도 써봐야겠다는 실마리를 발견한다. 서평을 어떻게 썼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서평 쓰기 관련 책도 다시 펼쳐보고 짤막한 유튜브 몇 개도 시청해 본다. 땔감, 아니 쓸감을 겨우 잡는다. 서평 쓸 때 참고할 만한 것을 정리해 보자.


그래서 이런저런 자료들을 정리해보며 서평 쓸 때의 요령을 열 가지로 간추려 보았다.


1. 서평 대상 책을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를 써 본다.

모든 사람과 사물을 만난 계기는 만물이 나와 ‘인연’을 맺게 된 하나의 사건이다. 이러한 사건은 그것만으로도 특별하다.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서점에 흐드러지게 놓여 있는 수 만 권의 책 중 오늘, 여기에서 나와 만나게 된 경로는 하나의 흥미로운 역사일 수 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났을 수도, 수많은 책을 들춰보다 스친 하나의 문장에 꽂혔을 수도, 강렬한 책 표지의 디자인에 이끌렸을 수도 있다. 이것은 나의 개성과 취향이 물화되어 떠오른 것일지 모른다.


2. 요약하되, 모든 것을 말하진 말자.

책의 전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서평 자체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며, 서평의 유용성을 높여준다. 책 내용에 대한 핵심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보는 것은 책을 직접 만난 나에겐 ‘소감’을, 내 서평을 읽은 예비 독자들에게는 ‘흥미’를 가져다준다. 그렇다고 책의 세부 내용을 모두 놓치지 않고 나열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마치 영화의 예고편이 본 영화의 내용 전부를 ‘까발리는’ 것과 같이 김 빠지는 결과를 가져올 뿐 아니라 ‘스포일러’라는 비도덕을 양산하는 것일 수 있다. 그야말로 ‘줄거리’ 정도를 체계적으로 적어주는 것이 좋은데 이를테면 소설 서평의 경우 이야기의 기승전결에 따라 간략한 내용을 적어주면 좋다. 이때 시작(기)과 끝(결)을 먼저 쓰고 나서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굵직한 사건들을 언급해주면 충분하다. 추리소설의 경우 결과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그야말로 상도덕에 어긋난 것이니 만큼 결과가 아닌 예상이나 기대 정도로 마치는 것이 좋다.


3. 나의 관점이 핵심이다.

서평은 그야말로 읽은 책에 대한 나의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책을 읽은 후의 감상, 소감, 관련한 에피소드, 책의 장점과 단점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서평의 정수라 하겠다. 단순히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으로 끝나는 서평에는 개성이 없다. 나만의 관점이 책과 나의 ‘특별한’ 관계를 규정해 준다. 이 책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었나? 나만의 색다른 관찰과 소견이 기본 1000쇄 정도를 찍어 전국에 배포된 복제된 예술에 특별한 ‘아우라’를 부여한다. 이러한 나의 관점과 책에 대한 소감은 나에게 의미를 부여할 뿐 아니라, 책에게 색다른 의미를 덧붙이는 작업이다. 책을 쓴 저자라면 틀림없이 이러한 나의 개성이 담긴 서평에 고마워할 것이다.


4. 발췌를 반드시 해본다.

책에 대한 나만의 관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것의 근거가 되는 책의 한 부분 - 문장도 좋고 문단도 좋다 - 을 서평에 담는다. 책을 읽으며 메모해 놓은 부분, 밑줄 그은 부분, 글의 내용이 너무 좋아 아예 책의 한 페이지를 통째로 접은 부분들. 나의 인상이 각인된 흔적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며 그중 제일을 하나 뽑아 서평에 인용하고 페이지수를 적는다. 이 과정은 그 자체로 책과 나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예비 독자들은 내 서평에 새겨진 ‘발췌문’을 보며 문장의 맛을 미리 맛볼 수 있다. 너무 많은 발췌는 오히려 독이 된다. 발췌를 많이 해서 공개하려는 욕심이 오히려 서평의 리듬을 깨뜨릴 수 있으니 주의할 것.


5. 저자에 대한 이야기도 추가해 본다.

책의 저자에 대한 이야기는 그 책이 나오게 된 ‘기원’을 살펴보는 것이다. 저자가 살아온 과정, 저자의 직업과 약력, 저자의 특징 등을 간단하게 언급해주면  서평이 보다 입체적으로 바뀐다.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음식을 맛보면서 요리사와 한번 슬쩍 눈인사를 한다면 그 음식에 대한 맛이 좀 더 살아나지 않겠나. 일류 셰프라면 그 음식에 대한 권위가 올라간다. 일류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음식을 만들어 내놓은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보는 것,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음식을 만들었는지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메뉴의 풍미를 높여준다.


