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한 살, 만으로 마흔. 나라에서 나이의 기준을 감사하게도 바꿔준 덕분에 마흔 살을 한 번 더 살고 있지만, 이제 40대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었다.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가기만 했고 진짜 인생을 살아본 것 같지도 않은데, 갑자기 인생의 반이 지나가 버린 기분이었다. 운이 좋아 중간에 별다른 일이 없어 80살까지 산다고 했을 때, 앞으로의 남은 절반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몇 개월째, 아니 어쩌면 사실 몇 년째 고민만 하며 괴로워하는 중이었다.
나의 인생에 대한 본격적 고민은 첫째를 낳은 34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부터 시작됐다. 20대 때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 결혼을 할 것인지 같은 실질적인 실천에 앞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부터 치열한 고민을 했어야 했다. 이제까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과 질문이 빠져 있었다. 내 지적, 정신적 능력의 총합으로는 어떤 삶이 가능하고, 또 그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계속 외면받고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걸 계속 좇고 있었고, 나 역시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실현 불가능한 환상에 계속 매달려 달리기만 하면서.
허무하게도 고민을 시작한 34살부터 41살인 지금까지도 뾰족한 답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상황을 바꿔보고 싶은 마음에 자격증을 따기도 하고, 공부를 다시 하려고 시험에 도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현재에서 용기를 내고 나오기가 힘들었다. 이성적으로는 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러다 불현듯, 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불만족과 불안으로 아이 둘을 재워두고 내키지 않는 이력서 업데이트를 하다가 뜬금없는 결심이 섰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결심한 순간, 갑자기 워드를 열고 마구 글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각 잡고 무엇이라도 적으려고 했을 때는 한 줄도 써지지 않았는데. 내려놓고 나니 머릿속 깊은 곳에 구겨져 있던 글자들이 워드 한 페이지를 금방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