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도 >
모던 걸, 모던 보이, 모던 연극.
1936년에 만들어진 원작 희곡 [홍도야 우지마라]가 90년이 지난 2026년에 모던 연극 [홍도]로 재탄생했다.
노래로도 불렸고 영화로도 나왔지만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파극인데 내가 내용을 대부분 알고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은 간략하다.
가난 때문에 오빠가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하고 슈샤인 보이를 하며 신세 한탄을 하자 홍도는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된다.
기생집 마담의 외아들 광수와 사랑에 빠져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지만 남편이 유학 간 사이에 시누이와 시어머니, 그리고 광수를
짝사랑하는 모던 걸 혜숙으로 인해 누명을 쓰고 집에서 쫓겨난다.
유학에서 돌아 온 광수는 주변인들이 홍도를 모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아내 홍도를 원망하며 내친다.
이 모든 사단은 모던 걸 혜숙이 때문이라는 생각에 홍도는 그녀를 살해한다.
자신을 희생해 뒷바라지했던 오빠는 경찰이 되었고 동생을 살인자로 체포하게 되는 비극의 남매가 된다.
내용만으로만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와 생활상에 공감되지 않아 사실 별로 재미없는 콘텐츠다.
그런데 무대 미술이 요즘 말로 미(美)쳤다!
홍도의 순결한 마음을 상징하듯 무대 전체가 온통 흰색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연극 전반부엔 심플한 디자인의 붉은 등 하나가 천장에 달랑 걸려 있어 세련된 미니멀리즘을 구현했다.
후반부에는 사람 인(人)자가 무대 전체를 감싸는 크기로 천장에서 내려와 지붕을 이루며 출연진 모두를 아우른다. 돈보다 사람이 먼저임을 말해주듯이.
극이 시작도 되기 전부터 나는 무대를 보고 환호했다.
대박 멋지다!!
극공작소 마방진의 고선웅 연출가 특유의 스타일로 근대 문학의 정수인 시대상에 현대적 비트를 가미했다.
잠시도 한 눈 팔 새 없이 진행되는 속도감으로,
관객들은 웃었다가 울었다가 롤러코스터를 타듯 극의 몰입감 역시 좋았다.
홍도가 잡혀가는 장면에선 모든 출연진들이 붉은 꽃가루를 뿌리며 배웅하는데
흰색 무대 위에 뿌려진 붉은 꽃잎의 강렬함은 홍도의 운명만큼이나 처절해 보였다.
극이 끝나고 모두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과연 K-컬처가 주목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