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의 출처를 찾아서…

<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by 밀밭여우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Goethe
사랑은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롭게 섞는 것이다. - 괴테



이 소설의 발단은 이 한 줄의 명언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의 괴테 전문 학자, 히로바 도이치 교수가

홍차 티백 꼬리표에 적힌 명언의 진위 여부와 그 출처를 찾아 헤매는 여정이다.

주인공 이름부터 독일을 뜻하는 영어 지명과 흡사해 읽는 깨알 재미가 있는데,

맨 뒤에 나오는 옮긴이의 말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볼 수 있다.


진짜 이 소설을 25살 청년이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자가 쏟아내는 방대한 인문학적 자료와 그 깊이에 놀랍다.

책 속에 언급된 신화 속 인물들과 고전 문학의 대가들,

명언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학자들, 그들의 작품들 등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명언과 관련된 백과사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대체 이 청년은 그동안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길래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참고 자료만 찾아보려 해도 도서관 전부를 뒤져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독서 초반에는 주석이 많아서 매끄럽게 읽히지 않아 좀 힘들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그것도 나름 익숙해졌고,

일본어 특유의 웃음 코드를 장착해 너무 진지하다거나 딱딱하지 않아 재미있게 완주할 수 있었다.


히로바 도이치 교수가 저 명언의 출처를 찾으려는 집념에 빠져 있을 때

그는 꿈속에서 괴테 선생을 만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얼마나 골똘히 생각했으면 꿈까지 꿀까.


"세상은 언제나 똑같군. 여러 가지 상태가 항상 반복되지. 어느 민족이건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살고, 사랑하고, 느끼고 있어.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고, 우리는 기껏해야 그것을 다른 형식이나 표현으로 되풀이할 뿐이야." (p116 )


"실생활에서 따오든 책에서 따오든 그런 건 아무 상관없어.

제대로 사용했는지 아닌지, 그것만이 중요하지!

나(괴테)의 메피스토펠레스도 셰익스피어의 노래를 부른다만, 왜 그게 안 된다는 건가?

셰익스피어의 노래가 그 장면에 딱 들어맞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속 시원히 말해주는데 어째서 내가 고생해서 나의 글을 새로 써야 할까?

예술에는 전체적으로 혈통이라는 게 있어.

옛 독일 청년들은 대화 마디마디에 성서를 인용할 수 있도록 교육받았는데,

그건 결국 감정이나 사건이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명시하지.

우리의 사상을 표현하는 데 옛사람들이 엄선한 품위 있는 언어를 사용할 때,

그들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우리보다 더 정교하게 열어서 보여준다는 점을 인정하는 게야.

거장들은 항상 옛사람의 장점을 이용하는데, 그 점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든다네." (p117~118)


그러니 명언의 출처를 찾고자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책 제목으로 쓰인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표현도

독일 바이마르 지역의 오래된 언어적 관습의 하나로 우리가 공자왈, 맹자왈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꿈속의 괴테가 출처 불문의 명언 사용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면,

도이치 교수의 딸 노리카는 명언 사용의 부정적 의미로 이런 말을 했다.


"인문주의 시대는 명언 기록장의 시대이기도 해서 명언을 말하면 그 말의 힘을 습득할 수 있다고 믿었대.

그 믿음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잖아.

그래서 사람들은 명언을 기념품 머그컵에 새기고, 문구류에 인쇄하고, 벽에다 낙서로 쓰고,

별거 아닌 대화 속에 끼워 넣으면 교양인인 척할 수도 있고...

여기까지는 교양 있는 개인이 명언집을 모아서 소개하는 계몽주의 분위기가 짙게 풍겼어.


이윽고 매스 미디어의 시대가 오자 정치가, 운동선수, 종교 지도자, 팝 가수가 명언을 인용하기 시작해.

그들은 그야말로 제멋대로 명언을 사용했어.

그게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지.

'거짓말도 자주 하면 진실이 된다'라고 레닌이 절묘하게 표현했듯이 인용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말은 진실이 돼.

그리고 지금 SNS에서 명언은 항상 팝적으로 생산, 복제되고 있어..." (p200)


그러고 보니 같은 도구라도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용도가 달라진다.

흔한 예로 칼을 요리사가 드느냐, 무사가 드느냐, 강도가 드느냐... 와 같은 경우처럼

명언을 누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존재하는 언어라도 자신의 언어로 말할 때 비로소 가치 있는 의미를 가진다는 얘기다.


"도이치, 말을 찾는 건 학자의 본분이지. 하지만 말이란 끝까지 불편한 도구야. (중략)

네 노력은 사랑 속에 있어야 하고, 네 생활은 실천 속에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네.(p154)


도이치의 장인이자 스승인 마나부가 한 이 말로,

이 책의 주제는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사랑과 실천!




도 서 :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저 자 : 스즈키 유이

출 판 : 리프

발 행 : 2025.11.18


이 책의 저자 '스즈키 유이'는 2001년 생으로,

어린 시절 후쿠시마 동일본 대지진을 직접 경험하며 언어와 진실에 대한 깊은 관심을 품게 되어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소설을 쓴 것이 문학의 출발점이었다.

2024년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책이 필요한가]로 하야시 후미코 문학상 가작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두 번째 작품이자 첫 장편 소설로,

실제 저자의 부모님 결혼기념일 식사 중 홍차 티백에 적힌 명언에서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집필했으며

제172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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