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코비치, 나달, 페더러

BIG TITLE KINGS

by 김명준

2019년 7월 14일, 프랑스는 혁명 기념일로 나라 전체가 들썩였고, 영국은 윔블던의 감동으로 가득 찼다.


프랑스에 있으면 좋은 점 중 하나는 유럽에서 벌어지는 스포츠를 시차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7월 14일 저녁은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

2019년 윔블던 우승자 조코비치 @wimbledon

전 세계 테니스 팬들은 7월 14일, 영국 런던에 집중했고, 윔블던은 또 한 번 역사를 썼다.


윔블던 최장 시간 결승전 (4시간 58분), 윔블던 역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5세트 타이 브레이크Tie Break. 올해 처음으로 윔블던은 5세트 12-12에서 타이 브레이크를 적용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그런데 규정을 만든 첫 해에 이를 발효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것도 결승전에서 말이다.


5세트 타이 브레이크 규정은 경기가 지나치게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생겼다. 작년까지 윔블던은 5세트에서 타이 브레이크를 적용하지 않는 대회였다. 그래서 2010년 윔블던 1라운드에서는 2박 3일 동안 진행된 경기가 있기도 했다. (존 이스너John Isner와 니콜라 마위Nicolas Mahut의 2010년 윔블던 1라운드. 총 경기 시간은 11시간 5분. 5세트 게임 스코어 70-68.) 그러나 5세트 타이 브레이크 규정이 처음으로 시행된 대회에서 페더러와 조코비치는 역설적이게도 윔블던 최장 시간 결승전이라는 역사를 쓴 것이다. 못 말리는 사람들이다.


결승전의 승자는 조코비치였지만, 누구도 페더러가 패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둘 모두가 승자였고, 둘 모두는 위대했다. 거기에 또 한 사람이 빠질 수 없다. 바로 라파엘 나달이다.


Big 3 together.jpg 양복 입은 조코비치, 나달, 페더러 @sportskeeda.com

로드 레이버Rod Laver, 비에른 보리Björn Borg, 지미 코너스Jimmy Connors, 피트 샘프러스Pete Sampras 등 과거 테니스 역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선수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위 사진의 양복 입은 세 명의 선수들이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들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이 세 선수를 동시대에 볼 수 있다는 것은 테니스 팬들에게 큰 행운이자 즐거움이다. 그러나 세 선수에게는 가혹하기도 할 것이다. 스포츠에서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만약 서로가 다른 시대에 있었다면 더 많은 타이틀과 승리를 따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Big Title Kings.png ATP TOUR BIG TITLE KINGS @atptour.com

현대 테니스에서 '빅 타이틀Big Title'이라고 불리는 대회에는 세 종류가 있다. 먼저, 그랜드 슬램Grand Slam이다. 호주 오픈, 롤랑 가로스, 윔블던, US 오픈 이렇게 네 대회가 테니스 그랜드 슬램을 이루고 있다. 테니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ATP 파이널스ATP Finals가 있다. 현재는 메인 스폰서인 Nitto社에 이름을 붙여 Nitto ATP Finals라 불리는 이 대회는 '왕중왕전'의 성격을 띠는 대회이다. 매년 연말 세계 랭킹 8위까지의 선수들만이 참가하여 라운드 로빈round-robin(각 선수들이 다른 선수들과 모두 최소 한 번씩 경기를 치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대회다. 탑 랭커들의 혈투를 볼 수 있는 대회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ATP 마스터즈ATP Masters 1000가 있다. 'ATP 월드 투어 마스터즈'로도 불리는 이 대회는 총 9개의 대회가 1년 동안 여러 도시들을 거치며 개최된다. 대표적으로는 인디언 웰즈Indian Wells, 몬테 카를로Monte-Carlo, 상하이Shanghai 마스터즈가 있다.


