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스토리-47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정혜신 박사는 “휴식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기술이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정말 너무 지치고 힘들 때는 무작정 버티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1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라는 말도 있듯이 만약 더 나아가기를 바란다면 그저 견디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법은 없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잠시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멈춤은 결코 게으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이며, 도피가 아닌 용기입니다. 지친 몸과 마음에 에너지를 채워줄뿐더러 또한 감정이 휘몰아치거나 극에 달할 때 잠시 멈추는 행동은 회복의 출발점이 됩니다. BBC Future에서는 ‘잠시 멈춤의 심리학’이라는 주제로 짧게 멈추는 습관이 스트레스 지수를 20~30% 감소시킨다고 소개하였습니다.
잠깐 멈추는 것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하고 오래가게 하는 생존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 제가 피아노 연주회를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특정 몇 마디를 아무리 연습해도 완성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도돌이표를 해 보아도 마음에 들지 않고 너무나 못생긴 소리만 들려왔습니다. 매일 매일 연습한다고 해도 시간이 부족하게만 느껴졌고 심지어 연주회까지 포기하고 싶은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일단 그 몇 마디는 놓아두기로 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습니다. 사실은 그 부분을 제외하면서도 불안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다른 나머지 부분에 집중하다 며칠 후 다시 돌아와 시도했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그 부분이 잘 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잠깐 멈추는 동안 제 안에서 숙성되어 매끄럽게 다져진 기분이랄까요. 잠시 멈출 수 있었던 용기가 저의 약해진 마음을 오히려 지켜준 듯한 고마운 기억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공식 매체인 <하버드 가제트>에서도 ‘Stopping before reacting(반응 전에 멈추기)’를 언급하면서 멈춤이 충동적 반응 대신 의식적 선택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신경과학적 근거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우리 옛말에도 ‘참을 인 글자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고 했습니다. 순간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성급하게 내려버린 결정이 얼마나 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문구입니다. 격한 감정에 휘말려 어떤 일을 저지르기 전에 잠시라도 멈추고 쉬며 정비하는 리추얼을 가진다면 적어도 훗날 후회할 일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도 감정이 흔들릴 때 반드시 ‘10초 멈춤’을 실천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마음이 격해진다면 멈추고 마음 속으로 ‘잠깐, 멈춰! 이게 맞아?’ 하고 생각하고 잠시 숨을 깊게 쉬어보는 리추얼을 실천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