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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혁민 Jul 18. 2017

[옥자] 꼭 쓸모 있을 필요는 없어

믿고 보는 봉 감독

영화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난 봉준호 감독의 팬이 되었다. 그 후 ‘괴물’, ‘마더’, ‘설국열차’ 등 봉준호라는 이름이 걸리면 꼭 챙겨보려고 했다. 개인적인 소감으로 그의 영화는 그럴듯한 소재를 돈으로 포장한 영화는 아니라고 느껴왔다. 그래서 ‘감독 봉준호’라는 말은 나에겐 ‘꼭 봐야 할 영화’와도 같다. 심지어 이번에 옥자는 봉 감독 때문에 ‘넷플릭스에 가입을 해야 하나?’하는 생각도 했다.


참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만들어온 감독인데 이번에는 '소녀감성'이 물씬 풍기는 제목에 동물과 사람의 우정을 다뤘다. 돼지인지 하마인지 헷갈리는 거대한 존재에 이름은 '옥자'라니... 어쨌든 넷플릭스도 아니고 결론은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위해 극장(대구 만경관)에서 봤다.


기대

옥자의 예고편을 보면서 예상하고 기대했던 것들이 있다. 동물이 주인공인 영화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 또는 ‘자연의 어느 종이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말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영화 또한 미자와 옥자 사이 평등한 위치에서 맺어진 관계와 옥자를 그저 사업의 수익을 위해 인류의 식량을 위해 이용되는 상품으로 바라보는 ‘미란도&슈퍼 돼지’ 관계의 대립이 주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진행되면서 결말은 ‘미자&옥자’의 관계가 갈등을 이겨내고 ‘동물도 우리의 친구!’라는 주제를 던지면서 마무리될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그렇게 숭고한 대자연 생각하는 메시지를 던지지는 않았다. 마지막에 도살장에서 ‘옥자’를 구출하고 나오는 길에 우리에 갇힌 수많은 ‘슈퍼 돼지’들은 그냥 지나치기 때문이다. 그들을 구하지는 못하고 다만 그 돼지들이 전기 울타리 사이로 감전되면서도 내보낸 새끼를 몰래 데리고 나올 뿐이다. 옥자만 쏙 빼내 온 미자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미자에겐 옥자가 중요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자연과 생태라는 거대한 주제보다는 둘의 관계 또는 각자의 소중함을 중심으로 바라봤다.


소중한 것들의 대립

영화에서는 각자 소중히 여기는 것 또는 가치가 대립한다. 미자의 소중한 친구이자 식구인 ‘옥자’. 미란도 회사의 거대한 ‘슈퍼 돼지 프로젝트’. ALF(동물 해방 전선 Animal Liberation Front)의 신념. 그리고 그 조직원들의 피, 땀, 노력이 들어간 놓칠 수 없는 작전. 이런 것들이 서로 물고 물리면서 영화를 이끌어간다.


할아버지는 금 돼지 하나에 옥자를 회사에 팔았다(돌려줬다 원래는 미란도 회사 프로젝트의 일부니까). 그러나 미자에게 옥자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였고 되찾으러 떠난다. 한편 미란도에게 옥자는 자기가 추구하는 더 큰 '부'를 가져다줄 것이었다. 미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미란도에게는 옥자란 금돼지를 받고 다시 팔아넘길 수 있는 ‘One of Them’이었다. 그에겐 거래와 수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한 마리 따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제이가 '돈이 남아돌면서 왜 그러냐?!'라고 외치지 않는가.


ALF의 큰 목표는 동물 학대를 방지하는 것이다. 그 목적 하나로 똘똘 뭉친 착하면서도 어리숙한 조직이다. 그들에겐 미란도 회사의 만행은 가만히 지켜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메시지가 주목받고 전달되려면 역시 옥자를 이용해서 확실한 물증을 얻어내야 했다. 그들의 신념에 따라 미자의 동의가 필수였는데, 그동안 노력을 쏟아 부운 작전에 대한 미련으로 케이는 ‘그냥 옥자랑 산으로 갈래요를 거짓으로 통역하고 만다. 결과로 미자와 미란도 둘 다 영향을 받게 됐다.



영화는 각자의 어떤 목적을 위해서 타인의 가치에 침범하는 미란도와 ALF 말고, 순수하게 자연 속에서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고 같이 어울리며 행복함을 누리던 ‘미자&옥자’에게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다들 각자의 가치는 지키게 되었다. 미란도는 굳이 옥자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슈퍼 돼지가 있어 사업에는 지장이 없고 옥자는 깨끗하게 거래하지 않았는가. ALF의 경우에도 자신들의 메시지와 미란도의 악행을 알리는 작전에 성공했다. 또 미자가 옥자를 되찾는 일에 도움을 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신념을 지키지 못한 불명예를 씻었다.


문제는 그 수두룩 빽빽하던 슈퍼 돼지들이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대중들이 많이 소비를 할지, ALF의 외침에 충격을 받아 불매운동을 할지는 모를 일이다. 인간을 위한 희생을 할 생명체를 만들었다는 것이 불편하긴 하다.


그러나 영화 ‘옥자’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 고기 그만 묵고 채식하자!’가 아니다. 미자 또한 닭백숙을 먹는다. 만약 그렇다면 그 돼지들을 다 구하거나, 꺼내오려는 움직임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느꼈던 주제는 ‘순수한 관계’다. 슈퍼 돼지와 사람의 우정을 보면서 대상이 아니라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자와 옥자는 서로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을 속삭인다. 옥자가 절벽에 떨어져서 아플 때, 미자가 아플 때 둘은 귓속말을 하면서 서로 위로한다. 어떤 내용인지는 그 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고 우리에겐 의미 없다고 그것이 의미 없는 행동일까.


꼭 쓸모 있어야 할 필요는 없어

옥자가 무사히 구출되길 바라며 영화를 보던 나를 떠올리면서 갑자기 생각났다. 사실 옥자는 변희봉의 말대로 그럴 팔자였고 음식을 위해 만들어진 돼지다. 인류의 좋은 식량이 될 수 있는 옥자가 구출되면 그건 아까운 자원 낭비가 될 수 있다. 한마디로 '잉여자원'이다. 이제 옥자는 그저 늙어 죽을 때까지 잡아먹히지 않고 누구에게도 팔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자는 옥자를 사랑하고 그 무엇보다도 아끼는 소중한 존재로 여겼기 때문에, 옥자가 그 어떤 존 재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먹을 수도 팔 수도 없는 금전적인 가치가 없는 동물이 되었음에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진실한 관계란 상대방의 어떤 쓸모 있음이나 용도가 만들어내는 감정이 아니다. 함께한 시간과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교감이 중요한 것이다.


모든 것이 합리적이고 계산적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감정적인 것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익과 손해 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생명이 있고 감정을 가진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다른 존재에 대한 애정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계산으로 그 애정이 설 곳을 줄여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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