6. 번역서라면 역자의 후기를 살펴보자.

시중에 나온 책 중 꽤 많은 책들이 번역서인데, 그러한 번역서의 맨 뒷부분에는 역자(옮긴이)의 후기 또는 해제가 실린 경우가 많다. 역자의 후기는 외국어로 쓰인 책에 대한 최초의 서평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치열하게 그 책과 만나고 씨름한 사람의 서평이니 그 내용 또한 깊고 예리하다. 내용이 난해한 책인 경우 옮긴이의 해제는 그야말로 책을 온전히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예컨대, 예전에 나는 루이스 하츠가 합의주의 정치사상에 입각해 쓴 <미국의 자유주의 전통>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의 문장, 그러니까 영어로 쓴 원서의 문장은 영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에게조차 난해할 정도라 하니 번역의 내용 역시 어려웠다. 그나마 옮긴이의 해제를 읽고 나니 이해가 쉬웠다. 옮긴이의 후기 또는 해제의 핵심 내용을 간추려 서평에 담는 것도 내 서평의 가치를 높이는데 한 몫한다.


7. 다른 이가 쓴 서평을 참고해 본다.

읽은 책이지만 도저히 어떻게 서평을 구성해야 할지, 어떤 내용을 다루어야 할지 난감할 때도 있다. 그럴 땐 다른 사람이 이미 써 놓은 서평을 찾아보면 도움이 된다. 표절이 아닌 참고는 그야말로 유용하다. 아, 이 사람은 이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구나, 그런데 나는 좀 다른데? 이런 서평도 꽤 재밌구나, 하지만 난 좀 다른 걸 쓸 수 있겠다 등등 또 다른 나의 아이디어를 도출하는데 좋은 자극제가 되어 줄 것이다.


8. 서평의 형식에 구애받지 말자.

1번부터 7번까지의 내용은 서평 쓰기를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며, 충분조건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서평의 재료로 제안한 것들에 불과하다. 서평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생각만을 서술할 수도 있고 간명한 요약만으로 서평을 마칠 수도 있다. 한 줄 평으로 끝나는 서평이 오히려 강렬할 때도 있지만 책에 대한 온갖 정보와 느낌이 뒤죽박죽 섞여 다소 장황하게 구성된 서평도 때로는 매력적이다. 문장력이 받쳐주기만 한다면 난해한 서평은 오히려 독자의 지적 말초를 건드리는 파격을 선사할 수도 있다.


9. 서평의 목적과 테마를 설정하자.

서평은 독후감이 아니라는 점에서 어떤 목적을 지향한다. 읽고 난 이후의 감상만을 나열한 것은 웬만한 문장의 대가, 뛰어난 어휘력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단조로운 글이 되기 딱 좋다. 독후감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서평의 의무와 부담을 인정하면서 나의 서평이 가진 목적과 테마를 뚜렷하게 설정해 본다. 이는 견고한 서평을 만드는 보이지 않는 뼈대가 된다. 미래의 독자에게 ‘흥미’를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소박하게 책의 핵심을 전달하는 것으로 담백하게 마무리할 것인지, 내 생각과 사상, 관점과 시각을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재료로 활용할 것인지를 설정하고 서평을 쓰면 서평의 색깔이 드러난다.


10. 두려워하지 말자. 아니, 두려워도 써보자.

모든 종류의 글이 마찬가지겠지만 서평 역시 쓰기 전에는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두려움이 앞선다. 글쓰기의 두려움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너무 잘 쓰려는 부담감 때문일까, 자신의 문장력에 대한 불신 때문일까, 글쓰기 자체의 유용성에 대한 뿌리 깊은 회의감 때문인지. 어쩌면 글쓰기는 당황스러움 그 자체다. 애초에 두려움을 동력으로 삼고 있는, 일견 부조리한 - 그래서 오히려 인간적일 수 있는 - 행동양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확실히 쓰고 나면 개운하고 뿌듯한 정서를 가져다준다는 사실만은 안다. 두려워하지 말자. 아니, 두려워도 써보자.


300일 만의 절필(?)을 끝내고 다시 쓰는 첫 글로 ‘서평쓰기를 위한 10가지 요령’을 만들어보았다.


뭐랄까, 감회가 조금은 새롭다. “이제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다시 처음”(김현식의 노래, <다시 처음이라오> 중)이랄까.

by Mike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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