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온 배경
답답했다.
17년째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는 더이상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꾸역꾸역 아이 둘을 학원과 타인 손에 맡기면서, 집에 와서는 쉬지도 못하고 애들과 함께 하지도 못하는 나날들이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한국 공립 초등학교는 생각보다 훌륭했다. 저학년은 예상보다 스토리 중심의 수업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의외였다. 그렇지만 코로나 이후, 그리고 여러 사건 이후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외부 활동만 시켰다. 소풍도 가지 않았고, 아이들을 운동장 밖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하지도 않았다. 단 한 명의 부모 클레임도 받아서는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모든 이슈는 희한하게 정치적 상황이 됐다.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아이들은 교실 안에 갇혔다.
맞벌이 부부에게는 최고의 선물인 방과후 교실과 무료 돌봄 교실은 너무 감사했지만, 아이들은 학교와 몇 개의 학원 안에서 뱅글뱅글 돌기만 했다. 늦은 하교 후, 혹은 늦은 학원 셔틀에서 내린 우리집 아이들은 하원 이모님에게 맡겨졌고, 내가 돌아오면 숙제를 봐주고 얼른 잘 수 있게끔 하루 일정을 만들어 놓기에 급급했다. 그럼에도 집에 오면 저녁 먹는 나를 계속 앉아있지 못하게 만드는 아이들에게 화가 났고, 내 인생에 화가 났으며 솔직히 감당하지도 못할 가정을 꾸린 것이 아닌지 후회가 드는 날도 많아졌다. 왜 나는 체력도 인내력도 없는데 아이를 둘이나 낳았을까? 회사가 먼 남편은 일찍 오면 밤 9시, 일이 좀 많으면 밤 11시에 왔다. 그는 회사 셔틀 운영 시간에 맞춰서 움직였다.
우리 가족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지? 부모는 회사-집-회사-집, 아이들은 교실-돌봄교실-학원-집을 반복하면서, 그리고 아이들은 안 그래도 좁은 나라인 (물론 매우 유능하고 훌륭하고 부유하지만) 한국 안에서, 좁은 학교 교실에 머물면서??? 영어는 이미 내 세대에도 많은 기회를 잡기 위한 필수 요소가 됐는데, 한국인끼리만 바라 보며 좁은 곳에서 영어 공부를, 이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여서...?
나도 아이들도 조금 더 다르게 살 순 없을까? 그렇게 나는 여러 유학원이나 상담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석사를 동반한 캐나다 무료 공립학교 유학, 뉴질랜드 유학, 그리고 말레이시아까지. 큰 아이가 이제 막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으니 지금이 마지노선 같았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더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용기가 나지는 않았다. 선택하려면 심지어 남편이 기러기 아빠를 해야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12월에 회사에서 15년 차 이상부터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공고가 났다.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고민의 시간은 1주일이었지만, 나는 보자마자 바로 결정을 내렸다. 회사가 감사하게도 용기를 주네. 그렇게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두어 달간 바쁘게 준비해서 3월 말에 말레이시아에 왔으며, 큰 아이는 4월에 한 국제학교에 입학했다.
우리의 말레이시아 생활, (우리 집은 전혀 해당 사항이 없을 것이라고 여기며 살았던) 국제학교 생활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렇지만 오랜 의문 속에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