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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Jun 28. 2024

좋고 싫음이 확실한 고양이

살다 보면 도망이 답인 것도 있다.

양쪽 귀가 접힌 첫째 고양이 온이는 가만히 있어도 그 얼굴이며 몸이며 존재 자체가 너무나 매력적이다. (물론 둘째도 그렇지만... 둘째보다 더...)

 하지만 얌전한 고양이 온이의 매력을 알기 위해서는 아주 가만히 그 아이의 움직임을 관찰해야 하는데, 이를 테면 눈동자의 움직임이나 접힌 귀의 방향 같은 것 말이다.


 


 앙다문 입 양쪽으로 무언가에 삐진 듯 불룩한 양쪽 볼때기.

시옷 모양의 입과 야무진 두 손 그리고 그 손바닥에 박힌 검은색 젤리까지 처음 이 아이가 내게로 왔을 때는 정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콱 깨물어 주고 싶은 충동과 매일매일 마음속에서의 전쟁을 치렀다.


 그러다 한 2년쯤 되었을 때 온이는 온이만의 모습을 만들어 냈는데, 자세히 보면 온이의 한쪽 눈이 색이 다르게, 좀 더 진해 진 것을 알게 되었다. 혹여라도 잘못되었을까 싶어 찾은 병원에서는 약간의 오드아이처럼 변한 것일 뿐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후로 종종 온이를 보면 두 눈의 색이 다른 것이 너무나도 눈에 띄지만 그 마저도 너무나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온이는 꽤 고급진 자세로 쉰다. 흑미가 오고 나서 온이의 자세가 좀 더 고급지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아마도 털 색깔이나, 털 길이도 한 몫하는 것 같다.


 


 멋진 나의 고양이는 이렇게 포즈를 취해 주기만 하면 일상이 화보인데, 온이는 요즘 내가 휴대폰을 들기만 하면 도망 다니기 바쁘다. 마치 내가 사진을 찍으려는 것을 아는 것인지 스리슬쩍 피해 다니거나 아주 가까이 다가온다.

 사랑이 고픈 걸까. 여느 고양이들은 절대 싫어한다는 꽉 끌어안기를 시전해도 나에게서 멀어지지 않는다.

나도 온이를 사랑하는 만큼 꼭 끌어안고 기분이 내킬 때면 빙글빙글 돌며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다른 고양이들은 절대로 싫어하고 힘들어한다는 이 포즈들을 우리 온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으레 그러려니 하며 받아 줄 때면 좀 더 함께 있지 못해 미안하다는 마음도 나의 두 팔에 담기게 된다.



 온이는 생각보다 합사가 쉬운 고양이였는데, 자신의 주먹만 한 한 달도 안 된 흑미의 존재가 처음에는 신기했고, 호기심과 힘이 넘치는 흑미를 때로는 버거워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자신의 자리를 선뜻 내어 주었다. 흑미가 흥분을 할 때면 조용히 자신만의 자리로 숨어 나오지 않기도 했고, 흑미와 숨바꼭질도 곧잘 했으며, 마구 까부는 흑미를 한 손으로 제압하기까지 하는 멋진 고양이다. "조용한 카리스마"라는 말은 온이를 위해 존재하는 듯 우리 집의 장남역할을 톡톡하게 해 내는 모습을 보면 참 대견하기까지 하다.


 온이는 모든 일을 자신의 코와 몸으로 부딪쳐 보는 흑미와는 성향이 매우 다르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을 하고, 절대 위험에 가까이 가지 않는다. 물건을 쓰러뜨리거나, 높은 곳으로 오른다거나 하는 일이 없는 온이는 자신을 위한 시간을 기꺼이 쓰고, 남(흑미나 나)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벌써 5년을 산 온이의 인생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 찍기 싫다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온이

  요즘은 사진 찍기 싫어서 도망 다니는 게 일인 온이.

온이가 조용히 앉아있지 않으면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B컷 사진이 많지만 그래도 온이와 흑미의 투샷은 언제나 재미있고, 온이의 B컷 사진도 너무나 소중하다.


    



 살다 보면 인생에 처음인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음식도, 사람도, 환경도..

반복적인 것들도 많이 있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부 다 다르다.

그러다 보니 직접 경험해 보고 싶은 것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직접 경험해 봄으로 더 잘 다듬어지고 능숙해지는 것들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부딪쳐 보아야 할까?


 뒤 돌아보면 그렇지 않은 것도 많은 것 같다. 이를 테면 인간관계 같은 것 말이다.

누가 봐도 나랑은 절대 맞지 않는 사람과의 시간. 개그 코드나 매너, 말투 등이 그저 다름을 떠나 무례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그게 가족인 경우도 있다.

 다른 사람이 느끼기에는 친근함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나에게는 무례하다고 느껴지고 버겁게 느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나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다.

마치 흑미가 너무 흥분하여 열정이 넘칠 때면 스리슬쩍 없어지는 (텔레포드를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온이처럼 말이다.


 그 상황에서 도망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흘러가 있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몇 번만 도망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멀어져 있기도 하다.


 상황에 부딪쳐

"나는 당신이 불편해요"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런 말조차 꺼내기 힘든 상대에게서는 도망치는 것이 답이기도 하다.

나의 인생은 즐거운 것만 하기에도 매우 짧으니까.

그럴 때는 온이, 흑미와의 시간을 늘리는 것이 더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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