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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Sep 12. 2024

여보 철길 갈빗살이라고 생각 나?

나 그날 소화제 먹었잖아

오늘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양가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사러 마트에 갔다가, 그만 소갈빗살 벌크팩에서 눈이 차마 떨어지질 않았다.

벌크팩, 이름만 들어도 얼마나 합리적인가. 제대로 정형된 소고기를 산다면 비싸지만 벌크팩은 킬로단위로 묶어서 대충 파는 것이기 때문에 값이 무척이나 싸다! 같은 소릴 와이프한테 했다가 일단 한대 얻어맞았다.


하지만 와이프도 육식파인 고로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휴직으로 수입이 줄어도 더 알뜰하게 아끼려는 생각보다는 조금 더 저렴하게 고기를 어떻게든 먹어야 한다는 두 부부의 만행.


"여보 철길 갈빗살이라고 생각 나?"


어찌 잊겠는가, 와이프와 데이트할 적에 종종 갔던 철길 갈빗살. 우린 회사 커플이라 회사에는 비밀로 하고 연애를 하곤 했었는데, 분명 회사는 여의도고 철길 갈빗살은 홍대라서 안심하고 데이트를 하곤 했는데 거기서 회사 본부장을 만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당황스러운 기억.


"나 그날 본부장이랑 건배하고 소화제 먹었잖아"


센스 있는 본부장님은 다 먹고 나서 '비밀로 해줄게' 씽긋하고 윙크도 했다. 물론 바로 다음날 전사에 소문이 퍼진 건 소소한 배신감으로 덮어두자.


털보 아저씨가 다듬는 소갈빗살

집에 와서 그 소화 안 됐던 기억을 재현해 보기로 합의하고 우린 벌크팩을 손에 쥐고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털보 아저씨(나)가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고기를 손질했다.


누군가는 음식을 하면서 먹는 사람을 생각하면 즐겁다고 하는데, 나는 내가 먹는걸 상상해야 즐겁다. 아니 내 입맛에 먼저 맞아야지!


닭강정 같지만 양념 갈빗살이다


분명 인터넷에 올라온 레시피대로 한 거 같은데 왜 이런 비주얼인지는 모르겠다.

철길 갈빗살을 따라 해놓고 철길은 커녕 기차 역사에도 발도 붙이지 못할 그런 비주얼. 하지만 딸아이와 함께 우리 셋은 맛있게 먹었다. 추억이 잔뜩 일그러진 맛이었지만 맛이 없는 건 아니었기에...

다음 갈빗살은 캠핑장에서 숯불로 구워먹어야겠다. 아무래도 가장 큰 차이는 불이었던거 같다는 미련이라도 남겨놔야 하겠다.


소소한 추억을 쌓아 올리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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