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침묵의 친구 >
영화를 보러 갈 때 나는 사전 정보를 찾아보지 않고 무작정 간다.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감성과 제목만으로 영화를 볼지 말지 결정하는데, 이 영화 [침묵의 친구]는 참 이상야릇했다.
1832년에 심어진 은행나무 한 그루를 공통분모로 놓고
20세기 초반, 20세기 중반, 21세기 코로나 시대,
이렇게 세 가지의 각기 다른 시대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이 무얼 말하고 싶어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조금은 답답했다.
1996년에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판타지 영화 [은행나무 침대]나 히가시노 게이코의 소설 [녹나무 파수꾼]이 떠오르기도 했다.
압도적인 영상미와 양조위의 지적이고 섬세한 눈빛 연기가 아니었다면 과연 끝까지 볼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영화의 스토리를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다 보고 나니 비로소 조용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회화나 조각을 보러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갔을 때
작가의 의도를 알지 못해 답답한 적이 있던가?
그냥 있는 그대로 보고 내 나름대로 느끼는 게 예술인데
영화를 회화나 조각과 꼭 다르게 볼 이유가 있겠나 싶다.
200여 년을 한 곳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온 은행나무가
인간의 역사를 모두 품고 있다는 스토리를 굳이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은행나무도 숨을 쉬고, 생각을 하며 다른 생명체와 교감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뇌과학자의 실험을 통해 밝혀내지 않더라도 그곳을 스쳐 지나간 사람들에게 때론 쉼터가 되고 때론 위로가 되면서 그저 묵묵히 침묵의 친구로 존재하는 생명체임을 인정하는 것…
그것으로 좋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놀라운 것은 이 영화의 배경이 독일이라는 것과 괴테가 그린 식물도감이 나온다는 거다.
포스터만 보고 나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 분위기를 떠올렸기에 유럽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긴 퍼펙트 데이즈도 배경과 배우는 일본이지만 감독은 독일인이었네.
영화를 보기 바로 전날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책을 읽으며,
괴테가 색채론을 썼다는 내용을 읽고 진짜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고 할만하네~
대체 못하는 게 뭐야… 천재네 천재! 했는데
영화 속 대학 도서관에서 각기 다른 시대의 두 학생이 괴테의 식물도감을 살펴보는 장면이 나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 우연 무엇…? ㅎㅎ
내친김에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에서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첨부해 본다.
"전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인간이 모든 것을 말하기란 불가능하니까요.
그래도 괴테는 정말로 모든 것을 말하려고 했구나, 그런 생각은 듭니다. 그게 저에게 힘이 되었어요."(p86. 쓰즈키의 생각)
"괴테는 개인의 한계를 꽤나 의식하고 있었어. 직업의 전문성도 강하게 주장했고, 예술은 제약 속에서 태어난다고도 말했지.
하지만 자네가 말한 대로 괴테는 무한함을 추구하는 자신의 본성을 바꿀 수도 없었어.
그러니 거기에는 스스로 경계하는 의미도 있었을 거야.
'다양함과 복잡함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언제나 혼란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라는 말도 했는데,
그 자신이 바로 그랬겠지."(p89 도이치의 생각)
어쨌거나 영화 [침묵의 친구]는 다시 보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영상미와 명상용으로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