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생각보다 더 휴식이 좋았던지 그 혼란과 아쉬움이 빠른 속도로 잠잠해져 가기는 한다만 그렇다고 미련이 없는 건 아니다.
승진. 사실 지금까지도 승진을 하고 나서 휴직을 하는 게 맞지 않았나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마음 한편에는 계속 맴돈다. 이미 버스는 떠난 뒤라 어쩔 도리는 없지만 이제 다시 승진 대상이 되려면 적어도 내후년은 되어야 대상자에 오를 수 있을 텐데 이게 정말 최선이었을까?
이런 미련 맞은 생각이 머리 구석으로 밀려나며 저항하고 있을 즈음에 회사 선배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일점사 모임 이번엔 8월 8일이다! 기억해라?"
회사에서 각기 부서는 다르지만 정말 친한 선후배 여럿이 모여 매월 1일에 모여 소회를 풀자고 만든 모임 일점사. 공교롭게도 남자 넷이서 첫 모임을 시작한 데다 모임 장소가 고기 1.4킬로가 나오는 '일점사'라는 고깃집에서 시작되어서 일점사 모임이라고 부른다. 마음 든든한 지독한 말장난.
이름의 기원답게 매월 1일에 모임을 갖기로 했지만 주말이 겹치거나 일정이 생기면 유동적으로 하던 차에 이번달에는 내 휴직이 겹쳐 확 미뤄진 8일에서야 갖게 되었다.
초대손님이 있어 이번엔 일점사 말고 다른 곳에서,
술자리가 무르익어 슬리퍼 질질 끌고 나온 나를 시기질투 하던 형님들은 이미 말하지 않아도 내 고민을 아는 눈치. 검붉게 타오르는 항정살의 고소함을 뒤로하고 한심하다는 말투로 무심하게 뱉어내는 위로
"깊게 생각하지 마, 평균의 법칙이 있다 이거야. 전력질주 하면서 열심히 살다가 너처럼 잠깐 쉬어가는 거나 적당히 하면서 이삼십 년 길게 가는 거나 매한가지야. 아니 오히려 조직에서는 후자가 더 꾸준해 보여서 좋게 보일걸? 그러니 좀 내려놔 인마!"
내가 일하는 모습을 늘 멀리서 지켜보던 형님들이라 그런가 늘 잔소리하듯 늘어놓던 내려놓으라는 이야기. 언젠가는 지금처럼 내가 주저앉을 거 같아 항상 위태로웠다는 송곳 같은 술안주.
술자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초대손님으로 뒤늦게 합류했던 다른 본부 부장님의 걱정 어린 전화통화.
"○○씨 괜찮아? 아무 걱정 말고 푹 쉬고 꼭 돌아와요. 나랑도 일해야지"
순수한 딸아이의 문자, 핸드폰 사주길 잘했다!!
그리고 태권도장에 다녀온 뒤, 휴직 이후로는 꼬옥 안아주고 했던 아빠가 오늘은 없어 외로웠다는 딸아이의 문자. 술자리가길어질까 걱정하는 와이프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의심을 잠깐 하긴 했지만 와이프는 한사코 아니란다.
이제 와서 미련을 가져본들 어쩌겠나.
개인적으로 인간은 추억을 파먹고 사는 생물이라 생각한다. 힘든 일이 닥쳐도 지난 즐거운 기억들을 양분 삼아 견뎌내는... 적어도 지금의 휴식을 이후 몇 년이고 버틸 수 있는 양분으로 삼아야겠다는 다짐. 그리고 딸아이가 평생 자라나면서 되새길 수 있는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많이 만들어 주겠노라는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