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숲을 헤메는 그 시절보단 당연히 가벼운 머리
올 추석 처가 방문은 아이도 힘들어하고 와이프도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라고 새벽에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새벽엔 차도 막힐 일이 없으니까 운전도 더 수월하니까. 그렇게 출발을 6:30으로 결정했고 떠나는 전날 밤, 우리는 모든 짐을 싸놓고 잠을 청했다.
새벽 6시에 일어나려고 알람을 설정하다, 열심히 빌딩숲을 헤매던 그때의 흔적이 문득 내 시선을 흔들었다. 5분 간격으로 설정된 출근 알림
잦은 야근에 서둘러 집에 들어오면 늘 10~11시 언저리였던 하루하루, 졸린 눈울 부비는 딸아이와 몇 마디 나누나 싶으면 어느새인가 아빠 품에 얼굴을 묻고 잠들기 일쑤였던 부녀의 짧은 상봉. 그렇게 간단한 샤워와 뉴스라도 보고 잠시 휴식을 취하노라면 어느새인가 12~1시가 되어 아쉬운 잠을 청해야 했던 나날들.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때는 늘 피곤이 가득했던 일상이었지만 지금은... 역시(?) 피곤이 가득하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모양인지 이제는 자도 자도 피곤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때와 지금의 잠에서 깨어날 때 차이가 있다면 지끈지끈한 머리를 짓누르는 둔한 통증이 사라졌다는 사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결국 내 공황장애/우울증은 회사가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뒤늦은 상념을 머리에 잠시 담아본다. 그러니 지금은 계속해서 좋아지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 그리고 내년에는 다시 삭막한 빌딩 숲으로 가방을 둘레 메고 돌아가야 할 나이지만, 복직 걱정은 그즈음에 하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최대한 나를 회복해서 복직 이후부터 별일이 없다면 은퇴할 때까지 또다시 자신을 소모하며 버텨낼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또다시 약은 늘어날지도 모르고, 또다시 지하철 역사에 앉아 과호흡으로 힘겨워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나는 아버지고 가장인 것을.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따듯하게 달궈진 새벽 공기를 헤치고, 장모님의 따님을 장모님께 모셔다 드리면서 소소하게 다짐하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