페더러, 조코비치, 나달은 '빅 타이틀 킹'이라 불린다. 그들은 프로 데뷔 이후 줄곧 빅 타이틀을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랜드 슬램을 살펴보자. 페더러가 20번의 우승을 차지하여 역대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역대 2위, 3위는 바로 나달(18번)과 조코비치(16번)다. 페더러윔블던에서 총 8번의 우승을 차지하여 윔블던 최다 우승자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페더러가 보유한 역대 1위의 기록은 즐비하다. (대표적으로 페더러는 310주 동안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하여 이 역시 역대 1위이다.) 조코비치와 나달도 그랜드 슬램에서 역대 최다 우승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조코비치호주 오픈에서만 7번의 우승을 차지하여 호주 오픈 최다 우승자이며, 나달불멸의 기록처럼 보이는 12번의 롤랑 가로스 우승을 차지하여 프랑스 오픈 최다 우승자이다. 그랜드 슬램 우승은 이 세 선수가 돌아가며 우승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 ATP파이널스를 보자. 여기서 세 선수의 차이가 발생한다. 페더러는 이 대회에서 총 6번의 우승을 차지하여 이 부분에서도 역시 역대 최다 우승자이다. 조코비치는 이반 렌들Ivan Lendl, 피트 샘프라스와 더불어 5번의 우승을 차지하여 역대 공동 2위다. 그러나 나달은 이 대회에서 우승이 전무하다. 나달 커리어의 유일한 오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ATP 마스터즈에서는 또 이야기가 다르다. 역대 1, 2, 3위는 모두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나달이 최고다. 34번의 마스터즈 우승을 차지한 나달이 역대 1위이며, 조코비치가 33번의 우승으로 뒤를 바짝 쫓고 있다. 3위인 페더러도 28번의 우승을 차지했는데, 4위인 앤드리 애거시Andre Agassi (17번의 우스)와 그들은 꽤나 큰 차이가 있다. 가히 독보적인 삼총사다. 마스터즈와 관련된 주목할 만한 기록은 나달이 11번의 몬테 카를로 마스터즈 우승을 차지한 것과 조코비치가 역사상 최초로 '커리어 골든 마스터즈Career Golden Masters'라 불리는 모든 마스터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을 들 수 있다.


빅 타이틀에 관해 정리하자면 총 54번의 우승을 차지한 페더러와 조코비치가 공동 1위, 총 52번의 우승을 차지한 나달이 그 뒤를 잇는다. 개인적으로 셋 중 가장 어린 조코비치가 어쩌면 '빅 타이틀 킹' 분야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를 잡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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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선수의 상대 전적 @atptour.com

마지막으로 알아볼 데이터는 '헤드 투 헤드Head to Head', 세 선수의 상대 전적이다. 이 데이터가 등장할 때마다 가장 불리한 선수는 페더러다. 조코비치와 나달 모두에게 뒤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유리한 선수는 또 조코비치다. 근소한 차이지만, 두 선수에게 모두 앞선다. 그러나 기록은 기록일 뿐, 이 선수들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커리어 동안 서로를 최소 40번 이상 코트에서 만났다. 특정 선수와 40번 이상 만나 승부한다는 것, 테니스 코트에선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그들은 높은 자리에서 줄곧 서로를 만났다는 이야기다. 앞서 서로의 존재가 가혹하기도 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세 선수가 동시대에 있다는 것은 서로가 존재하기에 가능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조코비치, 나달, 페더러)는 서로를 성장시키며 발전시키고, 여전히 이 무대에 서게 만듭니다. 이 두 사람(페더러, 나달)은 제가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들이 테니스 역사에서 이룬 것들은 제게 동기 부여가 되고, 그들이 성취한 것을 이룰 수 있도록 영감을 줍니다. 그리고 그 이상까지도요. We're making each other grow and evolve and still be in this game. Those two guys [are] probably one of the biggest reasons I still compete at this level. The fact that they made history of this sport motivates me as well, inspires me to try to do what they have done, what they've achieved, and even more,”

-노박 조코비치


"테니스에는 무승부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무승부가 존재한다면, 오늘 밤 이 트로피를 나달,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There are no draws in tennis. But if there were I would have been happy to share this trophy with you tonight, Rafa."

-로저 페더러 (2017 호주 오픈 결승전 후 인터뷰에서)



어쩌면 그들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의 존재가 지금의 자신들을 만들었다는 것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 그들은 서로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도 더욱 강해졌다. 서로를 향한 존경심은 그들을 더욱 위대한 선수로 성장시켰다.


테니스를 보면 볼수록 누가 더 위대한 선수인지 판별하기는 어려워지고 때론 무의미해 보인다. 그러나 하나 단언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조코비치, 나달, 페더러. 이 세 이름들은 테니스 역사에서 영원히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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